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단골로 떠오르는 이슈 가운데 하나는 한국 등 주변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특히 중국시장이 불붙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이래 이는 이 지역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투자회사들의 핵심 관심사이기도 하다. 북한이 만들어내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미국 월스트리트 투자자들마저 주의를 기울이는 배경이다.
그러나 그간 정설은 북한의 도발이 한국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것. 주요 도발 사건과 주가 변동 양상 데이터를 살펴보면,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도 단일한 이벤트만으로는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수일 내 사그라져 원래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뤄왔다. 2006년 1차 핵실험과 2009년 2차 핵실험이 6일, 2010년 연평도 포격이 그나마 가장 길어서 8일이 지난 후 원래 수준으로 회복된 바 있다는 게 핵심 근거였다.
과연 그럴까. 전미아시아경제학회(American Committee on Asian Eco nomic Studies)가 발간하는 영문 학술지 ‘아시아경제학저널(Journal of Asian Economics)’에 6월 게재될 예정인 따끈따끈한 논문은 이러한 정설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북한의 위협이 주변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고 길 수 있다는 것. 셀 디부글루 미국 미주리대 세인트루이스캠퍼스 교수와 에므라 셀빅 터키 나믹케말대 교수가 작성한 ‘북한의 위협이 한국·일본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The effect of North Korean threats on financial markets in South Korea and Japan)’이라는 논문이 관련 전문가 사이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이유다. 심사를 마친 이 논문은 오프라인 게재를 앞두고 5월 중순 현재 온라인상에서만 공개된 상태다.
2000~2014년 전체 기간에 걸쳐 NKTI와 한일 금융지수 간 인과관계를 추적한 결과는 꽤나 흥미롭다. 앞서 전한 그간의 정설과 달리 NKTI가 정점에 이른 후 두 나라 금융시장이 상당 기간 영향을 받았다는 것. 직관적으로만 봐도 북한 2차 핵실험이 있었던 2009년과 3차 핵실험이 있었던 2013년의 NKTI 흐름에 맞춰 두 나라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였던 게 대표적이다. 2009년에는 정책금리 변동 같은 다른 경제변수가 있었지만, 2013년 일본시장 하락은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계 분석을 거친 결론은 더욱 정교하다. NKTI 변동은 한국 주식시장의 등락과 90% 확률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보이고, 원-달러 환율과는 95%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북한의 말이 험악해질 경우 한국 주식시장이 그 영향을 일절 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가능성은 10%에 불과하고, 환율이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은 5%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영향이 지속되는 기간은 통상 수개월. 다만 금리에서는 의미 있는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논문 저자들은 전한다.
가장 이채로운 대목은 일본 금융시장이 받는 영향이 한국에 비해 2배 가까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이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통계 분석 결과는 오히려 반대라는 이야기다. NKTI와 일본 주식시장 흐름에서 나타나는 인과관계 역시 일본에서는 확률 수준이 99%에 달해 한국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북한 관영매체가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순간 일본 주식시장이 그 영향을 피해갈 가능성은 1%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다만 원-달러 환율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과 달리 엔-달러 환율은 한 달 이상 시차를 두고 부정적 영향이 발생해 역시 수개월간 파장이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최근 수년 사이에는 취약성이 한층 더 커졌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NKTI가 정점을 찍은 뒤 엔-달러 환율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영향이 2개월 뒤보다 오히려 3개월 뒤 더 크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도발로부터 한일 금융시장이 받았던 충격이 주변국으로 번져나갔다가 다시 일본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는 게 이들의 분석. 요컨대 북한이 험악한 말들을 쏟아낼 때마다 동북아 전체 경제가 상당한 출렁임을 반복하고 있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청한 외국계 투자회사 고위 관계자는 “이 논문이 사용한 NKTI가 북한의 실제 행동이 아니라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말에 따라 산정되는 지수라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이 NKTI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는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실제 행동보다 분위기 조성 자체에 흔들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집단자위권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베 내각이 북한발(發) 위협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대다수 일본 언론 역시 이를 따라가며 북한의 도발적 언사를 대서특필해온 최근 분위기와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였던 1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핵실험이 한반도 평화에 위협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61%였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직후 같은 조사에서 위협적이라는 응답이 76%에 이르렀던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감소한 셈.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느냐에 대한 응답 역시 2013년 64%에서 올해 54%로 줄었다. 북한 핵 위협의 물리적 실체는 명확해져 가지만, 도발이 반복됨에 따라 국민이 체감하는 위험도는 오히려 줄고 있다는 방증이다. 위협을 과시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평양의 행보가 뜻을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그간 정설은 북한의 도발이 한국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것. 주요 도발 사건과 주가 변동 양상 데이터를 살펴보면,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도 단일한 이벤트만으로는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수일 내 사그라져 원래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뤄왔다. 2006년 1차 핵실험과 2009년 2차 핵실험이 6일, 2010년 연평도 포격이 그나마 가장 길어서 8일이 지난 후 원래 수준으로 회복된 바 있다는 게 핵심 근거였다.
과연 그럴까. 전미아시아경제학회(American Committee on Asian Eco nomic Studies)가 발간하는 영문 학술지 ‘아시아경제학저널(Journal of Asian Economics)’에 6월 게재될 예정인 따끈따끈한 논문은 이러한 정설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북한의 위협이 주변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고 길 수 있다는 것. 셀 디부글루 미국 미주리대 세인트루이스캠퍼스 교수와 에므라 셀빅 터키 나믹케말대 교수가 작성한 ‘북한의 위협이 한국·일본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The effect of North Korean threats on financial markets in South Korea and Japan)’이라는 논문이 관련 전문가 사이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이유다. 심사를 마친 이 논문은 오프라인 게재를 앞두고 5월 중순 현재 온라인상에서만 공개된 상태다.
동북아시장 전체로 퍼지는 악순환
논문 저자들은 미국의 북한 전문 온라인매체 ‘NK뉴스’가 분석, 집계하는 북한위협지수(North Korean Threat Index·NKTI)와 한일 두 나라의 주가·환율·금리 지표 흐름을 통계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을 택했다. NKTI는 ‘조선중앙통신’ 같은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용어와 문장이 얼마나 공격적이고 적대적인지를 미리 설정해놓은 가중치에 따라 컴퓨터로 자동 산정하는 지수. 북한이 쏟아내는 말이 험악해질수록 지수가 올라가고 분위기가 나아지면 지수도 떨어지는 식이다.2000~2014년 전체 기간에 걸쳐 NKTI와 한일 금융지수 간 인과관계를 추적한 결과는 꽤나 흥미롭다. 앞서 전한 그간의 정설과 달리 NKTI가 정점에 이른 후 두 나라 금융시장이 상당 기간 영향을 받았다는 것. 직관적으로만 봐도 북한 2차 핵실험이 있었던 2009년과 3차 핵실험이 있었던 2013년의 NKTI 흐름에 맞춰 두 나라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였던 게 대표적이다. 2009년에는 정책금리 변동 같은 다른 경제변수가 있었지만, 2013년 일본시장 하락은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계 분석을 거친 결론은 더욱 정교하다. NKTI 변동은 한국 주식시장의 등락과 90% 확률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보이고, 원-달러 환율과는 95%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북한의 말이 험악해질 경우 한국 주식시장이 그 영향을 일절 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가능성은 10%에 불과하고, 환율이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은 5%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영향이 지속되는 기간은 통상 수개월. 다만 금리에서는 의미 있는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논문 저자들은 전한다.
가장 이채로운 대목은 일본 금융시장이 받는 영향이 한국에 비해 2배 가까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이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통계 분석 결과는 오히려 반대라는 이야기다. NKTI와 일본 주식시장 흐름에서 나타나는 인과관계 역시 일본에서는 확률 수준이 99%에 달해 한국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북한 관영매체가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순간 일본 주식시장이 그 영향을 피해갈 가능성은 1%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다만 원-달러 환율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과 달리 엔-달러 환율은 한 달 이상 시차를 두고 부정적 영향이 발생해 역시 수개월간 파장이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최근 수년 사이에는 취약성이 한층 더 커졌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NKTI가 정점을 찍은 뒤 엔-달러 환율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영향이 2개월 뒤보다 오히려 3개월 뒤 더 크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도발로부터 한일 금융시장이 받았던 충격이 주변국으로 번져나갔다가 다시 일본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는 게 이들의 분석. 요컨대 북한이 험악한 말들을 쏟아낼 때마다 동북아 전체 경제가 상당한 출렁임을 반복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發 위협 활용하는 아베 내각
평범한 상식과는 사뭇 다른 논문의 결론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먼저 일본시장의 부정적 여파가 더 민감하게, 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가 북한 변수에 대해 꾸준히 내성을 축적해왔음을 방증한다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수십 년간 수많은 도발과 사건에 익숙해진 한국은 오히려 둔감해진 반면,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던 일본은 북한의 핵개발 본격화 이후 훨씬 더 크게 불안감을 느끼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익명을 요청한 외국계 투자회사 고위 관계자는 “이 논문이 사용한 NKTI가 북한의 실제 행동이 아니라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말에 따라 산정되는 지수라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이 NKTI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는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실제 행동보다 분위기 조성 자체에 흔들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집단자위권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베 내각이 북한발(發) 위협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대다수 일본 언론 역시 이를 따라가며 북한의 도발적 언사를 대서특필해온 최근 분위기와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였던 1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핵실험이 한반도 평화에 위협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61%였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직후 같은 조사에서 위협적이라는 응답이 76%에 이르렀던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감소한 셈.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느냐에 대한 응답 역시 2013년 64%에서 올해 54%로 줄었다. 북한 핵 위협의 물리적 실체는 명확해져 가지만, 도발이 반복됨에 따라 국민이 체감하는 위험도는 오히려 줄고 있다는 방증이다. 위협을 과시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평양의 행보가 뜻을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