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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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마이너스 금리 수면 아래 다른 세상

이자 내고 돈 맡기는 ‘전인미답의 영역’ 소비자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 곽영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yhkwak@hanafn.com

    입력2016-05-23 10: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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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경제 흐름을 눈여겨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최근 세계는 명목금리가 0% 아래로 내려가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정책금리를 마이너스로 설정하기까지 일본은 20년 이상, 유로존도 6년 이상 제로 금리를 유지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은 0%를 금리인하의 하단이라고 인식해 추가적인 금융완화가 필요한 경우에도 금리 대신 양적완화정책을 사용해왔다.

    그럼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결국 이들은 명목금리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리는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2014년 6월 ECB가 정책금리를 마이너스로 인하했고, 같은 해 스웨덴과 덴마크, 2015년 스위스, 올해 1월 BOJ, 3월에는 헝가리 중앙은행이 이 대열에 가세했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채권의 약 20%가 마이너스 금리 영역에 진입한 상태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세상은 인류에게 미지의 세계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본에 이자를 지급하기는커녕 과세하는 게 마이너스 금리라면, 각 개인은 돈을 은행에 맡겨 이자를 지불하기보다 개인 금고에 보관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제약으로 마이너스 금리에서는 정책의 전달(transmission)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게 그간의 중론이었다.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조정하면 그 영향이 단기자금시장에 즉각 반영되고 다시 장기자금시장 영역에까지 원활히 전파돼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지곤 했다.



    아직은 소폭, 제한된 영역에서만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마이너스 금리 이후에도 플러스 금리 때와 다름없이 전달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금융 시스템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 5월 초 스위스 국채는 15년물, 일본과 독일 국채는 각각 10년물과 8년물까지 마이너스 영역에 들어와 있다. 아직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마이너스 금리가 실현된 것이다.



    현재까지 마이너스 금리의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다. 마이너스인 듯 마이너스 아닌 듯 마이너스 같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썸 타는’ 수준 정도다. ECB는 2014년 6월 -0.1%로 시작해 올해 3월 현재 -0.4%까지 내렸다. BOJ는 1월 -0.1%로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했다. 아직 마이너스 금리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폭이 크지는 않다. -0.75%까지 인하한 스위스에서도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심지어 0%가 플러스와 마이너스 금리를 가르는 기준이 맞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순수한 물은 섭씨 0도에서 얼음이 되지만 이물질이 섞이면 빙점(氷點)이 영하로 떨어진다. 금리도 그렇다. 자금을 인출해 금고에 보관하거나 금 등으로 대체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즉 소폭의 마이너스 금리에서는 예금자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예금자의 행동이 바뀌는 ‘진짜 빙점’을 대략 -0.75~-2.00% 정도로 추정한다. 그 덕에 소폭의 마이너스 금리에서는 경제나 금융시장에 왜곡이 발생하지 않으며, 전달 메커니즘도 정상 작동되는 것이다.

    다만 마이너스 정책금리가 금융기관의 수익성을 과도하게 떨어뜨리는 등의 악영향은 당장 문제로 떠오른다. 이를 최소화하고자 중앙은행은 격리와 완충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채 거래는 기관투자자 영역으로 개인투자자와 격리돼 있으며, 기관투자자 역시 반대급부가 존재해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를 매입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린 곳은 독일 지방은행 1개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더 악화되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사례가 증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주요 국가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현 수준에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CB, BOJ 등은 금리를 더 인하하지 않고도 경제와 금융시장이 되살아나기를 바랄 것이다. 실효 하단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므로 상황에 따라 추가 인하를 단행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 구체적으로는 물가가 상승하고 자국통화의 약세가 지속된다는 신호가 나타나야 금리를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중앙은행들은 현재 같은 ‘썸 타는’ 수준의 마이너스 금리를 상당 기간 지속할 공산이 크다. 이는 금리인상을 모색하는 미국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자금이 미국에 집중돼 달러화가 강세를 보임으로써 경제에 부담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너스 금리 국가를 떠난 자금이 고금리를 찾아 세계를 떠도는 동안 글로벌 차원의 초저금리가 유지될 공산이 크다. 결론은 명확하다. 그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올해 하반기 중 정책금리의 인하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후폭풍

    이렇게 보면 마이너스 금리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글로벌 경제와 금융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가계 등 경제 주체도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첫째, 마이너스 금리가 되면 당연히 금융 소비자의 금리 수입이 감소하므로 보전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 다국적 금융회사가 16개국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금리가 0%에서 -0.5%로 인하될 경우 예금을 인출해 사용하거나 다른 투자 수단에 넣거나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겠다는 응답자 비율이 80%에 달했다. 마이너스 금리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 소비자들의 자구 노력은 급격한 금융 환경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요인이다.

    둘째, 스웨덴과 덴마크 등은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심지어 모기지 금리가 오르는데도 단기자금시장을 이탈한 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개인이 수익을 보전하려고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자산시장에 버블이 형성될 가능성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셋째, 가계 처지에서는 남의 일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은행 등 금융기관이 마이너스 또는 초저금리로 받는 수익성 압박은 상상 이상이다. 이러한 압박이 기업 구조조정이나 금융 부실 증가와 상승효과를 일으킬 경우 경제 및 금융시장을 압박하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넷째, 마이너스 금리가 물가 상승이나 고용 안정으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금리인하를 통해 디플레이션 상태를 벗어나는 데도 최소 1~2년은 필요하다. 더욱이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통화 약세를 유도하겠다는 것인 만큼 이는 고스란히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실시한 이후 엔고라는 정반대 현상이 잠시 나타나기는 했어도 장기적으로는 엔화 약세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러한 흐름이 인접국인 한국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서 말했듯 당분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국가들의 정책금리 조정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므로 글로벌 차원에서 초저금리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영향이 비대칭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물경제의 진작 효과는 미미한 반면, 금융시장 위축이나 금융기관 실적 악화 같은 부정적 영향은 예상보다 심화될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맞이하는 소비자들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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