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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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메이드 맨

자립기술을 배우는 청년들

‘들락날락학교’의 시골집 고쳐 살기 강좌

  • 김성원 적정·생활기술 연구자 coffeetalk@naver.com

    입력2016-05-23 11: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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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첫째 주, 필자가 살고 있는 전남 장흥으로 청년 열대여섯 명이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왔다. 이름도 희한한 ‘들락날락학교’ 학생들이다. 지난해 충남 금산에 문을 연 지역 밀착형 청년자립대 ‘아랑곳학교’가 진행하는 개방형 강좌다. 강좌 가운데 ‘시골집 고쳐 살기’ 과목을 선택한 청년들이 장흥으로 왔다. 낡은 시골집을 고쳐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배우려는 것이다.  

    요즘 직장인이 집 한 채를 사려면 54년 치 월급을 모두 모아야 한다고 한다. 전국 평균 전셋값은 2억 원, 서울 평균 전셋값은 4억 원을 넘어섰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은 청년이 자립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래서 적잖은 청년이 차라리 농촌으로 내려가 낡은 시골집을 직접 고쳐 살아보겠다는 엄두를 내고 있다.

    이 청년들이 장흥과 금산을 오가며 배우게 될 기술은 ‘벽체미장’ ‘천연페인팅’ ‘구들 놓기’다. 이번 닷새 동안에는 기본 흙미장과 색토미장, 석회페인팅, 석회 밀크카제인 페인팅의 이론과 실습을 했다. 이들은 금산으로 돌아가 ‘아랑곳학교’ 벽면 일부를 미장하거나 어르신들이 살고 있는 낡은 시골집의 벽체를 고치는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다. 또 이 중 몇몇은 벽에 흙이나 석회를 바르는 미장기술을 좀 더 익혀 직업으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농촌에서 꼭 필요한 집 짓기 기술

    과거엔 집을 짓고 고치는 일이 기본 생활기술이자 자립기술이었다. 동네 목수와 함께 이웃, 가족이 힘을 합쳐 그 지역에서 나오는 흙과 돌, 나무, 농업 부산물로 집을 짓고 고쳤다. 딱히 돈이 없어도 형편이 되는 대로 집을 짓고 사는 기술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동네 어른이 청년에게 가르쳤다. 1960년대 농촌을 떠나 귀경했던 지금의 70, 80대 어르신 대부분이 이렇게 제 손으로 집을 지을 줄 알았다. 그들이 서울로 올라와 검은 ‘루핑’(아스팔트 가공을 한 장판지)과 판자, 시멘트블록으로 지은 집들이 안양천 뚝방동네와 정릉 산동네 등 도시 변두리에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했다. 그렇게라도 집을 장만하고 자립할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도시는 더는 가난한 이들이 맨손으로 집을 지을 빈터를 허락지 않는다. 지금 40, 50대는 집을 사고팔아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삼았고, 그 자녀 세대는 집 짓는 기술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다. 자연히 집 짓기는 건설업체의 전유물이 됐다.



    지금 청년 세대는 감당하지 못할 집값, 전셋값에 낙망하고 있다. 그나마 농어촌에는 아직까지 청년이 적은 비용으로 땅을 구하고 집을 짓거나 고쳐 살 여지가 남아 있지만 이마저도 조만간 어려워질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귀촌, 귀향 붐으로 농촌의 부동산 가격도 적잖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구매하거나 전월세를 내느라 헉헉대며 고달픈 인생을 사느니, 하루라도 빨리 농촌에서 제 손으로 집을 짓거나 빈집을 고쳐 살아보면 어떨까. 농촌살이가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농촌은 청년을 필요로 하고 청년이 자립하기에 도시보다 여유가 있다. 만약 집을 짓거나 고치는 기술이 있다면 농촌살이에 큰 도움이 된다.

    미장이나 구들 놓는 기술이 평생 일거리가 될까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현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요즘 지방자치단체(지자체)마다 한옥 체험장을 짓고, 한옥 호텔 짓기 붐이 일고 있는데 막상 흙일을 할 토수가 부족하다. 귀농·귀촌하는 베이비부머가 흙집을 지으려 하지만 벽체 미장을 제대로 할 장인을 찾을 수 없다. 기후변화로 점점 기온이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져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 벽지나, 화재 우려가 있는 화학물질로 된 스투코(Stucco·벽돌이나 목조 건축물 벽면에 바르는 미장 재료)를 대체할 다른 재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은 천연페인팅이나 현대적 천연미장을 선택하는 이가 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 토수는 눈을 씻어도 찾기 어렵고, 그나마 남은 미장 기술자나 페인트 기술자는 평균 나이가 60세 이상이다. 청년이 힘든 노동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흙미장이나 석회미장의 수요가 늘고 있으며, 지역마다 미장협회가 개설한 교육과정이 마련돼 있다. 최근에는 청년과 청소년에게 미장을 가르치는 워크숍이 심심치 않게 열리고, 미장 공방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도제수업을 받는 청년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일본 미장은 기술적 측면이나 예술적 표현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다채로운 색토미장, 석회미장, 석고미장, 천연페인트 제품을 생산하는 전문기업이 활약하고 있다. 곳곳에서 장인들이 자기 공방이나 미장 전문업체를 운영한다. 한국은 미장 수요에 비해 장인이 부족하다. 특히 현대적 미감에 맞춰 벽체를 치장할 감각과 기술을 갖춘 젊은 장인이 부족하다. 당연히 앞으로 일본이나 유럽처럼 미장 장인에 대한 대우가 달라질 것이다.

    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예전엔 시골 마을마다 구들 잘 놓는 이가 한 명씩 있었는데 요즘엔 이조차 드물다. 그런데 귀농, 귀촌자가 늘면서 구들 수요도 증가했다. 상황이 이러니 구들 시공을 업으로 삼는 이도 늘고 있다. 무운 구들, 회오리 구들, 낮은 구들, 전통 구들, 개량 구들 등등 기술적 개량도 급격히 일어나고 구들 종류도 다양해졌다. ‘구들 백가쟁명시대’라 할 만하다. 그만큼 구들 수요가 많고 구들만 제대로 놓아도 먹고살 만하다는 의미다.



    구들, 수요는 증가하는데 장인이 없다

    이미 귀촌자 중에는 구들 놓기와 화덕 제작 기술을 배워 직업으로 삼는 이도 생기고 있다. 구들을 놓다 러시아식 벽돌난로(페치카)나 구들과 난로를 결합한 로켓매스히터, 가마솥 화덕, 빵 화덕까지 만들기도 한다. 비슷한 기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미장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미장기술을 배워두면 농촌에서 밥벌이 하며 살아갈 요긴한 재주를 갖추는 셈이다.

    이번 ‘들락날락학교’ 교육에 참가한 청년들은 장흥 관산 동백숲에 사는 젊은 부부의 집에 놓인 로켓매스히터에 미장을 하고, 직접 천연페인트를 만들어 칠하는 일을 도우면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마지막 날 청년들이 떠나기 전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결과적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창업이니 스타트업(Start Up)이니 하면서 부추기고 있지만 청년실업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들이 반짝 아이디어와 젊은 감각의 디자인, 얕은 마케팅 지식, 일시적 지원을 믿고 창업에 나서지만 빈약한 비즈니스 모델은 종종 참담한 결과로 끝난다.

    예전에는 기술이나 어떤 사업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 인맥을 갖추지 못한 청년이 곧바로 창업에 나서는 일이 드물었다. 특히 기술과 관련된 일이라면 오랜 기간 숙련이 필요했다. 기술이 있으면 제 밥벌이는 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고 새롭게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분야라면 힘들더라도 청년이 배우고 도전해볼 만하다. 그러나 단기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들이 오히려 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트렌드를 좇아 첨단기술에 관심을 갖지만 핵심 기술은 소수 기업이 독점하고 있고, 대부분 응용기술이다. 첨단이 아니더라도 수요에 비해 희소성이 높아지고 있는 기술이라면, 조금 힘들고 오랜 숙련 기간이 필요한 기술이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희소성이 높아지면 대우도 달라진다.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집을 짓거나 고치는 데 필요한 미장 또는 구들 놓는 일은 특히 농촌에서 유용한 자립기술이자 생활기술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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