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자사 로보틱스팀이 개발한 착용 로봇을 입은 채 작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입는다’는 행위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보통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하도록 해주는 도구나 장비들이 출시되고 있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슈퍼휴먼은 강화된 신체능력을 이용해 과거에는 할 수 없었거나 즐길 수 없었던 일들을 해내게 될 것이다. 신체적·지적 능력이 강화된 슈퍼휴먼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으며, 그 중심에 아이언맨 슈트 같은 ‘입는 로봇’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조끼 형태로 상향 작업을 지원하는 로봇과 작업자의 앉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무릎관절 보조 로봇을 개발했다.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사람이 움직이려고 하는 의도를 센서(sensor)가 감지해 고속 계산이 가능한 컨트롤러에 전달하고, 그 전달된 정보를 활용해 관절부의 작동장치(Actuator·액추에이터)가 구동되는 원리다. 물론 작동장치가 의도대로 구동되기까지 센서 기술, 배터리 전원 기술, 관절의 내구성, 지능형 컨트롤러가 필요하다. 좀 더 나아가면 뇌세포, 신경세포와 연결된 신경망 기술까지 망라하기에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이며, 기술적 난도 또한 높다고 할 수 있다.
현장 속으로 진입하는 웨어러블 로봇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 2020에서 삼성전자 전시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 ‘젬스(GEMS)’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삼성전자]
그중 눈길을 끈 것은 IT(정보기술), 자동차 회사가 아닌 항공사가 공개한 웨어러블 로봇이었다. 델타항공이 공개한 가디언XO(Guardian XO)는 공항 물류 작업자가 23kg이 넘는 무거운 여행가방도 손쉽게 들고 내릴 수 있게 해준다. 델타항공은 미국 스타트업 사코스 로보틱스가 개발한 이 웨어러블 로봇을 올해 1분기 물류업무에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우리가 실감하지 못하는 사이 웨어러블 로봇은 국방, 소방·재난구조 같은 안전 현장, 산업 현장, 재활치료,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로 적용되고 있다.
처음 웨어러블 로봇은 경제성이 없더라도 예산 사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방 분야에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65년 미 해군은 고중량의 포탄 운반을 쉽게 하려는 목적으로 연구에 돌입했으며, 현재 미국을 위시한 각국은 자국 군대의 전투력을 극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90kg 군장을 멘 채로 최고 시속 16km까지 달리도록 지원하는 헐크(HULC)를 개발해 실전 배치에 나선 상태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속 테란 형상을 하고,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톰 크루즈가 착용한 형태의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또한 재난구조 현장에 적용하는 사례도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FRT는 하이퍼 R1이라는 소방 전용 로봇을 개발했다.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지구력과 근력을 보강해 산소통을 부담 없이 사용하거나 장시간 구조 활동을 벌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현대 · 기아자동차의 웨어러블 로봇.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의료와 재활은 가장 활발하게 개발이 진행되는 분야다. 이스라엘 기업 리워크(Rewalk)는 하체 장애 환자의 보행을 지원하는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하반신이 마비된 한 영국 여성은 리워크의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고 17일에 걸쳐 마라톤을 완주해 감동을 준 바 있다. 한국 ㈜엔젤로보틱스도 장애 환자가 보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엔젤슈트라는 재활 로봇을 개발한 바 있다.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레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를 위한 로봇도 등장했다. 스키나 스노보드를 탈 때 근력을 증강시키고 피로감을 최소화해 더 오래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미국 롬 로보틱스(Roam Robotics)는 소프트한 소재로 스키용 로봇을 개발해 북미 스키장에서 렌털 방식으로 이미 상용화한 상태다.
가격 대중화 속도가 관건
각종 로봇을 조작하는 근로자. [GettyImages]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늘어나고 있으나 현재 웨어러블 로봇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비싸고 사용감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가격비교사이트 머니슈퍼마켓이 마블, 위키피디아 등의 자료를 참고해 계산한 결과, 아이언맨 슈트 한 벌 가격은 1381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입어볼 엄두조차 안 난다. 앞서 예시한 웨어러블 로봇들도 리워크 6만9500달러(약 8190만 원), 사이버다인 200만 엔(약 2161만 원) 등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가격이 높다.
또한 미국 VOA의 탐사보도에 따르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제공하는 웨어러블 로봇인 로보틱 테크 베스트(Robotic Tech Vest)를 입을 경우 무게와 착용에 따른 스트레스로 작업자들의 부상이 늘었다고 한다. 높은 가격과 더불어 안정성, 착용 편의성 등이 범용 확대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 벤처기업 이노피스(Innophys Co.)는 10만 엔 대(약 108만 원)의 작업보조 슈트인 ‘머슬 슈트(Muscle Suit) Every’를 출시했는데, 무게가 가볍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해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머슬 슈트는 무거운 물건을 올리고 내리는 작업이나 상체를 구부린 자세로 하는 작업을 보조하는 슈트로, 백팩처럼 등에 메고 벨트를 조여 사용한다.
환자의 자립을 도와주는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 [GettyImages]
웨어러블 로봇은 고령자, 장애인에게는 새로운 삶의 활력과 희망을 주고,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의 질을 개선해 생산성을 증진하며, 인간의 감각적 즐거움을 배가하는 데 제 역할을 할 것이다. 인간 능력을 보충하고 지원하는 도구이자 수단으로써 가장 인간적인 기술 진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PDA 같은 유사한 제품이 쏟아져 나오다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마트폰 세상이 개화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최근 수년간 다양한 부문에서 웨어러블 로봇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와 특허 기술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2020년에는 사용성이 향상되고 가격 장벽까지 낮아진 웨어러블 로봇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태동기가 시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