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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내려도 2030 低소비 뚜렷, 집값에 짓눌려 외출 여가도 반납

돈만 쓰는 ‘욜로족’은 세대 반영 못하는 옛말, 몸값 높이려 잦은 이직도 불사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01-29 15: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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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을 위한 복지 혜택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원래 젊은 세대는 한창 열심히 일해야 할 세대 아닌가. 그런데 눈만 높아서 중소기업에는 취업을 꺼리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국고를 낭비하고 있다. 젊은이들에 대한 지원을 줄여야 이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제대로 된 경제활동에 나설 수 있다” 부산에서 만난 한모(67)씨의 말이다. 이처럼 일부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돈을 벌기 보다는 쓰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YOLO(You Only Live Once)’, ‘탕진잼’ 등의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사회 초년생들이 저축보다는 소비에 열중한다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말도 전부 옛말이 되고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느 세대보다도 저축에 힘쓴다. 이 세대에게 자동차는 사치품이고, 가전제품도 디자인보다는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돈을 쓰는 곳은 경험. 여행부터 자기개발까지, 자신의 삶이 나아질 가능성에 젊은 세대는 지갑을 연다.

    물가 떨어져도, 내 지갑은 텅텅

    소비자 물가지수는 떨어졌지만, 1인 가구의 지갑 사정은 더 나빠졌다. [GettyImages]

    소비자 물가지수는 떨어졌지만, 1인 가구의 지갑 사정은 더 나빠졌다. [GettyImages]

    2019년은 2030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소비가 얼어붙은 해였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에는 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세에 돌입했다. 통계청이 집계한 2019년 8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104.81로 전년도 같은 달에 비해 0.04p 감소했다. 이는 1965년 소비자 물가지수 작성 이래 처음 있는 기록이다. 전년 동월 대비 물가 상승률도 1월부터 8월까지 줄곧 0%대를 유지했다. 

    가장 크게 변한 부문은 신선식품 지수였다. 생선, 채소, 과일 등 기상 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변동이 큰 부문이다. 이 부문의 물가지수가 전년에 비해13.9% 하락했다. 특히 농산물의 가격 하락이 두드러졌다. 2019년 풍작을 맞은 배추와 무는 각각 전년 대비 42.1%, 54.4%씩 가격이 떨어졌다. 이외에 국제 유가 하락으로 휘발유와 경유, LPG의 가격이 전부 떨어졌다. 

    물가가 내리면 소비가 늘어야 하는데, 소비는 외려 줄었다. 당장 이번 설 연휴 지출도 감소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82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설 연휴 지출 계획액은 1인당 평균 41만원. 이는 전년대비 2만 5000원, 2018년에 비해서는 3만원이 줄어든 규모다. 



    소비 심리가 위축된 이유는 물가가 내린 품목이 많지만, 반대로 오른 품목도 늘었기 때문이다. 택시 요금은 전년대비 15.6% 올랐고, 시외버스 요금은 13.4% 올랐다. 식재료비는 줄었으나 외식비도 평균 1.7% 올랐다. 젊은 세대는 한 푼이라도 지출을 줄여보기 위해 칩거를 선택했다. 시장 조사업체 ‘오픈서베이’가 전국 20~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대 응답자 중 54.3%가 ‘외출보다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응답했다. 30대는 그 비율이 51.3%로 조금 낮았다. 이 비율은 40대 44.3%, 50대 36.4%로 떨어져 연령이 높을수록 칩거보다는 외출을 택하는 경향이 강했다. 

    칩거족들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이득이라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양모(28)씨는 “보통 외출이라고 하면, 친구나 연인과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게 되는데, 이를 집에서 해결하면 훨씬 저렴하다. 게다가 사람들과 만나려고 시간을 내고, 꾸미는 등의 시간이 아깝다. 주말이면 주중에 밀린 잠을 자느라 바쁘다. 만나는 이성이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에서 쉬는 편이 이득”이라 설명했다.

    “집 나가면, 다 돈이니”

    [GettyImages]

    [GettyImages]

    칩거족들은 식사를 간편식이나 라면으로 해결한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2019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에 따르면 간편식 시장 규모는 2016년 1조 5145억 원에서 2018년 2조 693억 원으로 36.6% 늘었다. 저렴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에는 최저가 바람이 불었다. 농심과 오뚜기, 팔도는 개당 600원 미만의 저가형 라면을 내놓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개당 1500원대의 프리미엄 라면을 신제품으로 내놓았지만, 소비자들이 낮은 가격대 라면을 선호하면서 시장도 바뀐 것. 

    영화관을 가는 대신, 집에서 영화 및 동영상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OTT(Over The Top) 서비스도 크게 늘었다. 한국방송통신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OTT 시장 규모는 2016년 약 3000억 원에서 2019년 6345억 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2020년에는 OTT 시장 규모가 약 8000억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직장인 오모(30)씨도 “돈 버는 일로만 집 밖을 나서지, 돈을 쓰러 외출한지는 꽤 지났다. 집에만 있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데다가 돈도 훨씬 덜 든다”고 말했다. 

    외출을 줄여가며 돈을 아끼는 이유는 사회생활 시작부터 빚을 진 젊은이들이 많고 취업 준비기간이 길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신한은행이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3년차 이하의 직장인 44%가 대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인당 평균 대출액은 3391만원. 전년대비 432만원 늘어났다. 대출 상환 소요기간도 4년에서 4.9년으로 늘었다. 빌린 돈의 사용처는 생활비, 교육비가 44.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취업준비기간이 길어지자 대출에 손을 벌리고, 부채 상환기간도 늘고 있는 셈이다. 

    운 좋게 취업준비기간에 대출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씀씀이가 커진 것은 아니다. 2018년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20대는 자산대비 저축 비율이 25.1%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30대는 18.0%, 40대는 19.7%, 50대는 21.9%, 60대는 15.9%였다. 30대의 저축 비율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통계청의 ‘가구주 연령별 소비성향 추이’ 자료를 보면, 2003년 우리나라 30대 평균 소비성향 지수는 76.2다. 100만 원을 벌면 76만 원가량을 썼다는 뜻이다. 이 지수가 2016년에는 70.2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40대 소비성향 지수도 79.8에서 75.9로 하락했지만 하락폭은 30대에 비해 적은 편이다. 지금의 40대 후반~50대 초반 세대가 사회초년생이던 시절보다, 지금의 30대가 돈을 덜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30대부터는 부동산에 지출하는 비용이 커져 저축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 못 사면, 평생 민달팽이

    내 집 마련은 포기했다지만 꽤 많은 젊은 세대가 부동산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1월 17일 발표한 '2019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20대인 가구의 평균 부채는 3197만원으로 1년 전 2591만원에서 606만원(23.4%) 늘었다. 30대 가구의 부채도 8915만원으로 1년 전보다 10.2% 상승했다. 

    돈을 빌린 이유는 집이었다. 특히 30대 부동산 거래자가 두드러졌다. 한국감정원 통계에서 지난해 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1889건) 중 30대 거래자가 차지한 비중은 25% 수준이었지만, 8월에는 30%를 넘어섰다. 투자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됐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다양한 부동산 정보 서비스 덕분에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부동산 시세나 정보 등을 알 수 있게 됐다는 것. 

    결혼 2년차 대기업 직장인 이모(30·여)씨도 최근 서울 끝자락에 작은 빌라를 하나 마련했다. 같은 회사를 다니는 남편과 모아놓은 돈을 전부 털어내 만든 1억 5000만원에, 금융권 대출을 전부 끌어 모아 매입 자금을 만들었다. 이씨는 “집값의 과반이 대출금이다. 사실상 은행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서울 근교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학창시절부터 월세방을 전전하며, 세입자의 설움을 수도 없이 겪었다. 계약 연장을 약속해 놓고도 입 씻는 경우는 허다했고, 갑자기 월세나 보증금을 2배가량 올려달라는 요구도 종종 들었다. 이 같은 상황을 피하려면 무리해서라도 지금 집을 마련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취업해도 공부는 멈추지 않는다”

    생활비와 빚, 주거비를 해결한 젊은 세대는 비로소 소비로 눈을 돌렸다. 이들이 가장 많은 돈을 쓴 곳은 자기개발.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8년 직장인 66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7.8%가 자기개발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자기개발 붐을 이끌고 있는 층은 20대와 30대였다. 이 연령대의 70.9%가 자기개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40대부터는 자기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비율이 50%대로 감소했다.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자기개발을 하는 이유는 돈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자기개발을 하고 있는 이유로는 이직 준비가 38.4%로 가장 높았다. 잡코리아가 직장인 49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설문을 결과를 보면 이직 이유가 명확해진다. 조사에 따르면 2019년에 이직 계획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 중 37.2%(복수응답)가 ‘연봉을 높이기 위해 이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역량 향상과 경력관리를 위해(23%)’, ‘회사 성장 가능성이 낮아(21%)’, ‘적성에 안 맞아(20.8%)’, ‘시기(19.6%)’ 라는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면, 일부 업계를 제외하고는 대기업으로 이직이 어렵다. 중소기업의 임금이 워낙 낮으니 조금이라도 임금을 더 준다는 곳이 있다면, 바로 이직을 하겠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전했다. 또 “대기업으로 이직에 성공한 직장인도 공채로 입사한 동료들만큼의 처우를 기대하기 힘들기에 괜찮은 중견기업을 목표로 계속 이직을 반복하는 사람들도 적잖다”고 밝혔다. 

    최근 2번째 이직에 성공한 김모(31)씨는 “젊은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기성 세대의 인식이 억울하다”고 밝혔다. 그는 “작금의 젊은 세대야 말로,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는 세대가 아닐까 싶다. 낭만적이라던 대학생활은 취업경쟁으로 지나갔고, 취업 후에도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겠다며 쉬는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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