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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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등장하는 첨단 암 치료제

글리벡·이레사·수텐 … 암 정복 첨병으로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7-12-24 1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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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속 등장하는 첨단 암 치료제

    암환자에게 휴대용 항암제 주입기를 달고 있다.

    항암제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은 표적 치료제의 출현이다.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노바티스)을 시작으로 폐암의 이레사(아스트라제네카)가 표적 치료제의 첫 장을 장식했다. 기존 항암제는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모든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입 주위 점막이나 위장관에 있는 상피세포처럼 우리 몸에서 빠르게 성장, 분열하는 정상세포 모두를 파괴한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구토, 설사 등 합병증으로 고생해왔다.

    이처럼 1세대 항암제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무차별로 공격했다면, 2세대 항암제인 표적 치료제는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도록 설계돼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표적 치료제의 등장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암을 극복 가능한 질환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표적 치료제 글리벡…백혈병을 만성 질환으로 바꿔

    2001년 세계 최초의 표적 치료제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의 등장으로 만성골수성백혈병은 5년 생존율이 90%까지 높아졌다. 국내 2000여 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하루 한 번 약을 복용함으로써 암을 만성 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10% 미만의 소수 환자에서는 내성이 나타나 글리벡으로는 더 치료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내성은 상당 부분 항암치료를 너무 쉽게 생각해 약물 복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복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 글리벡에 저항성이 있고 내성을 보이지 않는 소수의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는 차세대 백혈병 치료제 타시그나(성분명 닐로티닙)와 스프라이셀(성분명 다사티닙) 등이 등장해, 글리벡에 내성을 보여 치료가 어려웠던 환자들에게 희소식이 되고 있다.



    속속 등장하는 첨단 암 치료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2002년 개발되고 올해 10월 말 허가된 노바티스의 타시그나는 글리벡과 작용기전은 동일하지만, 글리벡 내성과 관련 있는 33가지 변이체 중 32가지를 억제한다. 타시그나는 글리벡 내성을 보이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 4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만성기 환자의 71%, 가속기 환자의 44%에서 백혈구 수를 정상화했다.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감소하거나 제거된 환자도 만성기 42%, 가속기 31%였으며 내약성도 뛰어났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개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차세대 백혈병 치료제가 억제하지 못한 나머지 하나의 변이체에도 효과를 나타내는 3세대 치료제의 임상도 진행 중이다. 또한 향후엔 1, 2, 3세대 치료제 등 여러 가지 표적 치료제를 한꺼번에 쓰는 병용요법이 일차적인 치료법으로 사용돼 내성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완치도 가능케 할 전망이다.



    여성 암 1위 유방암, 차세대 항호르몬 치료제로 재발·부작용 없이 치료

    속속 등장하는 첨단 암 치료제

    유방암에 대한 항호르몬 치료제인 아리미덱스.

    유방암은 조기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96%로 다른 암보다 높다. 하지만 환자 10명 중 2~3명꼴로 재발한다. 특히 다른 부위로 전이되면 생존율은 18% 정도로 떨어져 유방암은 재발을 억제하는 것이 치료의 관건이다. 유방암 세포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에스트로겐을 억제하는 항(抗)호르몬 치료제를 이용한다.

    지난 수십 년간 항호르몬 치료의 대표적 약제로 사용된 것은 타목시펜이었다. 그러나 타목시펜은 수술 후 약 5년간은 재발을 막을 수 있으나 이후엔 큰 효과가 없고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자궁내막암, 뇌졸중, 혈전색전증 등의 유발 위험성이 있다.

    최근엔 부작용 및 재발률을 개선한 차세대 항호르몬 치료제인 아로마타제 억제제가 주목받고 있다. 아로마타제 억제제는 에스트로겐이 생성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유방암 세포가 자라는 것을 차단해 유방암 재발을 막는다. 노바티스의 페마라(성분명 레트로졸)와 아스트라제네카의 아리미덱스(성분명 아나스트로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페마라는 진행성 유방암의 치료뿐 아니라 조기 유방암에서의 조기보조요법과 5년 동안 타목시펜 치료 이후 연장보조요법이 모두 가능한 유일한 유방암 치료제다.

    2003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투주맙)은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고 유방암 성장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인 ‘HER 2’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전이성(말기) 유방암 치료제다. 덕분에 탈모, 구토 등 일반 항암제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작용이 크게 줄었다.

    GSK의 타이커브(성분명 라파티닙)도 무차별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기존 항암제와 달리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여 일명 ‘똑똑한 폭탄’으로 불린다. 타이커브는 저분자 이중 키나아제 억제제로 허셉틴이나 다른 치료제로 실패한 진행성 또는 전이성 ErbB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뇌종양으로 진행된 유방암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시판이 예상되며, 현재 타이커브를 개발 중인 GSK에서 동정적 사용 승인 프로그램 진행으로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혁신적 폐암 표적 치료제, 이레사…기존 항암제 비해 부작용 훨씬 적어

    속속 등장하는 첨단 암 치료제

    폐암 치료제 이레사.

    이레사는 암세포의 성장 원인인 ‘표피성장인자(EGFR)’의 성장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정상세포의 파괴가 훨씬 적고, 부작용도 기존 항암제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경미하다.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처럼 증식이 빠른 정상세포까지 살상하는 일종의 무차별 융단폭격이었다면, 표적 치료제는 특정 물질만 타깃으로 하는 초정밀 유도탄인 셈이다. 항암제 투여에 따른 전신 부작용은 현저히 줄이고, 암세포만 골라 죽이므로 환자 처지에서는 환영할 만한 치료제다. 게다가 경구용 약물(먹는 약)이라는 점도 혁신을 일으킨 부분이다.

    임상적으로도 이레사는 효과가 입증됐다. 서양인보다 동양인에게 효과가 우수하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여성, 비흡연자, 선암 환자들에게 효과가 더욱 높게 나타나 주목을 받았다. 올해는 임상연구를 통해 이레사를 복용한 사람이 정맥주사제인 도세탁셀로 치료받은 환자들과 생존율 면에서 동등함이 밝혀지기도 했다.

    폐암 표적 치료제의 첫 문을 연 이레사에 이어 작티마와 리센틴도 폐암을 혁신적으로 치료할 신약으로 기대되고 있다. 종양 주요 신호 경로에 선택적으로 작용해 종양 혈관 생성을 차단하고 암세포의 증식과 생존을 억제하는 다중표적 치료제인 작티마와 혈관내피성장인자 수용체의 신호를 차단해 종양 혈관의 생성을 차단하는 기전을 가진 리센틴은 암세포의 성장을 강력히 억제하는 차세대 폐암 치료제로 평가받고 있다.

    다중표적 항암제, 수텐…종양의 성장과 혈액 공급 동시 차단

    속속 등장하는 첨단 암 치료제

    다중표적 항암제 수텐.

    1세대 항암제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 중에서도 세포주기가 빠른 세포까지 공격함으로써 탈모, 설사, 골수 억제 같은 부작용을 유발했다. 하지만 유방암 치료에 사용되는 허셉틴을 시초로 하여 암의 성장에 관여하는 특정 물질만 선별해 공격하는 표적 치료제가 등장해 일반 항암제의 부작용을 크게 감소시켰다. 최근엔 한 걸음 나아가 다중표적 항암제가 선보이고 있다.

    표적 치료제가 한두 가지 표적인자만 공격하는 반면, 다중표적 항암제는 다수의 표적인자를 동시에 공격함으로써 기존 표적 치료제보다 항암효과가 훨씬 강화됐다.

    현재 진행성 신세포암과 글리벡 치료에서 실패한 GIST(위장관기저종양)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화이자의 수텐은 종양의 성장과 혈액 공급을 동시에 차단하는 다중표적 항암제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마찬가지로 산소와 영양을 주변 혈관에서 공급받는다. 암세포가 자라기 위해서는 이처럼 새로운 혈관 형성이 잘돼야 하는데, 수텐은 암세포에 대한 공격 외에도 혈관 신생 차단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다중표적 항암제의 등장으로 암 치료의 패러다임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예전엔 종양을 죽이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암이 몸에 남아 있더라도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오래 살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완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암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함께 살아가는 질병’이 돼가고 있다.

    이레사로 폐암 치료한 환자 이태석 씨



    이태석(62) 씨를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보며 “아니, 폐암 환자 맞아요?”라고 묻는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생업에 종사하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보통 아버지의 모습일 뿐, 그에게서 폐암 환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처음 폐암을 선고받았을 때는 청천벽력 같았다고 한다. 순식간에 몰려드는 암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더욱 무겁고 혼란스럽게 했다. 계속되는 항암치료는 삶에 대한 의지를 여지없이 꺾어버리며 몇 번이나 모든 걸 포기해버리자고 마음먹게 했다. 하지만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아내와 가족의 믿음으로 힘든 시기를 버텼다.

    의지만큼 몸 상태는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기를 여러 달.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심정일 때 주치의에게서 기존 항암치료 대신 새로 개발된 약을 복용해보자는 말을 들었다. 주치의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처방과 치료를 잘 따랐다. 그리고 투병한 지 6년째인 올해 엑스선 촬영 결과 그의 몸에서 더는 암세포를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됐다.

    최근엔 부부 동반으로 만리장성에 다녀왔다. 중국 암환자 단체인 CCSR과 아스트라제네카 중국지사에서 주최한 폐암 인식 캠페인에 초대받은 것이다. 이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만리장성에 오르면서 ‘폐암 덕분에’ 오히려 행복을 되찾았다고 느꼈단다. 그는 다른 암환자들을 만나면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모든 암환자들이 암 진단 즉시 죽음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이제는 병원을 살기 위해 가는 곳이라 믿고 끝까지 암과 싸워 이겼으면 한다.”

    비록 몸엔 폐암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라도 그의 말에서 절망과 좌절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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