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에게 휴대용 항암제 주입기를 달고 있다.
이처럼 1세대 항암제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무차별로 공격했다면, 2세대 항암제인 표적 치료제는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도록 설계돼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표적 치료제의 등장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암을 극복 가능한 질환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표적 치료제 글리벡…백혈병을 만성 질환으로 바꿔
2001년 세계 최초의 표적 치료제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의 등장으로 만성골수성백혈병은 5년 생존율이 90%까지 높아졌다. 국내 2000여 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하루 한 번 약을 복용함으로써 암을 만성 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10% 미만의 소수 환자에서는 내성이 나타나 글리벡으로는 더 치료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내성은 상당 부분 항암치료를 너무 쉽게 생각해 약물 복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복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 글리벡에 저항성이 있고 내성을 보이지 않는 소수의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는 차세대 백혈병 치료제 타시그나(성분명 닐로티닙)와 스프라이셀(성분명 다사티닙) 등이 등장해, 글리벡에 내성을 보여 치료가 어려웠던 환자들에게 희소식이 되고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개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차세대 백혈병 치료제가 억제하지 못한 나머지 하나의 변이체에도 효과를 나타내는 3세대 치료제의 임상도 진행 중이다. 또한 향후엔 1, 2, 3세대 치료제 등 여러 가지 표적 치료제를 한꺼번에 쓰는 병용요법이 일차적인 치료법으로 사용돼 내성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완치도 가능케 할 전망이다.
여성 암 1위 유방암, 차세대 항호르몬 치료제로 재발·부작용 없이 치료
유방암에 대한 항호르몬 치료제인 아리미덱스.
지난 수십 년간 항호르몬 치료의 대표적 약제로 사용된 것은 타목시펜이었다. 그러나 타목시펜은 수술 후 약 5년간은 재발을 막을 수 있으나 이후엔 큰 효과가 없고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자궁내막암, 뇌졸중, 혈전색전증 등의 유발 위험성이 있다.
최근엔 부작용 및 재발률을 개선한 차세대 항호르몬 치료제인 아로마타제 억제제가 주목받고 있다. 아로마타제 억제제는 에스트로겐이 생성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유방암 세포가 자라는 것을 차단해 유방암 재발을 막는다. 노바티스의 페마라(성분명 레트로졸)와 아스트라제네카의 아리미덱스(성분명 아나스트로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페마라는 진행성 유방암의 치료뿐 아니라 조기 유방암에서의 조기보조요법과 5년 동안 타목시펜 치료 이후 연장보조요법이 모두 가능한 유일한 유방암 치료제다.
2003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투주맙)은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고 유방암 성장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인 ‘HER 2’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전이성(말기) 유방암 치료제다. 덕분에 탈모, 구토 등 일반 항암제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작용이 크게 줄었다.
GSK의 타이커브(성분명 라파티닙)도 무차별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기존 항암제와 달리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여 일명 ‘똑똑한 폭탄’으로 불린다. 타이커브는 저분자 이중 키나아제 억제제로 허셉틴이나 다른 치료제로 실패한 진행성 또는 전이성 ErbB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뇌종양으로 진행된 유방암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시판이 예상되며, 현재 타이커브를 개발 중인 GSK에서 동정적 사용 승인 프로그램 진행으로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혁신적 폐암 표적 치료제, 이레사…기존 항암제 비해 부작용 훨씬 적어
폐암 치료제 이레사.
임상적으로도 이레사는 효과가 입증됐다. 서양인보다 동양인에게 효과가 우수하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여성, 비흡연자, 선암 환자들에게 효과가 더욱 높게 나타나 주목을 받았다. 올해는 임상연구를 통해 이레사를 복용한 사람이 정맥주사제인 도세탁셀로 치료받은 환자들과 생존율 면에서 동등함이 밝혀지기도 했다.
폐암 표적 치료제의 첫 문을 연 이레사에 이어 작티마와 리센틴도 폐암을 혁신적으로 치료할 신약으로 기대되고 있다. 종양 주요 신호 경로에 선택적으로 작용해 종양 혈관 생성을 차단하고 암세포의 증식과 생존을 억제하는 다중표적 치료제인 작티마와 혈관내피성장인자 수용체의 신호를 차단해 종양 혈관의 생성을 차단하는 기전을 가진 리센틴은 암세포의 성장을 강력히 억제하는 차세대 폐암 치료제로 평가받고 있다.
다중표적 항암제, 수텐…종양의 성장과 혈액 공급 동시 차단
다중표적 항암제 수텐.
표적 치료제가 한두 가지 표적인자만 공격하는 반면, 다중표적 항암제는 다수의 표적인자를 동시에 공격함으로써 기존 표적 치료제보다 항암효과가 훨씬 강화됐다.
현재 진행성 신세포암과 글리벡 치료에서 실패한 GIST(위장관기저종양)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화이자의 수텐은 종양의 성장과 혈액 공급을 동시에 차단하는 다중표적 항암제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마찬가지로 산소와 영양을 주변 혈관에서 공급받는다. 암세포가 자라기 위해서는 이처럼 새로운 혈관 형성이 잘돼야 하는데, 수텐은 암세포에 대한 공격 외에도 혈관 신생 차단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다중표적 항암제의 등장으로 암 치료의 패러다임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예전엔 종양을 죽이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암이 몸에 남아 있더라도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오래 살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완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암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함께 살아가는 질병’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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