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약주를 한잔하신 아버지께서 내시 옷을 열심히 다림질하고 있는 저를 보더니 혀를 끌끌 차시며 말씀하시더군요. ‘야, 이놈아! 네 정체는 뭐냐?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 너 늙어서 뭐가 될래?’라고요.”
송용진(35) 씨는 젊은 나이임에도 흔치 않은 이력을 지녔다.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중앙대 한국화과 졸업, 실적 좋은 잡지사 영업사원, 영국 런던 그리니치대학 대학원에서 예술행정 전공…. 미술학도에나 걸맞을 그가 엉뚱하게도 우리 전통 궁궐에 푹 빠져 지난해 4월 ‘쏭 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이라는 책까지 냈다. 어쩌다 ‘궁궐 마니아’가 된 걸까.
“몇 년 전 일입니다. 주말마다 TV 채널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아버지와 저는 늘 신경전을 벌였죠. 아버지께서 즐겨 보시는 건 ‘왕의 눈물’이라는 사극, 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내내 영업일 하느라 지친 심신을 달랠 요량으로 보기에 편안한 프로그램을 고집했어요. 그러나 어떻게 아버지의 주장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매번 아버지의 승리(?)에 지쳐 억지로 사극을 봤죠. 그런데 묘한 것이 언젠가부터 제게도 사극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셨어요. ‘너를 키워주신 할머니도 조선 왕조의 백성이셨다.’ 바로 다음 날 저는 사극의 무대인 경복궁을 찾아갔죠.”
그러나 송 씨의 기대와 달리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전경은 한마디로 ‘썰렁’했다. 드문드문 자리를 지키고 선 초라하고 퇴색한 건물들. 임금님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만 같은 화려한 정원 대신 모습을 드러낸 텅 빈 공터들. 실망한 그는 곧바로 궁궐에 관한 책들부터 샀다. 그러고는 읽고 또 읽었다. 인터넷 동호회의 궁궐 특강에도 참여했다. EBS의 조선왕조 특강도 보았다. ‘궁궐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송 씨는 주말이면 무조건 궁궐을 찾아서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무수히 사진을 찍고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회화가 전공인 만큼 궁궐 스케치 또한 어렵지 않았다. 궁궐의 가려진 참모습들을 ‘재발견’할수록 그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송 씨는 ‘영업왕’에까지 올랐던 직장마저 때려치웠다. 직장을 그만둔 당일에도 귀가하기 전에 궁궐에 들렀다. 이튿날부터 그는 자신이 수집한 궁궐 정보들을 빼곡히 담은 홈페이지를 독학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궁궐 관련 지식이 쌓여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경복궁 근정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한 관람객이 ‘여기가 임금님이 매일 일을 한 곳인가봐!’라고 하는 거예요. 순간 저도 모르게 ‘그게 아니고, 이곳은 아침마다 회의를 한 곳입니다. 또 외국 사신이 오면 어쩌고저쩌고…’라며 설명을 해줬죠. 영업사원으로 뛸 때 터득한 노하우 덕분일까요? 한참 동안 근정전에 대해 설명하니 제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놀랐죠. 더욱 놀란 건 제가 옆 건물로 이동하니 따라오는 거예요. 그러고는 또다시 제 설명을 기다리는 겁니다. 궁궐 가이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송 씨의 궁궐 사이트 게시판에 감사의 글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곤 하던 무렵, 한 중학교 교사가 궁궐 관련 특강을 부탁하는 글을 그에게 남겼다. 경복궁에서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던 많은 관람객들을 생각하니 없던 자신감도 생겼다. 그는 ‘따분하고 지겹기만 한 궁궐 특강’이라는 선입관을 없애기 위해 특강 중간중간에 학생들에게 내줄 ‘깜짝 퀴즈’까지 준비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
다음 중 조선의 5대 궁궐이 아닌 곳은?
①경복궁 ②창덕궁 ③창경궁 ④경운궁 ⑤용궁(물론 정답은 용궁이었다. ‘용궁’은 송 씨의 집 인근에 있는 20년 전통의 중화요릿집 이름이었다고 한다.)
쉽고도 재미있는 ‘눈높이’ 궁궐 특강은 계속 이어졌다. 사명감에 불탄 송 씨는 급기야 집 앞의 한복집으로 달려가 거금 40만원을 주고 과거 내시들이 입었던 옷과 똑같은 한복까지 맞췄다. 그 뒤로 그는 명실상부한 ‘쏭(송)내관’이 됐다. 궁궐 가이드를 할 때도, 학생 대상 특강을 갈 때도 내시 옷은 필수품이니 마침내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결국 그는 궁궐 책까지 내게 됐다.
“창덕궁의 후원 지역은 일반인이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도 몰래 들어가다가 여러 번 걸렸죠. 어느 날은 거기서 공사를 하기에 인부인 척하고 들어가 사진을 찍던 중에 걸리기도 했어요. 하여간 별 쇼를 다 했습니다. 그래도 원하던 사진을 마음껏 찍었으니 지금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겠죠?”
송 씨는 1년여 전부터 필리핀 바기오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때론 컴퓨터 수리도 하고, 때론 매니저로서 강사들을 관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수강생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쏭반장’.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주인공 ‘홍반장’처럼 어학원의 갖가지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때문이다.
궁궐 마니아 ‘쏭내관’ … 젊은 나이에 흔치 않은 이력
“대안적인 삶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타인과 사회에 대해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저는 제가 좋아하는 뭔가에 한번 빠지면 오로지 그것만 생각합니다. 영업사원을 그만둔 것도 궁궐이 좋아서죠. 언제나 하루 일과의 기준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대학시절 후원금을 거둬 모교 축구장에 잔디를 깔 때도 그랬어요. 그때는 밥을 먹으면서도 시금치 같은 녹색 반찬을 보면 ‘아, 잔디, 잔디를 깔아야 해!’라고 생각했으니…. 궁궐을 공부할 때도 그랬고요. 어쨌든 저는 멧돼지의 단순함을 좋아합니다. 먹이가 나무 뒤에 있으면 그 먹이를 가로막고 있는 나무를 치받는 그 단순함. 보통 사람들은 나무를 보면 일단 돌아갈 생각부터 하지 않나요? 돌아가면 쉬우니까. 아니, 나무를 없애는 것보다는 쉬우니까 말이죠.”
좋아하는 ‘그 무엇’에 미쳐 살아가는 것이 송 씨의 인생철학이다. 지금 그는 꿈꾼다.
“제가 일하고 있는 어학원의 수강생들이 멧돼지처럼 무식하게 공부해서 영어를 잘했으면 하는 게 지금의 꿈이죠. 제게 꿈이란 건 먼 것이 아니라 늘 가장 쉬운 것들입니다. 궁궐에 미쳤을 때도 거창하게 일제 청산을 외치지는 않았어요. 그냥 궁궐이 훌륭하게 복원되고 사람들이 궁궐을 제대로 알았으면 했지요. 앞으로도 꿈은 또 바뀌겠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든, 저는 ‘그 무엇’만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거.”
송용진(35) 씨는 젊은 나이임에도 흔치 않은 이력을 지녔다.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중앙대 한국화과 졸업, 실적 좋은 잡지사 영업사원, 영국 런던 그리니치대학 대학원에서 예술행정 전공…. 미술학도에나 걸맞을 그가 엉뚱하게도 우리 전통 궁궐에 푹 빠져 지난해 4월 ‘쏭 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이라는 책까지 냈다. 어쩌다 ‘궁궐 마니아’가 된 걸까.
“몇 년 전 일입니다. 주말마다 TV 채널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아버지와 저는 늘 신경전을 벌였죠. 아버지께서 즐겨 보시는 건 ‘왕의 눈물’이라는 사극, 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내내 영업일 하느라 지친 심신을 달랠 요량으로 보기에 편안한 프로그램을 고집했어요. 그러나 어떻게 아버지의 주장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매번 아버지의 승리(?)에 지쳐 억지로 사극을 봤죠. 그런데 묘한 것이 언젠가부터 제게도 사극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셨어요. ‘너를 키워주신 할머니도 조선 왕조의 백성이셨다.’ 바로 다음 날 저는 사극의 무대인 경복궁을 찾아갔죠.”
그러나 송 씨의 기대와 달리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전경은 한마디로 ‘썰렁’했다. 드문드문 자리를 지키고 선 초라하고 퇴색한 건물들. 임금님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만 같은 화려한 정원 대신 모습을 드러낸 텅 빈 공터들. 실망한 그는 곧바로 궁궐에 관한 책들부터 샀다. 그러고는 읽고 또 읽었다. 인터넷 동호회의 궁궐 특강에도 참여했다. EBS의 조선왕조 특강도 보았다. ‘궁궐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송 씨는 주말이면 무조건 궁궐을 찾아서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무수히 사진을 찍고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회화가 전공인 만큼 궁궐 스케치 또한 어렵지 않았다. 궁궐의 가려진 참모습들을 ‘재발견’할수록 그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송 씨는 ‘영업왕’에까지 올랐던 직장마저 때려치웠다. 직장을 그만둔 당일에도 귀가하기 전에 궁궐에 들렀다. 이튿날부터 그는 자신이 수집한 궁궐 정보들을 빼곡히 담은 홈페이지를 독학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궁궐 관련 지식이 쌓여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경복궁 근정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한 관람객이 ‘여기가 임금님이 매일 일을 한 곳인가봐!’라고 하는 거예요. 순간 저도 모르게 ‘그게 아니고, 이곳은 아침마다 회의를 한 곳입니다. 또 외국 사신이 오면 어쩌고저쩌고…’라며 설명을 해줬죠. 영업사원으로 뛸 때 터득한 노하우 덕분일까요? 한참 동안 근정전에 대해 설명하니 제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놀랐죠. 더욱 놀란 건 제가 옆 건물로 이동하니 따라오는 거예요. 그러고는 또다시 제 설명을 기다리는 겁니다. 궁궐 가이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송 씨의 궁궐 사이트 게시판에 감사의 글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곤 하던 무렵, 한 중학교 교사가 궁궐 관련 특강을 부탁하는 글을 그에게 남겼다. 경복궁에서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던 많은 관람객들을 생각하니 없던 자신감도 생겼다. 그는 ‘따분하고 지겹기만 한 궁궐 특강’이라는 선입관을 없애기 위해 특강 중간중간에 학생들에게 내줄 ‘깜짝 퀴즈’까지 준비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
'지금 여기서'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사는 것이 진정한 대안적 삶이라고 하는 송용진 씨.
①경복궁 ②창덕궁 ③창경궁 ④경운궁 ⑤용궁(물론 정답은 용궁이었다. ‘용궁’은 송 씨의 집 인근에 있는 20년 전통의 중화요릿집 이름이었다고 한다.)
쉽고도 재미있는 ‘눈높이’ 궁궐 특강은 계속 이어졌다. 사명감에 불탄 송 씨는 급기야 집 앞의 한복집으로 달려가 거금 40만원을 주고 과거 내시들이 입었던 옷과 똑같은 한복까지 맞췄다. 그 뒤로 그는 명실상부한 ‘쏭(송)내관’이 됐다. 궁궐 가이드를 할 때도, 학생 대상 특강을 갈 때도 내시 옷은 필수품이니 마침내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결국 그는 궁궐 책까지 내게 됐다.
“창덕궁의 후원 지역은 일반인이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도 몰래 들어가다가 여러 번 걸렸죠. 어느 날은 거기서 공사를 하기에 인부인 척하고 들어가 사진을 찍던 중에 걸리기도 했어요. 하여간 별 쇼를 다 했습니다. 그래도 원하던 사진을 마음껏 찍었으니 지금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겠죠?”
송 씨는 1년여 전부터 필리핀 바기오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때론 컴퓨터 수리도 하고, 때론 매니저로서 강사들을 관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수강생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쏭반장’.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주인공 ‘홍반장’처럼 어학원의 갖가지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때문이다.
궁궐 마니아 ‘쏭내관’ … 젊은 나이에 흔치 않은 이력
“대안적인 삶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타인과 사회에 대해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저는 제가 좋아하는 뭔가에 한번 빠지면 오로지 그것만 생각합니다. 영업사원을 그만둔 것도 궁궐이 좋아서죠. 언제나 하루 일과의 기준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대학시절 후원금을 거둬 모교 축구장에 잔디를 깔 때도 그랬어요. 그때는 밥을 먹으면서도 시금치 같은 녹색 반찬을 보면 ‘아, 잔디, 잔디를 깔아야 해!’라고 생각했으니…. 궁궐을 공부할 때도 그랬고요. 어쨌든 저는 멧돼지의 단순함을 좋아합니다. 먹이가 나무 뒤에 있으면 그 먹이를 가로막고 있는 나무를 치받는 그 단순함. 보통 사람들은 나무를 보면 일단 돌아갈 생각부터 하지 않나요? 돌아가면 쉬우니까. 아니, 나무를 없애는 것보다는 쉬우니까 말이죠.”
좋아하는 ‘그 무엇’에 미쳐 살아가는 것이 송 씨의 인생철학이다. 지금 그는 꿈꾼다.
“제가 일하고 있는 어학원의 수강생들이 멧돼지처럼 무식하게 공부해서 영어를 잘했으면 하는 게 지금의 꿈이죠. 제게 꿈이란 건 먼 것이 아니라 늘 가장 쉬운 것들입니다. 궁궐에 미쳤을 때도 거창하게 일제 청산을 외치지는 않았어요. 그냥 궁궐이 훌륭하게 복원되고 사람들이 궁궐을 제대로 알았으면 했지요. 앞으로도 꿈은 또 바뀌겠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든, 저는 ‘그 무엇’만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