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2014년 6월 오랜만에 스릴러, 누아르 영화가 대거 개봉했다. ‘우는 남자’ ‘하이힐’ ‘황제를 위하여’ 등 세 편이 동시에 상영관에 걸린 걸 보면 ‘대거’라는 부사가 과장만은 아니다. 그중 ‘황제를 위하여’는 이정범(‘우는 남자’ 감독)이나 장진(‘하이힐’ 감독)에 비해 아직은 낯선 박상준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의 문법은 직설적이다. 직설적이다 못해 자못 치기도 섞여 있다. 가령 이런 장면들 때문이다. 승용차 조수석에 앉은 주인공 이환이 글러브 박스를 열자 벤츠 열쇠가 반짝인다. 조직에 가담하길 꺼리는 그에게 보스가 제시하는 달콤한 유혹이다. “그래도 삼각별 정도면 먹힌다 아이가.” 보스는 이런 말도 건넨다. “니 이름이 좋다 아이가, 환. 돈 냄새 안 나나.”
물론 ‘황제를 위하여’는 부산 밑바닥 경제, 검은 돈에 대한 이야기다. 인문학적 대사나 진중한 철학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한국형 스릴러, 누아르 영화의 총정리 같은 작품이다. 회칼을 든 조직원들과 근육이나 살을 찢는 소리가 가득한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랄지, “돈 냄새는 맡되, 돈맛은 보지 마라” 같은 잠언 투의 대사들이 그렇다.
조직폭력배와 그 뒤를 봐주는 더 큰 세력, 정치적 거물과의 연관은 이미 여러 영화에서 선보인 그림이다. 이로 보자면 ‘황제를 위하여’에 새로운 점은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위 수컷들이 바라는 마초적 욕망을 말 그대로 날것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비린내가 난다면 피보다는 그 욕망의 원초성 쪽이 더 진원지에 가깝다. 칼을 들고 사람을 해하는 동안 환의 머리를 채우는 건 뜨거운 섹스를 나눴던 차 마담의 숨결이다. 환의 욕망에는 돈과 여자가 뒤섞여 있어 분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조직폭력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기엔 지나치게 순진하고, 욕망의 덧없음을 보여주기엔 허세가 과하다. 배우 이태임의 벗은 몸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순간, 영화가 말하는 남자의 욕망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어쩐지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본 듯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