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전날보다 0.5원 내린 1020.1원으로 마감한 이날 원·달러 환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장중 1020원 밑으로 내려갔다.
환율이 이렇듯 하락하는 이유는 최근 달러화가 국내로 많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느려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원화는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상거래와 자본거래로 달러 유입
달러화가 국내로 유입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경상거래 경로와 자본거래 경로다. 최근 이 두 경로를 통한 국내 달러 유입량이 크게 늘었다. 먼저 수출입을 통한 경상거래 측면을 보자. 우리나라는 26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799억 달러로 역대 사상 최대치였고, 올해 1~4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222억 달러로 이 역시 역대 1~4월 중 최대치다.
세계 경기가 회복되고 우리나라의 무역 증가세가 지속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도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해 달러화가 계속 유입될 것이다. 통상 연초보다 연말로 갈수록 수출 증가폭과 경상수지 흑자폭이 확대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올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거래 측면에서도 달러화가 많이 유입되고 있다. 1월부터 3월까지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총 3조1830억 원 순매도했지만, 4월부터 순매수세로 전환해 5월까지 2개월간 총 5조2620억 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주식을 매수하는 배경에는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된 우리나라의 양호한 경제 펀더멘털이 있다. 외환보유고는 11개월 연속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고 단기외채는 감소 추세를 보인다. 경상수지나 단기외채, 외환보유고 측면에서 경제 펀더멘털이 약하다고 평가받은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한 지난해 5월 이후 외국인 자금이 순유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경제 기초체력이 양호하다고 평가받은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은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총 86억 달러 규모의 국내 주식을 순매수했다. 경제 펀더멘털이 급격히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미국 연준이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글로벌 자금 흐름이 신흥국에서 빠져나와 선진국으로 회귀하더라도 이러한 차별화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상 밖 달러화 약세도 원화 강세, 즉 원·달러 환율 하락세를 부추긴다. 지난해만 해도 많은 전문가가 올해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해 시장에도 달러화가 덜 공급될 것이므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리라 전망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1%를 보이며 후퇴했고 소비를 뒷받침하는 주택경기 역시 최근 주춤한 상태다. 이들 요인이 맞물려 미국의 경기 회복은 예상보다 더뎌졌고, 그에 따라 달러화 역시 예상 밖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국제사회가 원화 환율이 저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 외환당국을 압박한다는 점도 최근 환율 하락에 한몫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4월 미 의회에 제출한 ‘2013 환율정책 반기보고서’에서 한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증가하는 외환보유고를 언급하며, 향후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도 4월 발표한 ‘2013년 연례협의 보고서’를 통해 원화 가치는 2~8% 저평가돼 있으므로 원화 가치 상승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여러 경로를 통해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한국 외환당국을 압박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외환 정책 필요
이렇게 보면 원·달러 환율 하락은 일종의 대세다. 문제는 왜 지금이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미약한 회복 국면이긴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회복은 수출에 힘입었던 부분이 크다. 민간소비나 설비투자 같은 내수경기는 좋지 않다. 세월호 사태가 발생해 내수경기 회복은 더 어려워졌다.
물론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 물가가 하락해 설비투자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소비자물가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미래 경기 회복에 아직 불확실성이 남아 있고 19개월째 연속 1%대에 머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환율 하락에 따르는 내수경기 회복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보다는 환율 하락으로 국내 기업의 수출전선에 들어오는 빨간불이 더 심각해 보이는 것이다.
수출 기업의 경우 환율이 하락하는 만큼 달러 표시 수출가격을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가격 인상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매출은 늘어나지만 영업이익은 줄어드는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내수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버텨주던 수출경기까지 꺼질 수 있다.
국제사회의 반복되는 경고를 감안하면 외환당국이 환율 하락을 막으려고 시장에 적극 개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환율 쏠림현상이 심화하지 않도록 안정적인 외환시장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단기적인 외화 유입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고 대외 대응능력도 확충해야 한다.
예컨대 외국 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상황에서는 해외 증권투자나 직접투자를 늘려 외화가 해외로 나가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형편을 고려하면 해외 자원개발에 대한 투자가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더불어 환율 급락 대비책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도울 수 있는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환리스크 관리를 위한 인력 교육 지원과 환변동 보험 홍보 같은 중·장기적 지원이 유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