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한류를 이끌고 있는 MBC ‘일밤-아빠! 어디가?’의 한 장면.
2014년 한류 예능프로그램 대표작은 MBC ‘일밤-아빠! 어디가?’다. 중국 후난위성TV에서 이 포맷을 수입, 한국 제목을 그대로 번역한 ‘빠빠취날’이란 타이틀을 달고 지난해 10월부터 방송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총 12회 방송분 평균시청률 4.3%, 최고시청률은 5.67%를 기록했다. 시청률 1%만 넘어도 성공작이라 평가하는 중국에서 실로 놀라운 성적이다. ‘빠빠취날’은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되고 영화로도 개봉됐다. 하이라이트 편집이나 다름없는 영화 버전도 한화로 1000억 원이 넘는 흥행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후난위성TV는 올여름 방송을 목표로 시즌2도 준비 중이다.
‘아빠! 어디가?’ 이전에도 ‘일밤-나는 가수다’ 등의 프로그램이 중국에서 리메이크된 적은 있지만 ‘아빠! 어디가?’의 성공은 기록적이다. 이후 중국에서 한국 예능프로그램 포맷 수입이 더욱 활발해졌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후난위성TV는 현재 ‘일밤-진짜 사나이’ 포맷도 수입하려고 MBC와 협의 중이다.
방송사들 포맷 수입 잇단 러브콜
이외에도 중국 스촨위성TV가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을, 절강위성TV는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포맷을 수입해 중국 내 방송이 확정됐다. ‘1박2일’은 8월부터 시즌2를 방송하며, ‘런닝맨’ 역시 올해 말 방송 예정이다.
이처럼 한국 예능프로그램 콘텐츠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자 중국 정부는 프라임 타임에 수입 포맷 프로그램의 방송을 제한하는 조치까지 내놓았다. 현재 중국 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외국 포맷 프로그램은 대부분 한국에서 수입한 것이기 때문에 이 정책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연예인의 중국 예능프로그램 출연도 제한했다는 이야기가 비공식 루트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중국 방송사들이 여전히 한국 방송사를 통해 예능프로그램 포맷 수입을 원하는 러브콜을 보낸다는 점은 현지에서 우리 프로그램의 뜨거운 인기를 증명하는 사례다.
중국인이 이토록 한국 예능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빠빠취날’에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 중국 모델 장리앙에게 중국인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중국 가정에는 대부분 자녀가 한 명이라 아이들이 소황제(小皇帝)라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며 “‘빠빠취날’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등장하고, 아이들이 다른 가정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설정을 갖고 있어 큰 인기를 끄는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인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점이 인기 열풍의 배경인 것이다.
드라마나 케이팝 등을 통해 형성된 한류팬이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 등을 통해 쉽게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를 접하는 점도 우리나라 예능프로그램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대다수 한류 관계자는 “외국 프로그램에 대한 중국 정부 규제가 날로 심해지고 있는데도 한국 프로그램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플랫폼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불법 다운로드를 무조건 근절하자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중국이 아직 예능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예능프로그램이 가진 세련된 재미가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분석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 예능프로그램이 중국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빠빠취날’ 방송을 통해 후난위성TV가 거둬들인 수익은 어마어마하지만, MBC가 받은 건 포맷 판매료 정도가 전부라는 점.
중국 동방위성TV로부터 포맷을 구매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은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와 중국 후난위성TV에서 방송중인 중국판 ‘아빠! 어디가?’ ‘빠빠취날’의 포스터.
CJ E·M이 수익만을 노리고 이런 계약을 한 건 아니다. CJ E·M 관계자는 수개월에 걸친 제작 컨설팅 과정에서 중국 방송 관계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이익이라고 밝혔다. 관계(중국어 ‘ 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중국인과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만나며 신뢰를 바탕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좀 더 영리한 접근 방식 필요
‘꽃보다 할배’의 메인 PD로 이번 합작을 통해 중국인과 본격적으로 교류 중인 나영석 PD는 “중국 시장을 대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당장의 일확천금을 바란다. 외화벌이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문화상품은 일방적으로 돈을 요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며, 그렇게 진행하는 비즈니스는 오래갈 수도 없다. 상황이 무르익을 때까지 교류와 협력을 계속하고 서로를 알아가며 스킨십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은 광활하고 매력적이다. 국내 경쟁이 포화상태에 이른 지금은 더욱 그렇다. 예능프로그램 제작진이 구태여 국내에 머물 필요는 없다. 다만 좀 더 영리한 접근방식을 고민해볼 시점이 왔다. 그래야만 양국 문화교류에 건강한 선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