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대중이 공감하는 토크쇼의 새 장을 연 JTBC ‘마녀사냥’의 한 장면.
그런데 스타가 하는 말의 내용이 차츰 바뀌고 있다. 방송가 스테디셀러인 토크쇼의 최근 키워드는 ‘공감’이다. 여전히 시선을 끄는 스타가 출연하지만 이들은 대중과 거리감이 느껴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더는 털어놓지 않는다. 그 대신 대중 시선과 맞닿은 것이라면 그 어떤 주제로도 이야기가 다양하게 뻗어간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종합편성채널 JTBC ‘마녀사냥’이다. 신동엽, 성시경, 유세윤, 허지웅 등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인이 대거 출연하지만 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청춘의 연애사다. ‘연예인만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과거 연애를 주제로 한 토크쇼에 단골로 등장하던 질문이 “연예인 누구에게 대시를 받아봤느냐”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새삼스럽다.
‘공감’ 키워드로 다양한 이야기
7월 8일 첫 방송된 SBS ‘매직아이’나 8월 첫 방송되는 KBS 2TV ‘나는 남자다’ 등 신규 예능프로그램은 유명인이 출연해 한바탕 이야기를 펼치지만 더는 자신의 이야기로 대중의 시선을 끌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녀사냥’과 닮았다. ‘매직아이’는 이효리, 문소리, 홍진경 같은 가수, 배우, 예능인 등 다양한 유명 스타가 출연해 사생활이 아닌 사회 이슈를 놓고 이야기한다. ‘나는 남자다’도 유재석을 중심으로 남자 예능인이 대거 출연하지만 결국 세상의 절반인 ‘남자’라는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펼칠 계획이다.
토크쇼의 이런 경향은 대중의 관심사가 더는 스타의 사생활 폭로에 있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마녀사냥’ 정효민 PD는 “대중이 스타의 이야기에 더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일단 나부터도 스타의 사생활에 관심이 가지 않는다”며 “MC들이 2030 청춘 누구나 공감할 연애 이야기를 하지, 스타만의 연애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남자다’ 이동훈 PD 역시 오늘날 대중의 관심이 은막 뒤에 가려진 스타에 있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그는 “요즘 대중은 스타를 통해 ‘나 역시 그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을 더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PD는 “여기에 더해 시청자는 빤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더는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나는 남자다’는 일반인 출연자의 즉흥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데 신경 쓴다. 일반인 스스로가 빚어내는 의외의 상황이 스타만의 이야기보다 대중의 시선을 더 많이 끌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마녀사냥’ 역시 스타 이야기의 공백을 일반인 출연자로 채우고 있다.
과거 MBC를 대표하는 토크쇼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를 연출했고 현재는 JTBC로 이적한 오윤환 PD는 “‘무릎팍도사’가 인기를 끌던 수년 전만 해도 대중은 스타가 출연해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스타가 역경을 딛고 성공한 스토리를 특히 좋아했다”며 “하지만 스타의 비슷비슷한 성공담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식상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근래 등장하는 토크쇼는 모두 연예인이 나오더라도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며 “스타의 병영 체험을 다룬 ‘일밤-진짜 사나이’나 육아고충을 다룬 ‘일밤-아빠! 어디가?’ 등의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군대, 육아 등은 대중 누구나 쉽사리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지 않나”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경향을 읽은 오 PD 역시 스타가 학교라는 익숙한 공간을 찾아가 학생들과 소통하는 콘셉트의 예능프로그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기획, 7월 12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CBS ‘데이비드 레터맨 쇼’나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 등 스타가 출연하는 1인 토크쇼가 해외에서는 여전히 독보적인 영향력을 떨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 관계자들은 미국에 비해 인구수가 적은 한국은 발굴되는 스타 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고, 이야기를 들어볼 만한 스타의 수요가 금세 동이 난다고 분석한다. 또 스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국 정통 토크쇼만의 특징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언급한 해외 토크쇼의 경우, 스타가 출연해도 한국처럼 ‘눈물콧물’을 쏙 빼는 자기고백이나 해명, 성공담 같은 스토리텔링이 아닌,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유머를 곁들인 잡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량도 15분 남짓이라 말하는 이나 듣는 이의 피로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스타의 말 여전한 영향력
새로운 토크쇼의 흐름을 보여주는 KBS ‘나는 남자다’(왼쪽)와 SBS ‘매직아이’.
MC가 운전하는 택시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콘셉트로 방송 초반 주목받은 케이블채널 tvN ‘현장토크쇼 택시’가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차별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변화를 거듭하지만 여전히 정통 토크쇼가 유지된다는 점은 수요가 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효민 PD는 “여전히 듣고 싶은 스타의 이야기는 있을 것”이라며 “단, 비슷한 스타의 이야기가 반복되던 토크쇼의 과잉 공급 시기가 지났고, 이제는 소수만 살아남은 만큼 정통 토크쇼는 여전히 제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직아이’ 김영욱 PD 역시 “스타의 말은 여전히 영향력을 가진다. 다만 오늘날 토크쇼에서는 스타 자신의 경험담이 에피소드 중심이 아닌, 자기 생각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토크쇼는 ‘스타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대중이 비로소 스타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점을 알려주는 셈이다. 이는 스타 신비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