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한 정치 엘리트들의 삶을 통해 바람직한 정치인상을 고민하게 한 KBS 드라마 ‘정도전’.
엘리트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 또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에는 통상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거나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일에 종사하는 이를 말한다.
많은 사건 사고로 유독 어지러웠던 2014년 상반기, 사회 구성원이 각자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이가 엘리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엘리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드라마의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정도전’에는 주인공 정도전을 비롯해 다양한 역사 속 실존 인물이 등장했다. 이들을 비교해봄으로써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을 돌아볼 수 있었다. 먼저 고려 권세가 이인임은 오랜 기간 권력의 맛을 보며 고려를 곧 자신으로 정의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자신의 안위를 위하는 것이 곧 고려의 안위라 생각한 이인임의 독선은 이런 세계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정치엔 선물이라는 게 없네.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주는 뇌물만 있을 뿐” 등 이인임의 입에서 나온 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정치관은 스스로는 노련함이라 변명하겠지만, 실은 타락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이인임은 현실과 쉽사리 타협한 정치 엘리트의 비겁한 맨얼굴을 볼 수 있게 해줬다.
어지러운 시대 지도층 역할과 책임
아버지의 형제와도 같은 정몽주나 정도전을 죽이고 자신의 친형제도 피바람 속에 몰아넣은 뒤 왕좌를 가로챈 이방원은 야망과 야욕에 지배당한 인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고려 충신’으로 기억되는 정몽주를 통해 시청자는 이들과는 반대 지점에 선 엘리트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우직한 충정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마음 역시 보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이인임의 간교한 노림수에도 불굴의 의지로 살아남은 정도전에게서는 자신이 품은 이상을 실현하고자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젊은 엘리트의 기개를 봤다. 정몽주를 믿고 따르며 정치적 동반자로 여기다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도 진심과 열성을 다해 소통하려고 애쓰는 이성계를 통해서는 고매한 인격을 느낄 수 있었다. 정치적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고 헐뜯기 바쁘거나 초심을 잃고 권력만 좇는 오늘날 정치인의 모습과 다른 이들이 곧 이상적 정치 엘리트들이다.
권력과 유착해 타락한 변호사 김석주가 기억상실을 기점으로 과거 자신이 저지른 일들의 무게를 깨닫고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 ‘개과천선’은 좀 더 직접적으로 엘리트의 비도덕성을 겨냥한 메시지를 드러냈다(관련 기사 74쪽 참조).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해 법조계 엘리트의 실상을 다룬 MBC 드라마 ‘개과천선’(왼쪽). 사회 각 분야 엘리트가 모여 조직한 비밀 클럽 골든크로스를 통해 우리 사회 엘리트의 뒷모습을 보여준 KBS 드라마 ‘골든크로스’.
이들 세 드라마는 인터넷 세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대중이 공감했다는 것은 허구의 이야기에서 현실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비교적 긴 호흡의 50부작 ‘정도전’의 경우 백성과 나라를 위한 이상 실현이라는 책임 의식으로 분투하는 정도전의 모습, 그리고 노선이 다를지언정 서로를 깊이 존중하는 이성계와 정몽주의 인격이 시청자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는 점에서 600년 전이나 현재나 여전히 유용한 이상적인 엘리트상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허구에서 적나라한 현실 반영
‘개과천선’이나 ‘골든크로스’는 직접적으로 오늘날 엘리트의 책임감 부재나 윤리 의식 부재를 꼬집었다. 정의로운 인물이 승리하고 타락한 기득권층이 몰락하는 권선징악의 결말을 통해 시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이들 드라마를 통해 ‘엘리트란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 역시 다시 해보게 됐다. 과거엔 학벌이나 지적 수준 등이 엘리트를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책임 의식이나 윤리 의식 역시 엘리트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3편의 드라마는 그렇게 우리 사회가 잘 먹고 잘살겠다는 이유 하나로 정의나 윤리보다 욕심과 야망을 더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되새겨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