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야권은 일제히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도 “그 정도면 스스로 사퇴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했고, 박영선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문 후보자가)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인지, 일제 조선총독부 관헌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장면이 보도됐다”며 총공세를 폈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주류는 “섣불리 재단하기는 이르며 문 후보자의 직접 해명을 듣고 업무 능력을 파악하기 전까지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누리당 윤상현 사무총장은 6월 12일 “말 몇 마디를 갖고 그의 삶을 재단하고 생각을 규정하려 한다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 했고, 하태경 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문 후보자의 발언이나 글을 자세히 보면 친일이 아닌 극일(克日)이며 대한민국을 열렬히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그를 옹호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이러한 역사 인식을 갖고 국정운영을 할 텐데 앞날이 걱정된다”(정문헌 의원),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그럼에도 대한민국 총리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이 형성된다면 (사퇴 여부를) 본인이 판단해야 할 것”(김성태 의원) 같은 용퇴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식민지 하나님의 뜻” 역사관 논란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를 대신할 ‘회심의 카드’가 다시 위기에 빠지자 청와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청와대의 후속 인사 발표도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책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안대희 카드’에 이어 ‘문창극 카드’마저 던져버린다면 하반기 국정운영과 세월호 국정조사 등에서 야당에게 밀린다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마당에 자진 사퇴하거나 지명 철회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의 스타일상 과거 청문회 후보자들처럼 저자세로 나오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엿보인다. 국회는 임명동의안을 제출받으면 20일 내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청문회를 열어도 여야 힘겨루기 상황에서 야당 청문위원들과 문 후보자의 불꽃 튀는 공방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청문회 ‘빅이슈’는 문 후보자의 역사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자가 2011년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에서 한 특강 동영상에는 일본의 식민지배 당위론과 남북분단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라며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너희는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는 시련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듬해 강연에서는 조선 민족과 관련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라고 말했다.
다른 과거사도 언급했다. 2012년 강연에선 제주 4·3 민주항쟁과 관련해 “제주도 4·3 폭동사태라는 게 있어서 (중략)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라고 말했고,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아와 가지고 경제 개발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지금 우리보다 일본이 점점 사그라지잖아요. 그럼 일본의 지정학이 아주 축복의 지정학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거란 말이에요”라고 설명했다. 해방(解放)에 대해선 “어느 날 갑자기, 뜻밖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신 거예요. 미국한테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한테 거저 해방을 갖다 준 거예요”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문 후보자 측은 “‘우리 민족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는 보도 내용은 윤치호의 발언을 인용했을 뿐인데 마치 문 후보자가 발언한 것처럼 왜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도 우리 국민이 이를 잘 극복해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는 취지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신앙 간증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귀납하는 의식인 만큼 신앙적 표현과 세속적 입장은 구분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직 대통령 칼럼, 박사 취득 과정도 쟁점
문 후보자는 6월 11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들어서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책임총리는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했다. 이날 오후에도 “책임총리는 모르겠다”고 확인해 논란을 자초했다. 책임총리제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려는 목적에서 내건 공약.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 난맥상을 바꾸고 국가 개조라는 중대사를 추진하려면 책임총리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의 지적을 애써 외면한 듯한 모습이었다. 야권에게는 공격 빌미를 줬다. 새정치민주연합 금태섭 대변인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여론에는 귀를 닫은 채 청와대 해바라기 행보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문 후보자는 논란이 커지자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책임총리는 법에서 정한 용어가 아니라는 의미였다”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내각을 통할하면서 특히 세월호 사건으로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국가 개조, 즉 비정상의 정상화, 안전 혁신, 공직 개혁 및 인사 혁신, 부정부패 척결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지만, 엎질러진 물이 됐다.
과거 발표한 칼럼 내용도 청문회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 후보자는 2009년 5월 ‘공인의 죽음’이라는 ‘중앙일보’ 칼럼에서 서울시청 앞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 모습을 전하며 “국가지도자라면 그런 식의 죽음이 끼칠 영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평가했다. 이어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대 자살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 나라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까지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그 영향이 어떻겠는가”라며 질문을 던졌다. 앞서 2009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할 즈음 칼럼을 통해 비자금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을 빚었다. 김대중평화센터와 노무현재단은 ‘지명 철회’를 주장했다.
이 밖에 야당은 문 후보자가 워싱턴 특파원 시절이던 1993년 서울대에서 ‘한미 간의 갈등유형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경위도 검증할 계획이다. 1990~93년 특파원으로 활동한 만큼 휴직 없이 박사 과정을 병행할 수 있는지, 과목 이수는 어떻게 했는지 등을 따져 물을 심산이다. 동생이 구원파로 분류되는 교회의 장로라는 점도 청문회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