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늘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왜 미국이 중요하며, 왜 세계가 미국에 중요한지 공부하고 생각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썼다. 우리 앞에는 미국을 용감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 내려야 할 어려운 결정이 많다. 우리가 세계를 이끌고 우리와 나머지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려야 할 어려운 결정들이 있다.”
“두 번째 도전 아직 결정 못 해…”
2016년 차기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유력 후보이기도 한 그의 입에 미국과 전 세계 언론이 주목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 여전히 운만 뗐다. 그는 이날 저녁 시카고에서 열린 대규모 강연회에서 “(나는) 두 번째 대권 도전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누가 출마하든 대통령 후보에 대한 국민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부정적 공격이 아닌 긍정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발행된 일간지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2008년과 비교할 때 2016년 대선에 나설 여성 후보는 정치적으로 더 나아진 분위기에서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자신의 처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후 2주 동안 미국 전역 15개 이상 도시를 돌며 북 투어를 갖기로 했다. 사실상 대선 유세에 들어간 것이라고 미국 언론은 평가했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발간하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정치인이 선거 출마 공식 선언을 앞두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클린턴 전 장관 역시 각종 강연회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강점을 부각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출마의 정당성을 호소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미국 내 각종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의 클린턴 대세론은 이미 기정사실이 된 지 오래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성향 유권자의 69%가 클린턴을 대선후보로 선호했다. 공화당 쪽에서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이 각각 13%로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민주당 내 경쟁자인 조 바이든 부통령은 12%의 선호도를 얻는 데 그쳤다. 지금 바로 대선을 치른다면 클린턴 전 장관은 백악관의 안주인이 아니라 주인 자리를 차지할 공산이 크다.
회고록 ‘어려운 결정들’도 정확하게 대선 구도의 소품으로 기획,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재임 시절 비밀스러운 사실들을 선정적으로 폭로하는 대신, 4년여 동안 국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다양한 국제정치 이슈에 직면했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고민한,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각인하는 데 주력했다는 평가다.
관심을 모은 한반도 관련 부분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행정부 1기의 한반도 정책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은 단 한 건도 공개되지 않았다. 특히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미국이 한반도 국지전 발생을 우려해 북한과 2012년 2·29 합의로 이어지는 대화를 추진한 대목이나, 이명박 정부의 강경파와 논쟁을 벌인 과정에 대한 언급도 일절 없다. 역사를 포괄적으로 기술하면서 간간이 개인적 경험과 당시 생각을 풀어놓았을 뿐이다.
대표적인 대목이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인 2010년 7월 2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군사정전위원회 건물을 방문했을 때 창문을 통해 자신을 노려보던 북한 병사와의 조우를 회고하는 부분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그(병사)는 그저 궁금했을지 모른다. 만일 나를 겁주려는 것이었다면 그는 실패했다. 나는 브리핑에 집중했고 동행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은 즐거운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며 기록했다.
2010년 7월 21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이 비무장지대(DMZ) 안의 오울렛 초소를 방문해 쌍안경으로 북한 쪽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 외교안보를 책임지는 국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함께 DMZ를 찾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회고록에는 북한에 억류됐던 두 미국 여기자, 유나 리와 로라 링을 석방하기 위해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직접 평양에 보내는 과정도 생생히 담겼다. 당시 북한은 석방 명분을 찾으려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문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참모 일부는 이를 반대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일부는 2008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남편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지만, 대부분은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하는 것이 동맹국들의 우려를 낳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밀어붙였고 사전 회의에서 남편에게 공식 사진을 촬영할 때 웃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소개했다. 임무 수행에 성공한 남편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북한인과의 만남을 “마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오디션을 보러 간 것 같았다”고 농담했다고 적었다.
회고록은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화 가능성에 대해선 묘한 여운을 남겼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유야무야된 것은 2001년 집권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악의 축’ 발언 등으로 전임자인 남편의 정책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자 두 명을 데리고 나온 남편은 ‘우리가 적당한 보상을 제시한다면 적어도 어떤 지점에서는 북한도 긍정적으로 반응한다’고 믿었다”는 대목도 있다.
북 3대 세습 부정적 인식
한편 클린턴 전 장관은 회고록 출간을 하루 앞둔 6월 9일 ABC방송에 나와 “우리는 백악관을 나오면서 거의 무일푼이었고 빚까지 졌다”며 암울했던 가족의 재정사를 털어놓았다. “2001년 퇴임 당시 변호사 비용 등 수백만 달러를 빚지고 있었고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비용과 딸(첼시)의 교육비를 대는 데 고생했다. 쉽지 않았다”는 것. 데인 소여 앵커가 “2013년 장관 퇴임 뒤 강연료로 500만 달러를 벌었고 남편은 대통령 퇴직 뒤 1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보도를 보았느냐”고 묻자 나온 답이었다.
하지만 앵커는 “보통 1회 강연료가 20만 달러라고 들었다. 연봉의 5배를 1회 강연료로 받는다는 사실을 보통 미국인이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다시 물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돈을 벌려고 강연하는 것은 공직생활을 떠난 상당수 인사처럼 대기업이나 특정 단체의 로비스트 또는 컨설턴트가 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강연료와 인세로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은 그가 보통 미국인을 대표할 수 있는지를 놓고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