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을 띄우기 위해 메주콩을 쪄내고 있다. 원 안은 완성된 청국장.
조선시대 궁궐에 들어가던 진상품
콩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장단콩이다. 장단은 자유로 끝에 자리한 임진각과 자유의 다리로 연결된 땅이다. 우리나라에 지명이 들어가서 특화된 콩은 장단콩뿐이다. 장단콩의 연륜은 녹록지 않다. 조선시대엔 진상품으로 궁궐에 납품됐다. 납품된 것은 간장, 된장이 되어 수라상에 올랐다. 1913년 농가의 콩 재배 장려 품종으로 처음으로 채택된 게 ‘장단백목(長湍白目)’이다. 장단백목은 장단콩 중에서 특별히 선별된 품종이다. 69년에 처음으로 콩 종자를 교배해 ‘광교(光敎)’라는 품종을 만들었는데, 이 품종은 장단백목과 일본에서 들여온 육우3호를 교배한 것이다.
그런데 장단콩이 단순히 한국의 콩으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주장단콩축제가 매년 11월에 임진각에서 열리는데, 올해의 행사 주제는 ‘세계콩의 효시! 파주 장단콩!’이다. 콩의 종주국이자 원산지가 한반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구호다. 콩을 처음 재배한 지역은 고구려인이 살던 만주 땅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원전 4000~5000년에 콩이 만주 땅에서 재배됐고,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00~1500년 무렵에 재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콩의 원산지임에도 우리 콩이 세계를 장악하기는커녕 우리의 콩 자급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과 중국에서 들어온 콩이 우리 식탁을 휩쓸고 있으니 씁쓸한 일이다.
쌀값 두 배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
하지만 요사이는 우리 콩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파주장단콩축제장에서는 콩 경매장이라도 된 듯 왁자한 난장이 벌어진다. 파주 임진강 주변 700ha 땅에서 수확된 2만1000가마(1가마에 70kg) 중 7000가마가 올해는 이 축제 기간에 팔려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축제를 열어 이처럼 옹골지게 특산물을 팔아대는 행사는 별로 없을 것이다. 파주시농업기술센터에 근무하는 김만수 씨는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콩을 사러 축제장을 찾아온다”고 했다.
장단콩은 노란색 메주콩이다. 장단면과 맞닿아 있는 파주시 군내면 백련리 통일촌이 장단콩마을로 알려져 있다. 행정자치부의 정보화마을로 지정돼 있고, 슬로푸드 체험장도 있어 농촌체험 행사도 진행한다.
통일촌 두부음식 전문점에서 파는 두부정식. 햇볕 좋은 마당에 항아리를 줄 세워놓고 된장을 숙성시킨다. 통일촌 콩밭에서 한창 콩타작을 하고 있다.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장단 지역에서 콩 농사가 잘되는 첫 번째 이유는 물 빠짐이 좋은 마사토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임진강 하구라 땅이 비옥하고, 서해가 가까워 소금기 있는 바람에 작물의 저항력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 장단 지역에서는 인삼 농사를 짓는 비옥한 땅에 콩을 키운다. 이곳에서는 홍삼 제조용 6년근만을 계약 재배하는데, 인삼 농사를 한번 짓고 나면 3~4년 정도 콩 농사를 짓고 나서 인삼 농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일교차가 심하면서도 콩 농사를 짓기에는 춥지 않은 땅이라는 게 세 번째 이유로 꼽힌다. 이런 조건에서 생산된 장단콩은 알이 조금 굵고 매끈매끈하게 윤기가 돈다. 또한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주는 이소플라본(isoflavon)이라는 성분이 다른 지역의 콩에 견주어 더 많이 함유돼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올해 장단콩마을에서 생산된 콩 가격은 한 가마에 37만원대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쌀이나 수입 콩보다 두 배는 비싸지만 이듬해 봄이 되기 전에 다 팔린다고 한다.
장단콩마을에는 콩영농조합법인이 있어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을 만들면서 식당과 슬로푸드 체험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 청국장이다. 슬로푸드 체험장을 운영하는 김용분(58) 씨는 “물이 좋고 바람이 좋아야 하는데, 통일촌은 이 두 가지를 훌륭하게 충족시켜 준다”고 했다. 장단콩마을 청국장은 냄새가 덜하고 구수한 맛이 돌며, 균을 파종하지 않고 자연발효를 시키기 때문에 영양이 더욱 풍부하다. 그래서 한번 맛본 이들은 꼭 다시 찾아 현장 판매와 택배만으로도 물량이 부족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