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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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세상에서 희망 발견하기

연극 ‘밀키웨이’

  • 현수정 공연 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08-12-03 12: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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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조리한 세상에서 희망 발견하기

    연출가 김명곤(가운데)과 출연 배우들. 류태호, 이동규, 정의갑, 정은표(왼쪽부터).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이 가짜 사망통지서 때문에 이름과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살아가야 한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서 한 장으로 진실을 어렵지 않게 거짓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문명쇌 채 살아가야 한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서 한 장으로 진실을 어렵지 않게 거짓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문명세상이다.

    연극 ‘밀키웨이’(원작 카를 비트링거·연출 김명곤)는 이처럼 부조리한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비춘다.

    베트남전에 참가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박성호는 자신이 이미 전사자로 처리돼 있음을 알게 된다. 일을 꾸민 것은 이장과 구청장. 그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문서를 조작해 박성호라는 한 사람을 세상에서 제명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펜을 든 날강도들이 그의 이름과 땅마지기를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

    억울하게 고향에서 쫓겨난 박성호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만 간다. 그는 사망한 전우 ‘임종우’의 이름을 빌리려다 임종우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형(刑)을 살게 되고, 구걸하기 위해 한 카페에 들어갔다가 주인의 속임수에 휘말려 서커스단에 팔려간다. 이기적인 서커스 단장은 계약기간이 끝나도 박성호를 놓아주려 하지 않고, 절망한 박성호는 자살을 기도한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지지리 복도 없는 박성호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악랄하기 그지없다. 갖은 협박으로 고향에서 그를 추방하는 이장, ‘임종우’가 아님을 알고도 그를 경찰에 넘기는 보험회사 지사장, 서커스단에 그를 팔아 넘기는 카페 주인 등등. 그런데 악의 화신처럼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문서를 통해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문서라는 것이 사회적인 약속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사회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순수한 눈망울로 자신이 은하수의 가장 반짝이는 별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고감도 4차원 캐릭터인 박성호가 멀쩡하게 살아가기엔 이 사회는 지나치게 되바라져 있다. 그러나 이 연극이 남긴 것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메시지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수차례 짓밟히면서도 여전히 바보 같을 만큼 착한 심성을 유지하는 박성호가 결국 정의로운 사람의 도움으로 이름을 찾게 된다는 결말은 ‘희망’을 강조한다.

    원작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을 배경으로 한 어두운 작품이지만, 이번 공연은 시공간의 배경을 1970년대 한국으로 바꾸고 유머 코드를 활용해 공감대를 높였다. 이 작품은 박성호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보여주는 극중극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중간 중간 관객을 무대 전환수로 ‘활용’하면서 소외효과를 주기도 한다. 단 두 명의 배우가 출연하며 특히 박성호와 말미에 잠시 등장하는 원장선생 이외의 모든 역할을 한 명이 소화한다는 점도 이 작품이 주는 재미 중 하나다. 주인공 박성호 역을 맡은 정의갑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인다.

    한편 정신병원 원장과 박성호의 담당의사가 과장된 의상과 몸짓으로 한바탕 웃음을 주는 마지막 장면은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키면서도 작품의 여운과 감동을 반감하는 언밸런스한 일면이 있다.

    추천작

    2009년 잘 자요, 엄마


    2009년 1월4일까지, 서울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고즈넉한 주말 저녁, 딸이 어머니에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자살 계획을 이야기한다. 자살의 이유를 납득시키려는 딸과 그 딸을 막으려는 어머니의 기묘한 실랑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그들이 가슴속에 묻어뒀던 비밀과 가슴 아픈 가족사가 드러난다. 나문희 손숙 예수정이 엄마 역으로, 서주희 황정민이 딸 역으로 열연한다.


    깃븐 우리 젊은 날


    12월31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당대 친분이 깊었던 젊은 문인들인 박태원 이상 정인택과 그들 모두를 사로잡은 권영희라는 카페 여급 사이의 연애사건을 다룬 연극. 실제 일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야기로, 당시의 세태와 젊은 예술가들의 내면을 섬세하고 재치 있게 묘사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12월28일까지, 서울 산울림소극장

    이 연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다름 아닌 ‘기다림’의 행위. 블라디미르 공과 에스트라 공이 매일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는 가운데 몇 명의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주고받는 주인공들은 ‘덤 앤 더머’처럼 코믹하게 보이는 면이 있지만, 사실 이들의 모습이 담고 있는 것은 절대적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고독이다. 극단 산울림의 이 연극은 올해 더블린의 베케트 극장에서 초청공연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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