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김명곤(가운데)과 출연 배우들. 류태호, 이동규, 정의갑, 정은표(왼쪽부터).
연극 ‘밀키웨이’(원작 카를 비트링거·연출 김명곤)는 이처럼 부조리한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비춘다.
베트남전에 참가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박성호는 자신이 이미 전사자로 처리돼 있음을 알게 된다. 일을 꾸민 것은 이장과 구청장. 그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문서를 조작해 박성호라는 한 사람을 세상에서 제명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펜을 든 날강도들이 그의 이름과 땅마지기를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
억울하게 고향에서 쫓겨난 박성호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만 간다. 그는 사망한 전우 ‘임종우’의 이름을 빌리려다 임종우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형(刑)을 살게 되고, 구걸하기 위해 한 카페에 들어갔다가 주인의 속임수에 휘말려 서커스단에 팔려간다. 이기적인 서커스 단장은 계약기간이 끝나도 박성호를 놓아주려 하지 않고, 절망한 박성호는 자살을 기도한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지지리 복도 없는 박성호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악랄하기 그지없다. 갖은 협박으로 고향에서 그를 추방하는 이장, ‘임종우’가 아님을 알고도 그를 경찰에 넘기는 보험회사 지사장, 서커스단에 그를 팔아 넘기는 카페 주인 등등. 그런데 악의 화신처럼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문서를 통해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문서라는 것이 사회적인 약속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사회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순수한 눈망울로 자신이 은하수의 가장 반짝이는 별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고감도 4차원 캐릭터인 박성호가 멀쩡하게 살아가기엔 이 사회는 지나치게 되바라져 있다. 그러나 이 연극이 남긴 것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메시지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수차례 짓밟히면서도 여전히 바보 같을 만큼 착한 심성을 유지하는 박성호가 결국 정의로운 사람의 도움으로 이름을 찾게 된다는 결말은 ‘희망’을 강조한다.
원작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을 배경으로 한 어두운 작품이지만, 이번 공연은 시공간의 배경을 1970년대 한국으로 바꾸고 유머 코드를 활용해 공감대를 높였다. 이 작품은 박성호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보여주는 극중극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중간 중간 관객을 무대 전환수로 ‘활용’하면서 소외효과를 주기도 한다. 단 두 명의 배우가 출연하며 특히 박성호와 말미에 잠시 등장하는 원장선생 이외의 모든 역할을 한 명이 소화한다는 점도 이 작품이 주는 재미 중 하나다. 주인공 박성호 역을 맡은 정의갑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인다.
한편 정신병원 원장과 박성호의 담당의사가 과장된 의상과 몸짓으로 한바탕 웃음을 주는 마지막 장면은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키면서도 작품의 여운과 감동을 반감하는 언밸런스한 일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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