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C&C 박은규 차장은 세컨드 옵션을 갖추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준비하겠다는 ‘결심’이라고 강조한다.
현실은 냉혹하다. 정보화, 세계화의 물결은 개인에게도 무한경쟁을 요구한다. 한 가지 역할 못지않게 다른 부분에서도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이제 직장인들에게 충분조건이다. 세컨드 옵션을 갖춰 자신의 위치를 한 단계 상승시킨 사람들. 그들은 무슨 사정으로 세컨드 옵션을 갖추려 했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던 것일까? 성공을 이루고 난 뒤의 모습은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을 갖추기까지 인고의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현재 주어진 역할을 넘어 새로운 역할을 찾아나서는 직장인들에게 그들은 선구자다. 세컨드 옵션을 갖춰 자신의 꿈에 한 발자국 다가선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 컨설턴트에서 인사담당자로
“원래 꿈은 해외영업을 하면서 해외생산 법인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SK C·C 인력본부 인력팀 박은규(41) 차장은 자신의 진로가 바뀌게 된 것이 지금도 놀랍다고 한다. 공대를 졸업한 박 차장은 1993년 하반기 삼성전기에 들어갔다. 내심 해외영업을 욕심냈지만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인사. 공대 출신이라 처음 인사업무를 맡게 됐을 때는 불만도 컸다고 한다.
“너무 생소했으니까요.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 채용업무를 담당하면서 인사업무에 재미를 붙여갔죠. 잠시 마케팅으로 외도를 했으나 인사팀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습니다.”
8년의 시간을 인사, 마케팅에서 일한 뒤 선배의 권유로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겨 ERP컨설턴트로 활동했다. 그가 처음 SK C·C에 들어온 것도 컨설턴트로서였다. 하지만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당시의 상황이 불안했다고 한다. 컨설팅 업체는 대기업처럼 크지도 않고 고용 불안도 적지 않았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네 살 때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하루하루가 무척 바빴습니다. 하나의 컨설팅을 끝내고 쉬고 있을 때 선배가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서 본격적으로 다른 뭔가를 찾기 시작했죠.”
그는 비록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었지만 인사업무를 계속하고 싶었다. 가장 오래 해보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사과정이나 공인노무사 둘 중 하나를 하기로 마음먹고 그는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직장인이 세컨드 옵션을 갖추기 위해, 특히 새로운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가외시간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컨설턴트로 일하던 당시 지방출장이 잦았을 뿐 아니라 밤 10시에 일이 끝나면 회식이 새벽 1, 2시까지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박 차장은 시간이 부족해서 잠을 쪼개가며 공부했다. “아무리 시간이 없다고 해도 잠잘 시간은 있죠. 잠자는 시간을 줄여 시간을 벌려고 했습니다. 회식을 끝내고 돌아온 뒤 새벽 4시까지 공부하며 책상에 엎드려 자기 일쑤였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삼각김밥 먹으며 공부했죠.”
SK C·C로 옮긴 뒤에도 같은 생활이 계속됐다. 물론 주위에서는 그가 세컨드 옵션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을 좋게 보지만은 않았다. 선배들 중에는 ‘지금처럼 바쁜 시기에 무슨 짓이냐’며 핀잔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박 차장은 2003년 공인노무사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최종 합격을 했다. 2005년을 컨설턴트로 더 일한 뒤 2006년에 인사팀으로 전환배치를 받게 됐다. 박 차장은 세컨드 옵션을 갖추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결심’이라고 강조한다. 세컨드 옵션을 추구하기 전에 미리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필수다.
“직장인들은 대부분 환경적으로 세컨드 옵션을 쌓는 데 제약이 따르죠. 시간도 부족하고 주위 시선도 고려해야 하고. 하지만 환경 핑계만 대고 포기하기보다는 ‘반드시 해야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홍보에서 마케팅으로 전문 영역을 확대한 뒤 브랜드 매니저가 된 페르노리카코리아 김혜영 차장의 경쟁력은 도전정신과 적극성이다.
임페리얼, 발렌타인 등의 주류를 판매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 김혜영(34) 차장은 약 한 달 전 회사를 옮겼다. 김 차장은 현재 위스키 브랜드 로얄살루트와 와인, 샴페인 브랜드들의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홍보에서 마케팅으로 직무 이동을 한 것을 계기로 브랜드 책임자 자리에까지 오른 성공 사례로 업계에 회자되는 인물.
첫 직장은 광고대행사인 오길비앤매더였다. 광고 매체를 선정하는 미디어 플래너로 일했던 그는 클라이언트였던 디올 코스매틱 담당자의 스카우트 제의로 처음으로 화장품 홍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약 2년 뒤 회사를 옮겨 에스티로더 그룹의 국내 법인인 엘카코리아에서 일할 때도 첫 업무는 홍보였다.
“당시 ‘스틸라’라는 색조 브랜드 홍보를 맡았습니다. 몇 년간 홍보담당자로 일하다 보니 소심한 성격의 전형적인 A형이던 제가 호탕한 O형 스타일로 바뀌기까지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홍보담당자들은 업계 특성상 수명이 길지 않고, 새로운 발전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그 후 김 차장은 직속 상사에게 직무 이동을 하고 싶다고 꾸준히 강조했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 기회는 시련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예산 책정, 시장조사 등 생소했던 업무를 갑자기 한꺼번에 떠맡게 되면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기 때문.
“상사가 회사를 옮기면서 약 6개월간 그 대신 예산을 짜고 가격 책정을 하는 마케팅 매니저 일을 했습니다. 갑자기 수십 가지 업무를 떠맡은 저를 보고 동료들은 ‘더는 못하겠다’고 엄살을 피워보라고 했지만, 당분간 내가 브랜드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앞섰지요. 사장님에게 미팅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더니, 새로운 사람을 뽑는 대신 저더러 마케팅 매니저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한 가지 분야에 안주하는 삶이 찔레꽃이라면, 세컨드 옵션을 갖춘 삶은 나중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장미꽃이다.
주류 업계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도해보려고 한 이유는 주류 브랜드들이 대체로 수명이 길고 소비자 로열티가 높은 만큼, 장기적 안목에서 전략적이고 분석적인 브랜드 관리법을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 “야구와 발야구의 차이를 정확히 모를 정도로 스포츠 문외한이던 제가 몇 년 만에 마니아로 둔갑한 것을 보면, 이곳에서도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많이 됩니다.”
홍보담당자로 일했던 경험은 현재까지도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된다. 당시 자주 만났던 기자, 프로모션을 함께 진행했던 업체 관계자들은 지금도 훌륭한 인적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
“저도 함께 일할 직원을 뽑을 때 홍보 경력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게 됩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배우면 되지만 홍보담당자들 특유의 친화적인 성격과 적극적인 자세는 가르치기가 힘들거든요. 기회는 뜻밖에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직무를 옮기는 일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 웹 디자이너에서 기획자로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 등에 도전해 직무 이동의 기회를 갖게 된 취업포털 커리어의 지한구 과장.
“운전용 내비게이션 기기를 벤치마킹해 온라인상에서 각 기업의 정보를 좀더 쉽게 찾는 서비스를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요.”
취업포털 커리어 서비스마케팅팀 지한구(32) 과장이 웹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에 응모했던 아이디어들이다. 수차례 당선돼 짭짤한 포상금도 받았다.
물질적 보상만 얻은 것은 아니었다. 지 과장의 적극적인 태도를 눈여겨본 임원진의 추천으로 5개월 전쯤 웹 디자이너에서 웹 기획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사내에서 이런 방식으로 직무 전환이 이뤄지기는 그가 처음.
“작은 회사에서라면 모를까, 이 업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기획자로 전환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아요. 평소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개진한 덕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게 된 셈입니다.”
2006년 입사한 지 과장은 이전 회사들에서 쌓은 경력을 합쳐 약 7년간 웹 디자이너로 일했다. 대학에서의 전공도 산업디자인. 보통은 자기 업무만으로도 허덕이느라 타 부서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낸다거나 관심을 갖는 게 쉽지 않을 터. 그러나 그는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퇴근길부터 집에 도착해 이불 깔고 눕는 순간까지’ 기획 관련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회사에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는데, 제가 낸 제안이 좋은 평가를 받고도 실제로는 잘 구현되지 않는 것을 보고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기획자가 되면 적어도 제가 낸 아이디어는 직접 추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가지 이상 전문분야를 갖는 ‘멀티형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멀티플리시티’의 한 장면.
“디자이너에게 기획 관련 스토리 보드를 전달해 비주얼 작업을 의뢰할 때 디자이너의 처지를 많이 고려해 소통이 편할 뿐 아니라, 아이디어가 웹상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짐작할 수 있으니 이해가 쉽게 되는 편이에요.”
물론 몸에 익숙한 주 전공만 할 때보다 ‘불편한 점’도 있다. 부서를 옮긴 뒤로는 거의 매일 밤 9시 이후 퇴근하게 됐고, 과장 직급을 달고 생초보로 새 부서에서 일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타사 벤치마킹을 하고, 전 세계적인 웹서비스 트렌드를 살피다 보니 확실히 외연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도 기획 관련 일을 계속할지, 언젠가 다시 디자인 업무를 하게 될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세컨드 옵션’을 이미 마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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