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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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외설! 그 도착의 즐거움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7-03-30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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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는 외설! 그 도착의 즐거움
    장지아의 작품에는 외설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장지아는 주로 비디오를 통해 작업하는데, 예를 들면 가죽옷을 입고 짙은 분장을 한 여자가 채찍을 휘두르는 사디즘 장면이라든가, 작가 자신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달걀과 주먹으로 두들겨 맞는 장면, 한밤에 여자가 반나체로 뛰어다니는 비디오 등이 장지아의 작품세계였다. 어떤 애니메이션에서는 남녀 군상이 갖가지 체위로 섹스를 하는, 마치 사드의 규방철학을 도해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장지아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외설적, 도착적 성적 욕망과 그에 대한 금기를 마음껏 즐긴다.

    서서 오줌 누는 여자들의 몸이 오브제

    사실 장지아의 작품은 도착적 즐거움을 보여준다는 점, 즉 단순히 사회적 금기에 대한 저항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녀의 작품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라는 위반과 금기 자체에 존재하며, 오히려 부정과 외설 속에서 꽃핀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욕망의 실체들을 끝까지 실험하고 밀고 나감으로써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된다는 역설을 경험한다.

    이번 ‘오메르타-침묵의 계율’전에서 장지아가 선보인 소재는 옷을 벗고, 서서 오줌을 누는 여자들이다. 전시장에는 그 오줌에서 피어난 갖가지 오브제가 전시된다. 그리고 한편에는 마치 그 오브제(결정체)들을 만드는 노동으로서의 과정, 즉 오줌을 누는 행위, 생산을 위한 과정이 비디오로 상영된다. 사진작품에는 오줌을 누는 여자들의 몸이 부각됐는데, 몸은 마치 오브제들의 창조를 위한 어떤 결정적 메커니즘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자들이 서서 오줌을 누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오줌을 누는 장면, 그 순간을 노출하는 것이다. 그것만큼 외설적이고 부끄러운 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외설적 순간이 장지아의 작품에서는 다소 통쾌하고, 심지어 즐거워 보인다. 그 외설-부끄러움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 즉 겪어낸다는 것은 일종의 불쾌한 쾌락 혹은 고통스러운 즐거움이라 일컬을 수 있는 향유의 과정일 것이다. 이를 통과해 만들어진 결정체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도착적 즐거움의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사소하고 심지어 파괴적인 욕망들의 실체와 그것에 대한 향유가 사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임을 느낄 수 있다. 4월10일까지, 대안공간 루프, 02-3142-1377

    이병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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