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인혁당 사건 재판 광경.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32년 만에 무죄판결이 났다.
-마키아벨리, 2001년 이화여대 정시
인간의 자유의지는 늘 일정한 틀을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사회규범과 충돌한다. 피해자는 언제나 개별자로서의 인간이었다. 예컨대 사형이 선고된 8명의 상고를 기각한 채 불과 20여 시간 만에 형을 집행한 1974년 인혁당 사건이 있다. 최근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32년 만에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데올로기(신념, 이념)는 정신의 영역이다. 그러나 당시는 반공(反共) 이데올로기가 유일한 국시(國是)였다. 과연 이념을 획일화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데올로기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불을 찾아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홍적세에 나타난 호모사피엔스 정도로 보이는 영화 속 인물들은 불(문명의 상징)을 위해 잔인한 살육을 서슴지 않는다. 그저 불을 갖기 위해, 불을 지키기 위해 죽고 죽일 뿐이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에 대한 욕망처럼 그것의 쟁취를 위한 싸움은 불가피함을 넘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신념이었다.
이후 인류 문명은 고대를 거쳐 중세에서 화려하게 만개(滿開)하는 듯했지만, 종교라는 하나의 이념이 지배하던 중세는 결국 ‘암흑시대’가 되고 말았다. 르네상스라는 빛으로 잉태된 인간의 자유정신은 종교개혁이란 산고(産苦) 후에 비로소 활짝 필 수 있었다.
프랑스 종교개혁가 칼뱅은 ‘제네바 신정(神政)’을 펼친다. 그러나 신의 나라를 구현할 임무를 자청한 대리인 칼뱅은 처음 5년 동안 13명을 교수대에 매달았고, 10명의 목을 잘랐으며, 35명을 화형시켰고, 76명을 추방했다. 하지만 제네바 사람들은 몰랐다. 당시의 역사에 어두운 사람들은 바로 그 당시의 사람들뿐이니까.
종교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칼뱅주의 체계는 극히 이상한 방식으로 변해 정치적 자유의 이념이 돼버렸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칼뱅주의 흐름을 이어받은 청교도 정신에 바탕을 두어 만들어졌고, 이 문서는 다시 프랑스의 ‘인간 권리에 대한 선언’에 영향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비관용적인 나라가 되었어야 할 나라들이 놀랍게도 가장 먼저 관용의 땅이 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리고 복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지 여러분 전진합시다! 우리가 이룩한 혁명을 잊지 말고 전진합시다! 동물농장 만세! 나폴레옹 동지 만세! 나폴레옹 동지는 항상 옳습니다! 동지 여러분!’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 조지 오웰, 동물농장, 1998년 서울대 정시
슈테판 츠바이크는 ‘폭력에 저항한 양심’이란 글에서 “‘항상 옳다’는 것을 강조하는 모든 정치적·종교적 이데올로기의 독재자들은 곧바로 폭군으로 타락해버린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문인들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영어 번역 부족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술다운 예술을 추구할 수 없는 압제와 억압의 외상(外傷·trauma)에서 우리가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칼뱅이 통치하던 제네바에서는 그 어떠한 형식의 예술도 피어나지 못했다.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모든 자유로운 정신을 억압했던 우리나라, 강력한 독재를 수십 년간 겪어야 했던 우리나라야말로 필연적으로 모든 정신적 아방가르드(前衛隊)와 정신의 자유가 만개하는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연관 기출문제
서강대 2004년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성균관대 2003년 ‘자유와 사회규범’, 연세대 2001년 ‘규범에 대한 동의’, 고려대 2000년 ‘제도와 개인’, 이화여대 1999년 ‘동의와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