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9일 중국 상하이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중국 지주회사 ‘롯데중국투자유한공사’ 출범식에 참석한 신동빈 부회장(가운데).
‘미래 롯데’ 청사진 제시 오너상 보여줘
신 부회장의 이런 모습을 기억하는 기자에게 최근 신 부회장의 행보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3월19일 신 부회장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롯데중국투자유한공사’ 출범식에 앞서 한-중-일 3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신 부회장이 직접 주재한 기자간담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언론간담회 자리에 자주 얼굴을 비치기는 했지만 배석하는 형식이었다.
이 자리에서 신 부회장은 “중국에 제3의 롯데를 세우겠다” “롯데를 삼성 LG 같은 세계적 명품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등의 야심찬 말을 쏟아냈다. 기자들과 일문일답이 길게 이어져도 시종일관 자신감을 드러내며 조목조목 답변했다. 롯데그룹에서는 절대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 신격호 회장의 그림자라도 밟을세라 몸을 사리던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스스로 ‘미래 롯데’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오너상을 제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자간담회 이후 열린 저녁 만찬에서 신 부회장은 부인과 장인 장모까지 대동해 중국 측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시키기도 했다. 기자들의 요청에 부인과 다정한 포즈를 취하는 연출에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룹 공식행사에서 신 부회장의 가족이 언론에 포착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 부회장의 이 같은 과감한 행보에 대해 롯데 안팎에서는 그룹의 대권 승계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미 이러한 조짐은 올해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 부회장은 1월11, 12일 이틀에 걸쳐 중국 칭다오에서 롯데 식품부문의 아시아 지역 판매 확대 방안 마련을 위한 ‘롯데 아시아 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국내 롯데제과를 비롯해 중국 인도 베트남 등 8개국 40여 명의 롯데 식품부문 법인 대표와 책임자가 참석한 회의였다.
롯데는 이 자리에서 동남아시아 각 지역에 진출한 제과 법인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동남아시아 지역본사’를 설립하기로 하는 등 현지 판매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했다. 신 부회장은 당시 회의에서 “현장에서 직접 보고 판단한 뒤 다각도로 판매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동남아 지역본사를 중심으로 식품부문의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래 롯데’를 이끌어가는 신 부회장의 화두는 ‘글로벌화’다. 그동안 내수에 치중해온 롯데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해외시장으로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롯데는 업종 특성상 미주와 유럽에 진출하는 것보다는 향후 성장 잠재력이 큰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러시아 인도를 전략적 요충지로 삼는, 이른바 ‘VRICs 진출’에 힘을 쏟고 있다. 그중심에 신 부회장이 있다.
신 부회장의 이례적 행보는 본격적인 경영 승계를 위한 당연한 절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경쟁사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광주신세계 편법증여 의혹, 탤런트 출신 부인과의 이혼 등 잇따른 악재를 딛고 지난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데뷔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출입기자들과 ‘폭탄주 문화’를 공유하며 2차 노래방에까지 동석하는 등 언론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롯데는 오너와의 만남 자체가 힘든 편이었다. 때문에 롯데는 언론으로부터 ‘경쟁사에 비해 오너가 너무 닫혀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아버지의 그늘’ 벗어나기 과제도
신 부회장의 앞날에 장밋빛 미래만 보장된 건 아니다. 아직 스스로 헤쳐가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지난해 그룹의 얼굴인 롯데쇼핑을 상장했지만, 주가는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경쟁사인 신세계의 할인점 사업을 압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한국까르푸 인수마저 실패했다. 우리홈쇼핑 인수를 통해 홈쇼핑업에 진출했지만, 2대 주주인 태광과의 관계 개선은 여전히 요원한 편이다. 안전문제로 롯데월드가 문을 닫는 등 ‘롯데 브랜드’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는 추락했다. 이런 문제를 책임감을 갖고 신속히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롯데 안팎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신 부회장이 롯데의 후계자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분석이다. 여전히 롯데그룹은 신격호 회장 1인의 강력한 오너십에 의존해 움직이고 있다. 신 부회장이 정책본부장을 수행하면서부터 경영의 외연이 넓어지기는 했지만, 최종 결재권자는 아버지 신격호 회장이다. 롯데가 신성장동력을 통해 계속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후계자 신 부회장 스스로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신 부회장의 자기부정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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