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후반에 번역된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두 편이 독자의 호응을 얻지 못한 첫째 이유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다. 번역은 나무랄 데 없었지만 그로테스크한 표지 디자인과 다소 밋밋한 본문 편집이 독자의 주목을 받기에는 좀 부족했던 것 같다. 한국어판이 나올 즈음 아직 서른이 안 된 알랭 드 보통의 나이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진 않았을 듯싶다. 당시 독자들에게 드 보통의 지명도는 매우 낮았다.
그렇다고 부적절한 출간 시점이 전혀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아니다. 독자에게 도서의 노출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뜻출판사에서 펴낸 ‘로맨스-사랑에 대한 철학적 모험’(김한영 옮김, 1995)과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김한영 옮김, 1997)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드 보통의 ‘연애소설 3부작’의 둘째 권을 펴내고 얼마 안 돼 출판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연애소설 3부작’ 우리말로 번역
‘연애소설 3부작’은 모두 우리말로 옮겨졌다. 1부와 2부는 간행처가 바뀌어 다시 번역되었고, 3부는 새로 번역되었다. 서점에서 구입 가능한 ‘연애소설 3부작’은, 각 권을 따로 놓고 보면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펴낸 곳과 옮긴이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판형과 장정 등 편집 스타일이 저마다 개성이 있다. 그나마 우리말 제목에서 실낱같은 관련성이 잡히긴 한다.
제목(title) 역시 3T의 하나다. 새로 나온 ‘연애소설 3부작’에 붙은 제목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3부작으로 묶이는 드 보통 연애소설 각 권의 제목은 우리말로 옮기기가 까다롭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정영목 옮김, 청미래 펴냄, 2002)는 ‘로맨스’의 새 천년판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사랑에 관한 에세이(Essays in Love)’. 드 보통이 우리나라에서 비로소 읽히기 시작한 데에는 시적인 제목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사랑일까’(공경희 옮김, 은행나무 펴냄, 2005)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영향을 받은 느낌이 짙다. ‘우리는 사랑일까’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의 원제는 ‘The Romantic Movement’다. 이걸 뭐라 번역하나? ‘낭만적 운동’, 영 아니네. 궁여지책으로 본문의 소제목을 따왔던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도 필이 안 꽂히기는 마찬가지다.
‘연애소설 3부작’ 가운데 실질적으로 맨 나중에 번역된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강룡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2005)의 원제목은 달랑 ‘Kiss & Tell’이다.
알랭 드 보통의 대표작 ‘우리는 사랑일까’. 각종 도표와 기호들이 소설의 일부를 이룬다. 그는 1969년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유한 은행가이며 컬렉터였다. 23세에 쓴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형 서점에 설치된 알랭드 보통 코너(왼쪽부터).
그렇다고 작가의 본뜻을 살리기 위해 ‘은밀한 고백’이니 ‘사랑과 폭로’니 따위의 제목을 붙일 무감각한 편집자는 없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제법 그럴듯하다.
이제 책을 펼쳐 본다. 먼저 ‘우리는 사랑일까’를 보자. 역시 단아한 번역과 정갈한 편집이 돋보인다. ‘쇠시리’와 ‘굽도리’는 우리말 어휘력을 키워주고, ‘입가에, 그러니까 입술 끝에서 북동쪽으로 1.5cm쯤 떨어진 지점에 피부과적으로 급박한 위기감이 감지되었다’는 문장은 생동감이 넘친다. 깔끔하고 정연한 본문에서는 다이어그램과 아이콘이 눈에 띈다. 각종 도표, 기상도와 건물 단면도, 그리고 갖가지 도형과 기호들은 소설의 일부를 구성한다. ‘자동차 두 대가 좁은 길에서 서로를 향해 돌진해서, 누가 먼저 풀밭으로 차를 돌릴지를 겨루는’ 그림은 연인 사이의 줄다리기를 게임 이론의 겁쟁이 딜레마에 비유한 것이다.
드 보통의 책들은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사랑일까’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에게서 도피하는 독서’가 아니라 ‘자기를 발견하는 독서’를 유도한다. 현실도피용 책은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위험한 짓은 거의 하지 않는다’. 또 그런 책은 독자들이 겪었음직한 인간사를 피상적으로 그린다.
우리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책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듯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혼자만의 느낌이라고 보는 상황을 말로 설명한다. 서로 통하는 점을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하는 연인들처럼, 독자는 책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서 외친다. ‘세상에, 나랑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네!’
연애 환상 심거나 부추기지 않아
‘연애소설 3부작’ 중 가장 잘 팔리는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다. 이 책은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2005년 연간 종합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었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 그 뒤를 잇고 있고, 2005년 11월 재번역된 ‘우리는 사랑일까’의 판매가 상승하는 추세다. 판매량에 비해 인지도가 높은 것은 소설가와 영화배우 등 유명 인사들이 ‘추천하는 책’으로 그의 책을 언급해서인 듯싶다.
우리가 드 보통의 연애소설을 구입하는 이유는 국내에 그만한 작품이 없어서다. 우리 문학의 연애소설은 불륜과 순애보 사이의 간극이 꽤 넓다.
우리가 조숙한 영국 청년의 연애론에 공감하는 까닭은 그것이 발랄하고 경쾌하고 담백해서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경박하지 않고 구김살이 없으며, 사랑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우리가 드 보통의 연애소설을 읽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의 장르적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문학작품 속 주인공의 매력은 연상과 불확정성 간의 복잡한 작용에 달렸다.’ 맞다. ‘고정된 상(像)과 현실적 제약의 독재에서 벗어나,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이 책의 특권이다.’ 그러니까 드 보통의 매력은 소설의 전통적 형식과 영상세대의 감성을 아주 적절하게 절충한 데서 나온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 일회성의 편의점 분위기라면, 드 보통의 작품은 자주 드나들고픈 단골가게를 연상시킨다. 다만 그 가게는 문턱이 약간 높다. 소크라테스의 팬인 드 보통은 연애소설에도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작품과 이론을 끌어들인다. 그가 말하는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정 수준의 독서력을 필요로 한다.
드 보통의 또 다른 매력은 연애의 환상을 심어주거나 부추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일까’의 등장인물들은 자유분방하다. 육체관계에 거리낌이 없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다분히 보수적이어서 프랑스의 연인들처럼 극단적인 프리섹스로 가지 않으며, 억압된 일본인들처럼 퇴폐 행각을 벌이지도 않는다. 드 보통의 인물들은 심지어 귀족사회의 질서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설의 여주인공 앨리스에 대해 후반부에 등장하는 필립이란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어. 내가 그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아. 난 다른 사람과 사귀는 여자랑 얽히는 건 사양하겠어. 아주 골치 아파져. 그렇게 살기엔 인생은 너무 짧지. 앨리스는 어쨌거나 이 남자랑 행복하고, 난 친구가 되는 게 좋아. 같이 수다 떨고 그러면서. 그녀는 똑똑하고, 흥미롭고 영혼이 풍성한 친구야. 바로 내가 갖고 싶은 면이지.”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은 앨리스와 필립의 새로운 관계에 대해 암시한다. ‘우정은 비겁의 한 형태일 뿐이며, 사랑이라는 더 큰 책임과 도전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프루스트의 결론’은 소설의 복선으로 사용된다.
드 보통은 연애를 통해 ‘소통’의 문제를 진지하고 실감나게 분석한다. 개인적으로도, 한때 유행처럼 번져 거부감을 갖고 있던 ‘소통’의 참뜻을 다시 새길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