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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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인원 후 총리 발탁, 막무가내식 ‘이해찬 골프’

정치인들의 골프 백태 … 게임보다 인맥 넓히기에 ‘눈독’, 음주·폭행으로 구설 오르기도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6-03-15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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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인원 후 총리 발탁, 막무가내식 ‘이해찬 골프’

    ‘`3·1절 골프 파문’`으로 사실상 사의를 표명한 이해찬 총리가 3월6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지난해 ‘재야 운동권의 마당발’로 통하는 전문경영인 K 씨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다. K 씨와는 총리 취임 이전 가끔 골프를 즐기는 사이였던 이해찬 총리가 이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 의식불명의 그에게 던진 첫마디는 이랬다. “이 사람아, 어서 일어나 나와 함께 라운드해야지.”

    이 총리가 얼마나 골프를 즐기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이 총리가 골프를 즐기는 것 자체는 뉴스거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 관계자의 말대로 격무에 지친 총리가 건강관리 차원에서 주말에 필드에 나간다면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또 일부의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해 골프장 이용객이 1800만명이 될 만큼 골프는 이미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총리의 경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골프를 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번에도 철도 파업 첫날이자 3·1절에 ‘부적절한’ 인사들과 골프를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총리는 이미 지난해 4월 대형 산불이 났을 때나 같은 해 7월 전국에서 물난리가 났을 때 태연히 골프를 즐겨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거물 브로커’ 윤상림 씨와도 몇 차례 라운드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국회의원 70% 이상이 ‘필드로’

    이 총리는 가까운 사람들과는 내기 골프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와 함께 골프를 한 적이 있는 열린우리당 한 초선 의원은 “이 총리와 타당 1만원짜리 스트로크 게임을 해서 18만원을 딴 적이 있다”고 말했다.



    홀인원 후 총리 발탁, 막무가내식 ‘이해찬 골프’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회원들이 3월8일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이 총리의 3·1절 골프 모임과 관련해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과 이기우 차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골프에 관한 한 김원기 국회의장도 빼놓을 수 없다. 김 의장 역시 주말 라운드를 통해 건강관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장타자. 김 의장은 69세의 나이에도 평균 드라이버 거리가 230야드를 넘나든다고 한다.

    김 의장과 골프를 했던 우리당 한 의원은 “김 의장의 장타 비결을 듣고 새삼 ‘골프와 인생이 비슷하다’는 얘기를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장타 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부드러워야 멀리 오래 간다네”라고 답한다고 한다. 이 의원은 “모나지 않게 정치생활을 해야 정치생명이 길어진다는 얘기를 골프에 빗대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프를 치는 정치인들은 “골프는 정치의 연장선”이라고 말한다. 골프가 얽히고설킨 정치적 난제를 푸는 윤활유 구실을 할 뿐 아니라 인맥을 넓히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 골프를 아직 배우지 못한 한 초선 의원은 “국회에 들어오자 외부 인사들이나 동료 의원들이 당연히 골프를 하는 줄 알고 초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거절하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는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홀인원 후 총리 발탁, 막무가내식 ‘이해찬 골프’

    3월1일 이해찬 총리가 부산 지역 상공인들과 골프를 친 부산 아시아드컨트리클럽. 2003년 9월6일 이곳에서 열린 한국여자오픈골프대회 경기 모습.

    골프장은 요정 등 고급 음식점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정치무대 중 하나가 됐다. 1990년 3당합당의 실마리가 마련된 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와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총재의 골프 회동이나 97년 DJP 연대의 물꼬를 튼 96년 12월의 JP와 DJ(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들의 골프 회동이 대표적인 ‘골프 정치’ 사례라고 할 만하다. 최근에는 우리당 김한길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자 “골프로 의원들과 집중 접촉한 덕을 톡톡히 봤다”는 해석이 흘러나왔다.

    정치인들의 골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골프가 로비에 활용된다는 의심 때문일 것이다. 4~5시간 함께 걷고 목욕은 물론 두 끼 식사를 하는 동안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기 때문에 로비 수단으로는 이보다 좋은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은 김대중 정부 시절 한 대학 관계자가 사석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당시 대학 관련 법 개정 문제가 제기됐을 때 대학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평소 친분이 있는 JP를 찾아갔다. JP는 흔쾌히 ‘우리 당 의원들과 함께 골프나 하지’라고 해 약속된 골프장에 갔더니 자민련 의원들과 함께 나왔다. 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었다.”

    한국일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97명의 의원 가운데 골퍼는 216명으로 7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17대 국회 개원 당시 130명에서 배 가까이 늘어난 것. 이 조사에 의하면 골프와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운동권 출신 386의원 상당수가 골프를 친다. 이 중 우리당 임종석 의원이 80대 초반으로 실력이 가장 뛰어나고,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정도가 이에 필적한다는 것.

    전윤철 씨 홀인원 하고 ‘5관왕’ ‘왕재수’?

    골프 실력은 천차만별이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싱글은 우리당 신학용·김종률·김낙순 의원, 한나라당 김학송·이방호·방종근·김학원 의원 등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경우 대개 인플레가 심한 편이다. 경기보조원이 ‘예우상’ 섭섭지 않게 점수를 적어주기 때문이다. 또 동반자들이 후하게 ‘기브(give·홀 컵에 집어넣은 것으로 간주해주는 것)’를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JP다. JP는 싱글 실력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그가 그린에 올리기만 하면 기브를 주기 때문이다. 그가 자주 찾는 골프장은 경기 용인시 은화삼 컨트리클럽. 이곳에는 JP를 전담하는 고참 남자 경기보조원이 있을 정도다. 이 골프장의 한 경기보조원은 “과거 JP는 팁을 후하게 주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사정이 별로 안 좋은지 많이 줄었다”고 귀띔했다.

    홀인원에 관한 일화도 많다.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경기 남양주시 광릉컨트리클럽에서 홀인원을 한 경험이 있다. 총리실 간부는 “이한동 총리 시절 광릉컨트리클럽에서 이 총리의 홀인원 기념식수를 보고 이 총리에게 ‘언제 홀인원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총리 임명되기 두 달 전’이라고 답하더라”고 소개했다. 홀인원을 하면 3년간 재수가 좋다는 속설을 확인했다는 것.

    정치인은 아니지만 전윤철 감사원장도 경기 용인시 아시아나컨트리클럽에서 90년대 중반 홀인원을 했다. 골프를 좋아하는 관료들 사이에서는 “전윤철 감사원장이 97년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된 뒤 기획예산처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감사원장 등 ‘5관왕’을 차지한 것도 이 홀인원 덕분”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흔히 골프는 매너 운동이라고 하는데,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품격 없는 행동으로 빈축을 산 의원도 있다. 대구지역 경제인들과 함께 골프를 마친 뒤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하다 난동을 부린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이나 골프장 직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은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 측근과 골프를 한 적이 있는 업계 관계자의 얘기는 골프를 즐기는 정치인들이 귀담아들을 만하다.

    “이 측근은 늦게 골프를 배운 탓인지 실력은 보잘것없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퍼팅할 때 그린 위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등 매너는 더 형편없었다. 두 번 다시 함께 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정권 실세여서인지 이를 지적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골프도 자기 하기 나름이다. 매너를 지킨다면 물의를 빚지 않고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운동이 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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