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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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테러범들 평범 아닌 비평범 … 갈수록 깊은 증오의 계곡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1627@hotmail.com

    입력2005-07-28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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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테러범들 평범 아닌 비평범 … 갈수록 깊은 증오의 계곡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의 마지막 애인은 흠 잡을 데 없는 남성이었다. 영국의 고급 백화점인 헤로즈의 소유주라는 재력에다 다이애나의 미모와 잘 어울릴 만큼 호남아였다. 그러나 영국 왕실의 눈에는 결정적인 ‘흠’이 있었다. 파에드라는 이름에서 짐작되듯 그는 백인이 아닌 이집트 출신이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며느리의 자유분방한 남성 편력도 못마땅했지만 상대가 하필 아랍 사람이었다는 것을 더욱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파에드의 아버지가 아들의 자동차 사고에 대해 “영국 왕실의 음모에 의한 계획된 사고”라고 주장한 것도 이 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

    그런데 다이애나의 남성 편력사에는 파에드 말고도 비(非)백인 혈통이 또 한 명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다이애나는 그와 결혼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남자 쪽에서 이를 꺼렸다고 하는데, 이 남자는 파키스탄계였다.

    만약 다이애나가 파키스탄인이나 이집트 남자와 결혼까지 했다면 영국 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무리 다이애나를 아꼈던 영국인들이지만 이슬람 인종과의 결혼을 너그럽게 이해했을지는 의문이다.

    ‘빵과 장미’라는 영화로 유명한 영국의 사회주의 감독 켄 로치의 ‘다정한 입맞춤’은 영국에 사는 파키스탄 남자와 영국인 여자 간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이들의 사랑에 대한 주변의 반응, 넓게는 사회의 시선에 맞췄다.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끈 ‘East Is East’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도 파키스탄 이민 가족이 주인공으로, 이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세대 간 갈등과 문화적 차이를 그리고 있다. 한편으로 이들이 영국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주변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7월7일에 발생한 런던 테러 사건을 전하는 뉴스를 보다가 한 대목에 눈길이 갔다. 테러범이 ‘평범한 영국인’이었다는 데 영국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수긍하기 어려웠다. 과연 이들을 ‘평범한’ 영국인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범인들은 물론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테러리스트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런던 테러범들은 파키스탄계─넓게는 이슬람계─라는 점에서 상식적인 의미의 평범한 ‘영국인’도 아니었다.

    영국에서 파키스탄계가 처한 현실을 보면 왜 파키스탄계라는 사실이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지 드러난다. 예컨대 영국 사회에서 이슬람 이민자들의 자녀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16~24세의 영국인 이슬람 교도들의 실업률은 22%나 된다. 그래서 이들은 이른바 ‘룸펜 지하드(성전)주의자’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서방 언론이나 우파적 시각에서는 이슬람계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즉 이슬람계가 스스로 유럽문화나 정치·종교 등과 섞이지 않음으로써 ‘섬’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그 같은 ‘고립주의’에서 각종 사회문제와 갈등이 초래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어디에 두든 영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는 이슬람과의 문화충돌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학교에서의 히잡(머리쓰개) 금지 논쟁, 네덜란드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가 이슬람 여성 인권을 비판한 영화 때문에 암스테르담에서 살해된 사건 등이 그 같은 ‘충돌사고’들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로빈훗’(사진)에서처럼 이슬람 무어인과 영국인이 정의를 위해 힘을 합쳐 싸우는 멋진 장면을, 그 1000년 뒤의 영국 현실에선 보기 힘든 것인가. 영화에서 무어인 아짐은 이슬람의 앞선 과학기술을 활용해 로빈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준다. 하지만 그가 로빈 후드를 위해 만들어주었던 화약은 이제 우정이 아닌, 증오의 무기가 돼버렸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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