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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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바벨탑

  • 김종휘 문화평론가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입력2005-07-29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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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바벨탑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개봉되면서 또다시 세계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가 어떤 성과를 거둘 것인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얼마 전까지 문화계를 뒤집어놓았던 ‘한국 영화 위기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6월23일 밤 한 일간지 기자는 강우석 감독이 기자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최민식, 송강호를 실명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닷새 뒤인 28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스타 매니지먼트사를 공격했고, 7월14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는 방송 드라마의 예를 들어 스타 시스템의 폐해를 거론했다.

    그 며칠 전인 7월8일엔 EBS TV ‘생방송 토론카페’가 ‘한국영화 위기론, 스타 시스템 때문인가’를, 12일엔 MBC ‘PD수첩’이 ‘스타 권력 무엇이 문제인가’를 방영했다. 또 15일에는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이 ‘한국영화, 침체인가 재도약인가’로 주제를 김빠진 총론에 머물고 말았다.

    어쨌든 연예산업의 양대 축인 영화사와 방송사가 스타 권력을 공개 지목하자 이 문제는 한 달 가까이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실명이 노출된 두 배우의 이유 있는 반론을 빼면 신문·방송은 발화자의 말을 거듭 인용하며 초점을 스타 권력에 고정시켰다. 또한 스타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거나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이른바 국민 여론은 ‘스타 권력이 문제’라는 사회 심리적 낙인을 아프게 아로새겼다.

    이 문제의 결과 혹은 효과는 무엇인가. 먼저 영화인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때 영화 제작자와 감독에서부터 배우·스태프, 심지어 영화 기자들까지 한데 뭉쳐서 한국 영화인의 하나 됨을 각인하며 스크린쿼터 사수에 동참하라고 호소했던 국민적 이미지가 깨졌다. 이 훼손은 복구가 불가능해 보인다. 스타가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서는 모습에, 앞으로 어느 누가 박수를 보낼까.



    다음은 한국 영화를 둘러싼 전망에 대해 관객들이 불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느 영화평론가의 말대로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며 ‘젖과 꿀이 흐르던 충무로’는 실상인즉 심각한 위기와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는 충격 고백으로 하룻밤 새에 안면을 바꿔버렸다. 잘나간다고 하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달콤한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쓰라린 배신이라니, 한국 영화는 관객을 갖고 논 꼴이 되었다.

    ‘스타 권력’ 파동 후유증 … 영화계 분열 실상 드러나

    이처럼 영화인의 분열 실상이 드러나고 한국 영화에 대한 논의의 부실함이 폭로된 것은, 그나마 비교적 작은 상처에 불과할지 모른다. 지난 한 달 동안의 ‘스타 권력’ 논란으로 깊게 파인 사회적 자괴감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 영화계와 방송계가 지니고 있기를 바랐을 자정 능력에 대한 회의감이다. 나아가 자신의 문제와 치열하게 싸우려 하지 않는 영화계와 방송계의 의지 박약을 지켜보는 피로감이다.

    강우석 감독의 ‘쿨’한 사과 보도자료는 물론이고, TV 토론회에 나온 영화인들이 단합하자고 호소하는 이구동성도, 심지어 최민식·송강호의 뜨거운 항변마저도 이제는 그저 ‘당신들의 리그’일 뿐이며 ‘너희들의 이해관계’에 불과한 것이라서 7000원 내고 영화 보면 그만인 관객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분위기다. 진짜 문제는 이 싸늘한 거리감이 영화인들이 화해하고 ‘친절한 금자씨’ 같은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다고 해서 좁혀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명하다. 정치 개혁 약속이 시민 참여를 조직하는 행위 없이 ‘정치인 자기들끼리의 담합’으로 외면받았듯, 영화사와 방송사의 스타 권력 비판과 위기론도 이런 상태로 흐지부지되면 ‘자기들끼리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냉소를 사고 말 것 같기 때문이다.

    해법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영화사와 방송사는 자기 비판의 고백성사와 자기 개혁의 미래상부터 솔직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스타들이 침묵을 깨고 분배 정의를 위한 작은 참여를 약속하는 기자회견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이것이 먼저다. 스타 권력의 남용은 관객과 시청자가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빌미로 영화사와 방송사가 세운 바벨탑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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