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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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달고 포장하고 … 개관 준비 이상 무”

‘용산 시대’ 숨은 주역들 … 전문 경영인에서 아르바이트까지 “임무 완수”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5-07-28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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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 달고 포장하고 … 개관  준비 이상 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장 큰 변화는, 건물을 뺀다면 ‘문화재단’의 출범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유물 수집과 전시에 주력하고, 문화재단은 박물관 프로그램과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부대시설 운영 및 마케팅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미 해외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시행하는 전문 운영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 문화재단의 박평식 사장(임기 4년)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정동극장 극장장으로 재직했다.

    “박물관 개관 D-100일이 재단 설립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처음으로 박물관 로고를 단 문화상품들을 개발하고 공연장 ‘용’(805석), 15개 뮤지엄 숍, 10개 카페와 식당 운영의 틀을 잡았어요.”

    그는 새 국립중앙박물관이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극장보다 규모가 커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강·남북에서 접근이 쉬운 요지에 문화공간을 운영하게 된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문화적 사업에 ‘전문경영인’이 도입된 경우 가장 자주 지적되는 점이 수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예술 장르에 대한 편식이 드러나고, 작가들에 대한 배려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뇨, 제가 ‘정동극장’을 그렇게 운영하질 않았어요. 물론 박물관이 세금으로 운영되니 알뜰하게 살림을 하고 수익 사업을 해야겠지만, 예술가들은 가난한 사람들 아닌가요. 그들에게 공연 기회가 필요하고, 기초 예술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식을 비롯하여 개관기념 공연, 각종 서비스 시설 등이 모두 문화재단에 의해 기획됐다. 박 사장은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될 ‘박물관 사람’이 될 것이다.

    길재혁 국립중앙박물관 조명 담당, J+B 스튜디오 대표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빛’을 디자인한 길재혁(36) 씨는 마치 미스코리아 당선자를 부르듯 국립중앙박물관 조명 작업을 맡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디자인에 참여한 이연숙, 고기영, 박순환 씨 등과 ‘공무원답지 않게’ 박물관 조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작업을 지원해준 문화관광부 김홍범 과장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건축조명 공학을 공부한 길 씨는 로스앤젤레스의 ‘게리 뮤지엄’, ‘휴스턴 뮤지엄’, ‘록앤롤 명예의 전당’ 등 젊은 나이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프로젝트의 조명을 맡았다. 그리고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조명 설계 제안을 받아 한국을 찾게 됐다.

    “미국의 일을 중단하고 가족과 이별해야 했지만,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참여하지 않으면 30년은 후회할 것 같았다. 앞으로 제 아이들에게 보여줄 곳이지 않은가. 정말 기뻤다.”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에서 전시실에 들어갈 때까지 빛의 양을 단계적으로 조절한 첨단 조명장치가 그의 솜씨다. 광장의 열린마당, 로툰다, 역사의 길, 복도, 전시실에 들어가면서 빛의 양이 약 10%씩 줄어들도록 디자인했다.

    관람객은 무심히 안으로 들어가지만, 눈이 전시실의 어둠에 익숙해지도록 조명을 설치한 것이다. 복도와 전시실을 연결하는 역사의 길 천장에 설치된 프리즘 시스템은 가시광선만 통과시키기 때문에 실내온도를 효율적으로 유지한다. 동시에 센서가 달린 반사판이 해를 쫓아다니면서 그 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에 늘 같은 조도로 경천사지석탑 등 실내에 있는 유물들을 외부에 있는 것처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전시장 내부를 전반 조명해 유물을 강조하기보다 밝고 쾌적한 ‘분위기’를 보여주게 된다.

    “지금은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에 참여했고, 국내 조명업계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있다.”

    1년 동안 2주일씩 뉴욕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는 길 씨는 이제 서울에 새로운 스튜디오를 내고 한국의 ‘빛’을 디자인하고 있다.

    김홍식 전 국립중앙박물관 유물포장 전문가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 유물담당실에 들어가 올해 6월 정년퇴임한 김홍식 씨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보물’을 안고 쓰다듬은 사람이다. 그래서 ‘국보를 가장 잘 아는 인간 국보’로 불리기도 한다.

    “중앙박물관 유물들이 그사이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마지막 일이 우리가 직접 만든 중앙박물관에 유물을 옮기는 일이어서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동안 전시장이 작아서 고생하던 춘궁리 대형 철조여래좌상도 이제 자리를 잡아 편안하게 봉안된 걸 보니 기쁩니다.”

    그는 손길 하나하나 조심스레 다뤘던 유물들이 내진 설계가 된 전시장에 들어가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며 이제 마음이 놓인다고 덧붙였다.

    그의 유물 포장은 그저 ‘잘 싸는’ 수준이 아니다. 약하고 미세한 유물이나 독특한 형태의 유물포장을 위해 그는 매번 새로운 포장재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그의 포장기술과 정성에 해외 박물관 담당자들이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할 정도였다.

    거의 독보적인 유물포장 전문가로 지금도 고궁박물관에 보낼 유물을 포장하고 있는 그의 가장 큰 아쉬움은 “힘들지만 생색은 안 나는 일에 뛰어드는 후진이 없다는 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 기획과장에서 올해 이 박물관 과장이 된 김호동 과장은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안방살림을 맡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 등 대형 프로젝트를 따라다니며 살림을 맡았던 김 과장은 “역사적 건물이 후대에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 건축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도입되는 기술이 많은데, 무사히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캐나다 문화유산부에 잠시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공무원들과 전문예술가들의 협업이 인상적이었다”는 김 과장은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 같은 큰 국제적 행사가 열리고, 그곳에서 마지막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밝혔다.

    하정원 고고부 아르바이트

    “평생 이 같은 중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1층 고고부 삼국시대 전시관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 하정원(28·동아대 고고미술사학 석사) 씨는 2003년 여름부터 용산에서 땀을 흘려온 베테랑급 정예요원이다. 그가 하는 일은 이전 전문가들과 학예사들을 도와 라벨을 붙이고 설명서를 만드는 단순 잡무부터 세심한 마무리를 돕는, 그야말로 전문 아르바이트인 셈이다. 일찍이 전공을 살려 대학 시절부터 부산박물관에서 유물을 다뤄본 경험이 여기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어느새 2년 가까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지낸 하 씨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나 보람차고 즐겁다”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앞으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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