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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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신인 등장·기존 저술가 도약의 場으로 ‘성공’

  • 입력2003-08-07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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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 신인 등장·기존 저술가 도약의  場으로 ‘성공’
    사실에 주목하며 진실을 그려낸다. 허구의 단점을 극복하며 학술의 무거움을 덜어낸다. 가벼움과 따뜻함, 중후함과 냉정함 사이에서 절제의 미학을 추구한다. 학문적 모색과 문학의 사색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는 ‘논픽션’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지만 성공하기는 어려운 장르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민음사가 1억원 고료를 내걸고 ‘올해의 논픽션상’을 제정한다고 발표했을 때 과연 어떤 논픽션 작품과 새로운 작가를 발굴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올해 2월 응모 마감 직후 민음사측은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필자들이 여럿 참가했다며 다소 흥분하는 분위기였다.

    149편의 응모작을 놓고 6개월 가까이 심사가 진행된 끝에 민음사녹은7월28일 제1회 ‘올해의 논픽션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대상은 ‘상하이 올드 데이스’를 쓴 무명의 작가 박규원씨에게 돌아갔다. ‘상하이 올드 데이스’는 1930년대 중국의 영화 황제로 알려졌던 전설적인 배우 김염(본명 김덕린)의 삶을 그린 휴먼 다큐멘터리다.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던 박규원씨는 1995년 친정어머니로부터 숨겨진 가족사에 대해 듣고 외증조할아버지 김필순(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이자 독립운동가)과 김필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배우가 된 작은 외할아버지 김염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심사를 맡은 서강대 김승희 교수는 ‘상하이 올드 데이스’에 대해 “세심한 자료조사와 친족들과의 인터뷰, 치밀한 현장답사를 통해 김염이라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예술가의 잊혀진 생애를 생생하게 복원했다는 점에서 논픽션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나머지 수상작을 보면 57편이 응모해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인 휴먼 다큐멘터리 부문에 ‘상하이 올드 데이스’에 이어 백이제의 ‘사자의 서를 쓴 티베트의 영혼 파드마삼바바’가 선정됐고, 안인희의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와 강판권의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가 역사와 문화 부문에서 공동 수상을 했다. 사회와 경제 부문에서는 강구정의 ‘나는 외과의사다’가 선정됐다. 다만 휴먼 다큐멘터리 부문과 함께 가장 많은 작품이 출품된 ‘세계와 여행’ 부문은 수준 미달로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박규원씨 외에 나머지 수상자들은 기성 저술가, 번역가라는 점도 눈에 띈다. 게르만 신화가 바그너의 손에서 예술이 되고 히틀러의 손에서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의 저자 안인희씨는 인문학권의 대표적인 번역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실러의 ‘발렌슈타인 3부작’,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 ‘발자크 평전’,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등이 그의 주요 번역작.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작품을 쓰면서 지금까지 축적된 문학과 철학, 예술, 역사적 성과들을 잘 녹여냈다는 평을 받았다.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의 생애를 그린 백이제씨는 삼성문학상, 대원문학상, KBS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이미 문단에 이름을 올린 경우고,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의 저자 강판권씨는 계명대 교수(중국사)이면서 몇 년 전부터 나무와 역사, 신화 읽기에 천착해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처럼 제1회 ‘올해의 논픽션상’은 무명 신인의 참신한 작품과 기존 저술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작품들로 풍성해 벌써부터 제2회 논픽션상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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