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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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불황 계속 “일자리 어디 없소”

지난 6월 현재 6.4% 실업률 9년 만에 최악 … 기업투자 회복, 소비지출 증가 위안

  • 뉴욕=홍권희/ 동아일보 특파원 konihong@donga.com

    입력2003-08-06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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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불황 계속 “일자리 어디 없소”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인도인 IT 전문가.인도인들은 낮은 임금과 숙련된 기술을 무기 삼아 미국의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속속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마이클 에먼스도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세상 돌아가는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곧바로 퇴보해버릴 것’이라고 며칠 전 ABC TV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직장에서 쫓겨난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전자장비 업체인 지멘스에 다니던 에먼스씨는 다른 19명의 프로그래머와 함께 임금이 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야 했다. 이들이 회사에서 맡은 마지막 업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교육하는 일이었다. 에먼스씨는 TV 인터뷰에서 “이 바닥에 들어와서 한다고 했는데, 결국 내 일자리를 빼앗을 사람을 교육하는 걸로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보니 비참하더라”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해외로 달아나는 미국의 일자리

    1980년대에 미국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듯, 지금은 화이트칼라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노동 관련 문제에 밝은 포레스터 연구소의 존 매카시 조사담당국장은 “기차는 이미 떠났다”면서 미국의 일자리가 외국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불황 계속 “일자리 어디 없소”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미국인들.

    미국의 화이트칼라 일자리 50만개가 이미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중국으로 떠났다.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이 다음 후보국가들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미국의 일자리를 가장 많이 차지한 나라는 인도다. 세계 최대의 하이테크 분야 예측회사인 가트너는 미국 내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산업 쪽 1030만개의 일자리 가운데 50만개가 올해와 내년 중에 인도와 러시아 등 해외로 날아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인 컴퓨터 프로그래머에게 6만 달러(약 7200만원)를 줘야 하는 일을 인도인에게 맡기면 6000달러(약 720만원)면 된다. 미국인이 하던 업무를 외국인에게 맡기려고 하는 기업들에게 컨설팅을 해주는 네오IT의 아툴 바시스타 사장은 “지금 기업들은 어떻게 해서든 비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한테 달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비벡 팔은 고객회사들의 주문에 응하기 위해 2000명의 인도인 직원을 고용했다. 마이크로소프트, GE, JP모건 체이스, 베스트 바이 등이 고객인 기술컨설팅 회사 와이프로가 사람을 찾으면 재빨리 제공해주는 것이 그의 업무다. 노임이 싸고 재주가 많은 인도인이 이 시장에선 가장 인기가 높다.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컴퓨터 및 서비스 업체인 IBM의 경영진은 소프트웨어 및 반도체 개발 부문을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미 IBM 종업원 31만6000명 가운데 5400명이 인도인이다.

    미국 불황 계속 “일자리 어디 없소”

    미국의 실업률은 6월 현재 6.4%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다양한 인종들이 북적이는 뉴욕 거리.

    제조업 쪽은 사정이 더 나쁘다. 해고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7월31일 유명 필름제조업체 이스트만 코닥은 일부 공정을 멕시코와 중국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신 미국 뉴욕 주의 공장에선 900명을 해고한다는 것이다. 미국 경기가 나쁜 데다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필름산업의 불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20년 전 13만6500명이던 종업원 수가 6만2000명으로 줄었지만 올해 안에 4500~6000명이 더 줄어들 전망이라는 것.

    100년 이상 노스캐롤라이나의 섬유산업을 이끌어온 필로우텍스는 결국 부도 위기에 빠져 조업을 중단했다. 이 회사에서 수건과 시트를 만들어온 7650명의 직원들은 모두 해고될 운명에 처했다. 불황기에 잠시 일을 하지 못하는 일시해고가 아니라 영영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상징적인 기업인 포드자동차도 7월 중순 종업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연말까지 세계적으로 종업원을 10%(2000명) 줄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예고했다.

    삶의 질 떨어뜨리는 고용한파

    미국의 실업률은 6월 현재 6.4%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경기가 2001년 11월을 바닥으로 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공식 판정이 있었지만 체감경기는 여전히 불황의 골이 깊다. NBER도 그동안 경기회복 신호가 자주 나타났지만 고용이 되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불황 탈출’ 판정을 주저해왔다. 그러다가 7월17일 판정을 내리면서도 “생산은 늘어나지만 고용이 회복되지 않는 것은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일자리가 조만간에 많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는 의미다.

    문제는 실업자 또는 하향 취업자들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 실직당하면 돈만 못 버는 것이 아니라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미국의 실업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기도 하다. 심장병 치료를 받고 있던 한 실직자는 “먹어야 할 약을 절반으로 줄였다”면서 “더 오래 복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카고에 사는 엘리자베스 브래드버리는 자신과 어린 딸 모두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그는 하루에 네 시간씩 경리업무를 본 뒤 동네 아이를 돌봐주고 약간의 돈을 받는다. 그는 “차가 고장나거나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말한다.

    뉴저지 주 럿거스대학과 코네티컷대학이 1015명의 노동연령 인구를 대상으로 한 공동조사 결과 응답자 5명 중 1명(18%)이 2000년에서 2003년 사이에 해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자의 30%는 해고 1~2주 전에야 해고통지를 받았고, 34%는 통지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응답자의 40%는 “3년에서 5년 사이에 또 해고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해고된 사람 중 3분의 2는 해고수당 또는 기타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 같은 해고로 인한 충격은 백인보다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상황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인기가 높을 리 없다. 2004년 대통령 선거를 16개월 앞둔 상황에서 족비 인터내셔널의 조사결과 대통령직을 잘 수행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53%로 거의 최하 수준이다. 한 달 전엔 58%였다. 고용과 경제 분야에 대한 평가는 특히 점수가 나빠 33%가 ‘잘한다(positive)’, 66%가 ‘못한다(negative)’였다.

    2·4분기(4~6월) 중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4% 증가해 월가의 추정치 1.5%를 훨씬 웃돌았다. 이는 작년 가을의 4.0%보다는 낮지만 작년 말과 올 초 2개 분기의 성장률 1.4%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수치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호황을 누린 군수산업 덕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분석가들은 7월 하순에 새로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의 숫자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일주일 만에 3000명이 줄어 총 38만8000명이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심리적으로 중요한 구분선인 40만명 아래로 떨어진 상태가 3주째 계속 이어졌다”고 반기고 있다.

    2001년 이후 부진했던 기업투자 역시 올봄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경제의 3분의 2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불황기에 미국경제를 지탱해온 소비지출도 빠른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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