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6

..

소설이야 화집이야 ‘책의 변신’

  • 입력2003-03-14 10: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소설이야 화집이야  ‘책의 변신’
    열림원의 시설(詩說) 시리즈가 윤대녕의 ‘에스키모 왕자’, 정정희의 ‘공룡’, 한강의 ‘붉은 꽃 이야기’를 1차분으로 첫 출발을 했다. 시처럼 아름다운 호흡을 지니고, 현실의 무게를 소설처럼 끌어안았다는 이 시리즈의 정체가 궁금하다.

    일단 시설이라는 말은 시와 소설의 장르적 결합을 뜻한다. 열림원측은 시처럼 압축된 간결함과 언어의 밀도, 산문의 구조적 완결성이 결합된 새로운 글쓰기라고 설명한다. 200자 원고지 250장 안팎의 중·단편을 책으로 엮었으니 웬만한 시집 한 권 두께와 별 차이가 없다. 정상급 화가들이 그린 그림과 넉넉한 여백 사이에 배치된 짧은 문장들은 시화집을 연상케 한다.

    또 이 책은 ‘그림소설’을 표방했다. 단순히 글을 뒷받침하기 위한 일러스트가 아니라, 화가가 책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그래서 소설가의 책인 동시에 화가의 책이기도 하다. 하정민의 ‘에스키모 왕자’, 정성엽의 ‘공룡’, 우승우의 ‘붉은 꽃 이야기’로 불러도 무방하다.

    ‘에스키모 왕자’에서 윤대녕은 다시 길을 떠나는 여행자가 된다. ‘내 속의 또 다른 나’로서 에스키모 왕자는 나를 데리고 여행하는 자다. 어쩌면 나란 존재는 에스키모 왕자가 멀리서 끌고 온 시간 위에서 잠시 춤을 추고 있는 자일 뿐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의 나는 런던, 암스테르담, 하이델베르크, 프라하를 여행하는 동시에 에스키모 왕자를 찾아가는 내면여행을 한다. 하정민의 그림은 텍스트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독립된 여행 스케치를 만들어낸다.

    ‘오렌지’ ‘토마토’ ‘언니’의 작가 정정희가 이번에는 ‘공룡’에서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 깨기를 시도한다. 공룡은 세상에 동화되지 못하고 퇴화한 인간 혹은 사랑을 가리킨다. ‘공룡’의 그림은 페미니스트 프로젝트 그룹 ‘입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정엽이 그렸다.



    한강의 ‘붉은 꽃 이야기’는 우승우의 그림과 하나가 되어 있다. 어린 동생 윤이의 죽음을 겪은 조숙한 여자아이(선이)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붉게 피어나는 꽃과 밝은 빛을 만나게 된다. 우승우는 채색 수묵화로 절 앞마당과 법당을 장식한 붉은 연등의 이미지로 삶과 죽음을 시각화했다.

    최근 삽화를 보조수단이 아닌 독립된 그림언어로 만든 책들이 늘고 있다. 이산하의 성장소설 ‘양철북’(시공사 펴냄)은 김은희가, 박완서의 손때 묻은 동화 ‘옛날의 사금파리’(열림원 펴냄)는 우승우가 그렸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윤문영의 아름다운 데생이 삽입된 조민희의 ‘나는 지금 네가 보고 싶어’가 떠오른다. 이런 감각적인 편집이 과연 소설에 등돌린 독자들을 다시 책의 매혹 속으로 빨려들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소설과 그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을 여유를 기대해본다.



    확대경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