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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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프로젝트 ‘산 넘어 산’

러, 북 거쳐 천연가스 수입 계획 … 美 지지·北 동의 불투명, 타당성 조사 병행해야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3-13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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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할린 프로젝트 ‘산 넘어 산’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는 북한의 에너지난을 해결하고 교착상태에 빠진 경수로 사업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노무현 정부 들어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할린 가스는 과연 위기에 빠진 경수로를 대신할 수 있는 ‘묘약’인가. 북한에 대한 경수로 지원사업이 난관에 봉착하면서 경수로를 대체할 수 있는 카드로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가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는 러시아 사할린섬 동북부 해안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하바로프스크를 경유한 뒤 북한 영토를 거쳐 한국으로 끌어오면서 파이프라인 통과에 대한 대가로 북한에 천연가스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구상.

    전문가들 “당장 경수로 대체하기 힘들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취임 전 한국을 방문했던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노대통령을 만난 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면 미국이 민간투자자들과 함께 북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는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워싱턴에 근거를 둔 ‘FSI에너지(Foundation Systems Inc Energy·이하 FSI)’는 켈리 특사가 지목한 민간기업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FSI는 미국 국무부와 의회의 인맥을 중심으로 미국 정부를 이 프로젝트로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회사의 존 페터 사장은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워싱턴의 한국경제연구원(KEI)이 1월7일 워싱턴에서 공동 개최한 동북아 에너지 협력 포럼에서 자신들의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 구상을 ‘코러스(KoRus)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끓으면 쉽게 식는 법. 자세히 살펴보면 최근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가 당장 경수로의 대안으로 논의되기에는 적지 않은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외 에너지 전문가들이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가 당장 경수로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을 내놓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선 FSI측에서 주장하는 ‘코러스 프로젝트’의 경우 구체적으로 사할린 해안에 산재한 수많은 광구 중 어느 것을 대상으로 하는지부터가 불분명한 상태다. 사할린 동북부 해안에 산재한 가스전은 대략 6개의 광구로 나뉜다. 이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각 광구의 지분을 가진 참여 회사들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할린Ⅰ프로젝트에는 미국의 엑손 모빌(ExxonMobile)과 일본의 사할린 오일개발회사(SODECO)가 30%의 지분으로 공동 참여하고 있고 러시아의 로즈네프트(Rosneft)와 사할린모르네프테가스(SMNG-Shelf)가 각각 15%씩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SMNG-Shelf가 사실상 로즈네프트의 자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측 지분 역시 20%에 이르는 셈이다. 사할린Ⅰ광구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이미 LG나 SK 등을 통해 국내에도 일부 수입되고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광구다.

    엑손 모빌을 제외한 사할린Ⅰ 프로젝트 참여사들 중 SODECO는 일본석유공단(JNOC)과 일본석유개발주식회사(JAPEX), 이토추상사 등이 공동 참여한 합작법인. 관심을 모으는 것은 SODECO의 한 축을 이루는 이토추상사 관계자들이 얼마 전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를 방문했을 때 한미 간의 희망과는 달리 사할린Ⅰ에서 생산한 가스를 북한을 통과해 운송하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사할린 프로젝트 ‘산 넘어 산’

    사할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에너지 전문가들은 사할린-북한-한국을 잇는 파이프라인 건설 비용이 경수로 건설 비용보다 적게 든다고 주장한다.

    2006년부터 가스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사할린Ⅱ 프로젝트의 최대 지분은 영국의 쉘(Shell)사가 갖고 있다. 쉘사의 지분은 55%로, 일본의 미쓰이(Mitsui)와 미쓰비시(Mitsubish)가 각각 갖고 있는 25%와 20%의 지분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많다. 사할린Ⅱ는 이미 96년부터 석유생산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할린 동북부 가스전 중 가장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꼽힌다.

    나머지 사할린Ⅲ∼Ⅵ 프로젝트의 경우 아직 매장량도 정확하게 추정되지 않고 있는 데다 상용화 시기도 기약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경수로 대체용’ 카드로 논의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게다가 사할린Ⅱ의 경우 최대 주주인 쉘사가 이미 2001년 파이프라인으로 수송하지 않고 LNG선을 이용해 수송하기로 결론을 낸 상태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사할린Ⅰ밖에 없다. 따라서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일각에서 검토되고 있는 사할린 프로젝트 역시 사할린Ⅰ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할린Ⅰ의 경우에도 이미 일본 쪽에서는 현지조사 및 타당성 검토를 마쳐놓은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일본은 이미 북한을 통과하지 않고 사할린에서 바로 파이프라인을 통해 일본 열도로 운송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제 막 경수로 사업에 대한 대안으로 사할린 I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하는 사이 일본은 이미 ‘침까지 발라놓았다’는 말이다.

    사할린Ⅰ의 지분을 가진 참여사들 중 엑손 모빌이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사할린Ⅰ의 북한 통과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루트가 엑손 모빌이기 때문이다. 특히 엑손 모빌이 부시 미국 행정부의 경제적 후원자로 알려지면서 이 회사가 사할린Ⅰ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엑손 모빌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에너지 프로젝트에 미국의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 참여를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을 뿐더러 북핵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 작용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일각에서 엑손 모빌을 움직여 사할린 프로젝트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구상이 흘러나오는 데는 바로 이런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으로부터 사업권을 따냈다고 주장하는 FSI가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엑손 모빌을 제쳐놓고 사할린 프로젝트를 논의한다면 이는 자신들의 구상이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사할린 가스전에서 발생하는 천연가스를 북한을 통해 한국으로 끌어오는 작업에 착수하자면 자연스레 95년부터 추진해온 이르쿠츠크 가스전 프로젝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정부는 이미 이르쿠츠크로부터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를 들여오기 위해 현재 타당성 조사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6월에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이르쿠츠크 가스전 사업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3국이 공동참여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한국이 일방적으로 발을 빼기에는 부담이 따른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산업자원부나 가스공사 역시 7∼8년 동안 공들여온 이르쿠츠크 가스전 프로젝트를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다.

    천연가스의 공급자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측의 태도 또한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테미라즈 라미쉬빌리 주한 러시아 대사는 2월4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으로 부각되고 있는 사할린 가스전의 한반도 연결사업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할린 프로젝트에 관심을 표명한 라미쉬빌리 대사 역시 “이르쿠츠크 파이프라인이 북한을 통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 러시아 입장에서도 두 개 노선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인상을 풍겼다. 라미쉬빌리 대사가 밝힌 북한 통과 루트는 이르쿠츠크에서 하얼빈(哈爾濱)과 선양(瀋陽), 단둥(丹東)을 거쳐 북한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로를 말한다.

    정부 역시 이르쿠츠크 가스전의 북한 통과 방안을 염두에 두고 가스공사 관계자들을 북한에 보내 북한의 의중을 타진한 적이 있었다. 2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당시 타당성 조사를 제의받은 북한측은 사실상 우리측 제안을 거부했다. 현재도 북한은 가격과 이동거리 등을 감안하면 이르쿠츠크 쪽보다는 사할린 쪽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할린 프로젝트 ‘산 넘어 산’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중-러 3국 간 공동사업인 이르쿠츠크 파이프라인의 북한 통과를 미국이 용인하겠느냐는 점도 회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르쿠츠크 파이프라인을 중국의 다롄(大連)을 통해 평택항으로 들여온 뒤 휴전선을 통해 북한에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창원 가스팀장은 “러시아 천연가스를 한국까지 끌어오기 위해서는 경제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사할린의 경우 투자비에 비해 수요를 창출하기가 쉽지 않다”며 “경수로를 대체하는 방안이라면 사할린에서 북한을 경유하는 방안보다 한국으로 들여온 이르쿠츠크 가스를 북한으로 올려보내는 방안이 오히려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전문가들은 한국의 에너지공급원이 북한 영토를 통과하는 데 따른 불안 요인을 지적하기도 한다. 과거 서시베리아의 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지역으로 수송할 당시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우크라이나측에서 불법적으로 가스를 빼내왔던 사례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에 이르쿠츠크 가스를 어떤 형태로 공급하든 한-중-러 3국 공동 프로젝트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장애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경수로 사업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지지와 북한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전 켈리 특사와 파월 국무장관이 ‘민간기업을 통한 에너지 지원’을 한 차례씩 언급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미국이 사할린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우리 정부 쪽에서 미국을 설득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의 하나로 사할린 프로젝트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 사할린 가스전 프로젝트를 브리핑한 바 있는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백근욱 박사는 “한-중-러 프로젝트는 차후에라도 추진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미국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사할린 프로젝트를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박사는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의 주영대사 시절 라보좌관을 통해 이런 아이디어를 노무현 대통령측에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백박사는 또한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르쿠츠크를 포기하고 사할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우선권을 주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사할린 프로젝트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 조사가 이뤄져 있지 않다 보니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물밑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할린 루트가 이르쿠츠크 루트에 비해 거리가 짧고 지형적으로도 우수하다는 점을 들어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론자들은 러시아 수요 부족, 정치적 불안 등을 들어 오히려 위험요소가 많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할린Ⅰ의 파이프라인 건설과 관련해도 사할린 프로젝트에 회의적인 전문가들은 엑손 모빌은 대금 회수가 안정적인 일본 열도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방안을 선호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일본 수요만 갖고는 투자비를 회수할 수 없어 결국 엑손 모빌도 러시아-북한-한국 라인을 통해 중국에까지 수요를 확장하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엑손 모빌이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형성되고 있는 경쟁구도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이견을 좁히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을 동원한 현지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아무리 빨라도 타당성 조사에는 1년 이상이 걸린다. 사할린 프로젝트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타당성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가 청와대 일부와 인수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은밀하게 거론되면서 정작 중요한 경제적 타당성 분석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자칫 사전에 면밀한 검토 없이 시간에 쫓겨 착수했다가는 경수로의 재판(再版)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에 경수로를 완공한다고 하더라도 정작 전력공급망 부족 때문에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한 현실과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동북아에너지포럼 선우현범 회장은 “사할린Ⅰ의 경우에도 일본과 이미 공급 계약이 맺어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일본 수요를 충족하고 남는 물량의 가스를 공급받아야 할 형편”이라면서 “사할린 가스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루빨리 타당성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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