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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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 ‘실속 강좌’ 눈에 띄네

웨딩 플래너·쇼핑 호스트 등 취업관련 ‘인기 짱’… 명품·관상학 등 이색 강좌도 잇단 개설

  • < 구미화 기자 > mhkoo@donga.com

    입력2004-10-22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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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센터 ‘실속 강좌’ 눈에 띄네
    문화센터가 할 일 없고 주머니 넉넉한 주부들이나 드나드는 곳이라고? 천만의 말씀!

    대부분 3월 초 봄강좌를 개강한 문화센터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대학생은 물론 유아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들을 수 있는 실속 강좌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 것.

    올 연초를 강타한 ‘부자 바람’은 문화센터에도 불어닥쳤다. 요즘 들어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단연 재테크 관련 강의. 그동안 취미생활 정도에 머물렀던 강좌 수준도 이제는 취업이나 창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만큼 눈에 띄게 높아졌다. 최근 명품 열풍을 타고 문화센터에서 명품 관련 강의들이 속속 선보이는 것도 눈길 끄는 대목이다.

    지난 3월7일 오전 현대백화점 신촌점 문화센터 제6강의실. 영화 제목과 인기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으로도 널리 알려진 ‘웨딩 플래너’ 양성 과정이 개강하는 날이다. 캐주얼 차림의 20대 여성부터 새로 마련한 필기도구를 꺼내놓고 맨 앞자리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40대 후반 ‘주부 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들이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앉아 있었다. 복잡한 결혼 준비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웨딩 플래너는 최근 신세대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 현대백화점에서는 문화센터 강의를 돈벌이와 연결시키기를 원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게 이 과정을 신설했다. 교육이 끝나면 자격시험을 거쳐 웨딩매니저협회에서 수료증을 준다.

    문화센터 ‘실속 강좌’ 눈에 띄네
    강의 시간보다 일찍 자리잡고 앉아 있던 박은숙씨(29)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하는 것보다 전문가에게 요모조모 배워두면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아 등록했다”며 “직업과 연결되면 금상첨화”라고 했다. 풍선을 이용한 이벤트 사업을 하고 있다는 박나영씨(49)는 웨딩 플래너 강좌를 듣고 수료증을 받으면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창업 관련 강좌로 웨딩 플래너 양성 과정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아로마테라피 전문인이나 발 건강 관리사 자격증처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강좌들. 아로마테라피나 발 건강 관련 강좌는 몇 년 전부터 문화센터에 이미 개설되어 있었다. 그러나 강좌 제목을 건강 강좌에서 ‘전문직 지도자 과정’으로 포장을 바꾼 후 반응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게 문화센터측 설명이다. 현재도 건강 강좌 코너에 발마사지 강의가 있고, 수강료가 발 건강 관리사 자격증반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자격증반에 비하면 등록률이 저조하다. 이왕 배우기 시작한 것, 어떻게든 직업과 연결시켜 보려는 것이 요즘 백화점 문화센터를 찾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임을 알 수 있다. 쇼핑 호스트 양성 과정이나 텔레마케터 과정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

    롯데백화점 강남점 문화센터의 경우 전문가 양성 과정에 ‘관상학’ ‘생활역학’ ‘복을 부르는 풍수 인테리어’ 등의 이색 강좌가 마련되어 있다. 한국역학협회 소속 강사들과 풍수학자, 원광대 동양대학원 교수 등이 강의한다. ‘생활역학’ 초급 과정을 강의하는 최정자씨는 문화센터 수강생으로 시작해 전문강사로까지 나선 경우.

    엄마와 아기가 함께 듣는 ‘엄마랑 아기랑’, 부부가 함께 배우는 ‘부부 댄스’ 등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강의도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주로 저녁시간을 이용한 부부 댄스 강의는 신세계 강남점의 경우 한 강의당 평균 10쌍 안팎이 등록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룸바, 퀵스텝, 탱고, 차차차까지 초·중·고급 과정으로 분류해 강의한다. 꼭 부부가 함께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부부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함께 춤바람난’ 부부들의 얘기다. 이 밖에 메이크업 강의나 요가 강의는 엄마와 젊은 딸이 함께 등록해 듣는 경우도 많다.

    문화센터 위치에 따라 잘 나가는 강의의 종류도 다르다.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신촌에서 취업 관련 강의가 인기를 얻는 것과 달리, 강남에 있는 문화센터의 주 고객은 40∼50대. 그중에서도 50세 이상에 한해서만 등록할 수 있는 실버 강의가 인기다. 춤으로 장수를 기원하는 실버 건강댄스를 비롯해 잦은 해외여행에서 간단한 현지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외국어 강좌, 홈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의 고급 컴퓨터 과정까지 다양한 실버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이들 강의는 나이를 잊은 50대들이 몰려 늘 조기 마감된다는 게 문화센터측 설명이다.

    문화센터 ‘실속 강좌’ 눈에 띄네
    일부 부유층을 상대로 문화센터 강좌의 고급화 경향도 두드러진다. 현대백화점에 이어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오는 4월 시작하는 ‘홍&장의 명품 이야기’는 보석전문가 홍석민씨가 직접 강의한다. 프랑스 샤넬사 초청을 받아 현지에서 보석 연구를 하고 돌아온 실력파 홍씨는 95년 이후 동아일보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에 명품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홍씨는 이번 강의에서 명품의 유래와 세련된 코디법, 구입 방법까지 안내해 줄 예정이다. 그의 강의는 또 명품 브랜드의 본토 격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명품의 같은 점과 다른 점, 과거 어느 부자가 어느 명품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아르마니는 본처용이고 베르사체는 첩을 위한 것’이라는 등의 에피소드도 첨가된다.

    백화점들의 명품 관련 강의는 최근 명품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백화점들의 명품 마케팅도 한몫하고 있다. 실제 홍씨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보석들을 강의 시간에 소개해 달라는 백화점측 요구를 거절하느라 애먹었다고 한다.

    문화센터의 단골 메뉴였던 요리 강좌도 고급화 경향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조선호텔이나 유명 요리전문가를 직접 방문해 배우거나 ‘중식으로 차리는 가족 홈파티’처럼 파티 준비를 위한 요리 강좌가 눈에 띄게 늘었다. 50대 이상 연령층을 위한 별미 기행도 인기.

    ‘금남의 집’으로 여겨질 만큼 여성이 독차지한 문화센터의 현실도 조만간 바뀔 것 같다. 현대백화점 본점에서는 남성 고객 확보를 목표로 ‘프레젠테이션 리더십’ 강의를 개설했다. 접수 결과 30명 정원에 7∼8명의 남성이 등록해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다른 강좌들보다 남성의 참여가 높은 편이다. 이 밖에도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재테크나 창업 관련 강좌는 정원의 30% 정도가 남성이다. 현대백화점 신촌점 문화센터 이정오 대리는 “강좌를 기획할 때 유아부터 60대까지 각 연령대와 성별에 맞는 강좌를 준비한다”고 말했다. 문화센터가 더 이상 ‘한가한’ 주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화센터가 이색적인 강의로 변화를 꾀하면서도 지역주민의 교육과 문화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만은 여전하다. 동아문화센터는 교육 수준이 낮거나 자녀 학습에 도움을 주기 원하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중·고등학교 영어·수학 강좌를 마련했다. 그리고 VJ 관련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 촬영에 관심을 갖게 되자 ‘VJ교실’ ‘주말 비디오’ 등의 강좌를 신설했다. 동아문화센터는 또 인터넷으로 강의하는 사이버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백화점 문화센터의 다양화·고급화 전략은 대형 할인점과의 차별화를 통해 비교우위를 확보하고 고소득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것. 따라서 할인점과의 경쟁에서 백화점이 생존하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도 있다.

    백화점들은 문화센터를 찾는 ‘큰손’들을 잡기 위해서라면 ‘주식부터 발마사지까지’ 눈길 끄는 강의들을 찾아내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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