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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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독트린’이 신냉전 부른다

‘신형 핵무기 개발’ 내용 담긴 보고서 공개… 지구촌 ‘핵전쟁’ 악몽 속으로

  • <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0-22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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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독트린’이 신냉전 부른다
    북한의 한 지방도시가 미국의 핵폭탄에 불바다로 변한다. 밤마다 평양 특수 방공호에서 ‘설마’ 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긴급명령을 내린다. “앉아서 당할 순 없다. 서울로 미사일을 쏴라. 용산 미군기지가 과녁이다.” 다음날 평양 한복판에 핵폭탄이 떨어진다….

    가상소설이 아니다. 악몽의 시나리오는 현실로 다가설지 모른다. 최근 드러난 부시 행정부의 핵무기 개발·사용 계획에 따른다면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7000만 인구를 핵 공포로 몰아넣는 부시의 핵전쟁 시나리오.

    물론 이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클린턴 집권기인 지난 97년 ‘PDD-60’이란 문서를 통해 소위 ‘불량국가’(rogue states)들은 이미 핵 공격 대상에 올랐다.

    참모들 즉각 파문 진화 나서

    올해 초 미 국방부는 ‘핵 정세 검토’(Nuclear Posture ReviewㆍNPR)란 제목의 비밀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서명한 이 보고서가 핵 공격 대상으로 꼽은 국가는 7개국. 연초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 이라크 이란에 ‘테러 지원 국가’로 꼽혀온 리비아 시리아 중국 러시아가 포함됐다. 이 보고서는 수십m 깊이의 지하벙커 등 기존 핵무기 공격을 견디도록 만들어진 공격 목표물들을 파괴하기 위해 신형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 미 전략사령부는 NPR보고서를 바탕으로 미래의 핵전쟁 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NPR보고서는 최근 LA타임스의 특종보도로 알려졌다. 미 의회에 보고된 지 두 달이 지나서다. 냉전시대에 마구 만든 ‘악의 무기’인 핵무기, 전쟁 억지의 마지막 수단으로 여겨져 온 이 핵무기를 21세기에 다시 개발해 실전에 사용한다는 게 NPR보고서의 핵심이다.

    냉전이 막을 내린 1989년 당시 미국이 보유했던 핵무기는 약 2만기. 현재 보유한 핵무기는 1만기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알려진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최근 상원 세출소위원회에서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10년간 미국의 전체 핵탄두 수를 3분의 2 줄이거나 1700∼2200개로 감축하는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새 핵무기를 개발하면 핵무기 감축은 아무 의미가 없다.

    NPR보고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읽었다 치자. 이들은‘부시의 핵 공격을 피하려면 우리도 핵무기가 필요하다. 파키스탄과 인도처럼 과학자들을 재촉해 핵무기 개발을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이들뿐 아니다. 지구상의 많은 정치 권력자들이 비(非)핵국가의 힘없는 지도자로서 미국 눈치를 보기보다는 핵무기를 한두 개쯤 갖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기는커녕 핵무기를 분명한 전쟁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드러낸 NPR보고서 내용이 일반에 알려지자, 미국 안팎에선 비난의 봇물이 터졌다. 뉴욕타임스는 사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핵 악당으로서의 미국’(America as Nuclear Rogue)이 그것이다. 이 사설은 “만약 어떤 나라가 새 핵무기를 개발하고 비핵국가를 대상으로 핵 공격 목표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미국은 그 나라를 위험한 ‘불량국가’로 부를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를 비판했다.

    부시의 참모들은 NPR보고서 파문이 일자 속으로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파월 장관은 CBS 방송에 출연해 “지금 당장 미국 핵무기의 공격 목표로 매일 조준되고 있는 국가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며 불 끄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곤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NBC ‘언론과의 만남’ 프로에서 “NPR보고서로 놀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인들로부터 8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을 떠올리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핵무기가 미 본토에서 터지지만 않으면 CNN 생중계로 팔짱 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부시 독트린’이 신냉전 부른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이런 ‘강 건너 불구경’ 욕망은 그러나 쉽게 채워지지 않을 전망이다. 지하벙커를 파괴할 핵무기 개발이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바위나 콘크리트를 뚫고 들어간 다음 터지도록 핵폭탄을 설계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즉 미국의 핵무기 관련 기술이 부시의 핵전쟁 의욕을 못 따라간다는 얘기다.

    냉전시대 말기만 해도 미국 핵무기 산업은 10만명을 고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러나 92년 9월부터 지하 핵실험을 하지 않아 지금은 관련 연구소들이 개점휴업 상태다. 그렇지만 부시 행정부 들어 국방비 증액과 아프간 전쟁, 미사일방어망(MD) 사업 등으로 호황을 맞은 군수산업체들은 NPR보고서를 이미 지난 1월 입수해 지금쯤 막대한 핵무기 연구개발비 용역을 따내려 치열한 로비전을 펴고 있을 게 뻔하다.

    부시는 9ㆍ11 테러사건 6개월을 맞아 2단계 테러전쟁을 벌일 태세다. 그는 눈치 보는 국가들을 향해 “행동하지 않는 것(inaction)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며 미국 편에 줄서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난 1월 말 국정연설에서의 ‘악의 축’ 발언도 그 뒤가 심상치 않다.

    최근 드러난 NPR보고서 내용을 곱씹어보면, 부시는 이미 자신의 패권전쟁 구상을 핵전쟁 쪽으로 가닥 잡은 바탕 위에 ‘악의 축’이란 도발적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의 대외정책을 가리키는 ‘부시 독트린’은 ‘핵전쟁 불바다’ 위협론에 기초한 신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라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미국에 비협조적인 국가들을 핵 공포 속으로 몰아넣으며 유일 패권을 구축하려는 부시로 인해 지구촌의 많은 이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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