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6일 오후 6시10분, 민주당의 광주지역 대통령후보 경선이 열린 염주체육관. 노무현 후보가 지지자와 꽃다발에 둘러싸여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다른 4명의 후보는 조용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물론 이인제 후보도 끼여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허탈감과 초조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취재진이 소감을 묻자 잠시 멈칫하던 그는 아무 말 없이 가던 길을 재촉했다. 뒤따르던 지지자들이 ‘이인제’를 연호했지만 열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후보도 “수고했다”는 짤막한 말만 던지고 대전행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운동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가 떠난 얼마 후 이후보 캠프의 전용학 대변인이 행사장에 마련된 기자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향후 중부 이북 경선에서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워… 이인제 후보의… 아이덴티티를 대의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겠다.”
패배의 충격이 너무 컸을까. 울먹임으로 전대변인의 말은 중간중간 끊어졌다.
이인제 대세론의 출발지인 광주가 노무현을 선택한 것은 이후보측으로서는 커다란 충격이다. 이후보측의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K씨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최악의 결과”라며 ‘광주’가 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호남 표심(票心)의 상징인 광주에서의 패배가 주는 메시지와 상징성이 더 큰 문제”라며 분위기 확산을 우려했다. 이후보는 다음날 안방이나 다름없는 대전에서 67.5%라는 몰표를 얻어 체면을 유지했지만 내부를 감싸는 본질적인 위기감은 그대로다.
17일 현재 민주당 경선 판세는 이후보의 종합 1위. 그렇지만 그의 대세론은 이미 탄력을 잃었고 1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 틈을 ‘노무현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돌풍’이라는 언론의 표현처럼 노후보는 울산과 광주에서 연속 1위를 차지, 노무현 바람의 북상 채비를 끝냈다.
광주 경선이 시작되기 전 노무현 후보의 압승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염주체육관 기자실을 찾은 한화갑 후보측의 흥보책임자 L씨는 “한후보 40%, 이후보와 노후보가 각각 20~25% 정도”라고 예상 득표율을 전망했다. 일부 취재진은 한화갑 후보의 1위를 기정사실로 ‘초고’를 작성해 놓고 이·노 후보의 2, 3위권 싸움에 신경을 곤두세웠을 정도였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는 지지 바람을 탔고 광주에서 초반 돌풍을 일궈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현장을 참관한 민주당 사무처 한 인사는 “광주의 선택은 지역주의에서 탈피, 본선 경쟁력을 선택한 정치적 판단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한다. 달리 대안이 없는 광주 표심이 차선책으로 본선 경쟁력이 있는 노후보에게 몰표를 줬다는 해석이다.
지난 2년 동안 유권자들에게 각인되었던 이인제 대세론이 “이인제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는 ‘필패론’으로 허무하게 무너진 것도 음미해 볼 만하다. 더구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박근혜 의원의 탈당 등으로 흔들리면서 ‘양이’(兩李) 대세론이 동반 몰락하는 악재로 작용했다.
또한 ‘빌라 게이트’와 ‘하와이 원정 출산’ 의혹이 터지면서 이총재의 귀족정치와 텁텁한 노후보의 서민적 이미지가 극적으로 대비, 부각된 측면도 크다. ‘월세 900만원’이라는 사실이 던져준 충격은 중산층과 서민층 사이에 기득권층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변화 욕구로 자리잡았고, 자신들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면서 동시에 더욱 강한 개혁을 추구할 인물로 노후보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
김근태 의원의 온몸을 던진 살신성인도 조직과 바람의 싸움에서 바람이 조직을 압도하는 형국으로 반전하게 만들었다. 노후보는 그 바람의 중심부에서 반사이득을 모두 챙기는 수확을 거뒀다.
한화갑 후보의 조연 역할(?)도 두드러진다. 제주에서 1위를 해 이인제 후보의 초반 기세를 꺾어놓은 그는 가는 곳마다 이후보를 공격, 보이지 않게 대세론을 허물었다. 특히 광주 경선에서 이후보의 대세론을 허문 그의 재주는 탁월했다. 그러나 한후보는 득표에 실패했다. 한후보의 이탈표는 고스란히 노후보에게 넘어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선 초반 이후보에게 잇따라 닥친 악재도 노후보로서는 행운이었다. 이후보와 함께 광주 경선장을 찾은 이희규 의원은 “지난 한 주 3재(三災)가 밀어닥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말한 ‘3재’란 울산 경선에서 이후보측 운동원의 향응제공 및 금품살포, 이후보의 울산지역 선거대책본부장인 김운환 전 의원의 전격 구속, 노후보가 이회창 총재와 1대1 대결시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온 일부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발표 등이다. 특히 노후보가 이회창 총재를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막판 표심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인 것으로 민주당 인사들은 설명하고 있다.
15일 광주·전남지역 교수 및 지식인 266명의 노무현 지지 성명발표는 개혁연대에 대한 기대감과 가능성을 열면서 막판 표심을 노후보로 쏠리게 한 일등공신이다. 이 대열에 386세대가 적극 참여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최근 천정배 의원에 이어 정대철 김원기 임채정 이해찬 신기남 임종석 의원 등 민주당 내 개혁세력은 속속 노후보 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노후보는 “조만간 가시적 움직임이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20쪽 기사 참조).
이들 개혁세력이 결집하면 노후보의 대안론은 한층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단은 이르다. 따지고 보면 노후보의 대안론은 전체 경선단의 ‘5.9%’에서만 확인된 것이다. 대전 경선을 거치면서 이인제 대세론이 완전히 꺾인 것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됐다.
이인제 대세론이 일정 부분 훼손된 것은 사실이지만 와해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언제든 대세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노후보가 갖고 있는 한계와 약점이 아직 공개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돌풍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22쪽 기사 참조). 미흡한 안정감, 다소 급진적인 이미지 등에 대해 경선단이 어떻게 평가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인제 후보측은 앞으로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해 대안론을 잠재울 계획이다.
문제는 앞으로 남은 12개 지역의 표심이다. 충남(23일)과 강원(24일) 지역은 노후보에게 난코스로 분류된다. 반대로 이후보는 허물어진 대세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코스를 벗어나면 처지가 바뀐다. 노후보도 ‘순풍에 돛’을 달게 되는 경남(30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그 뒤를 이은 전북(31일)과 내달 초 대구(4월5일), 경북(4월7일) 경선도 노후보로서는 기대해 볼 만하다. 대구와 경북이 지역구도를 허문 ‘광주’에 화답할 가능성도 있다.
이인제 대세론과 노무현 대안론은 31일 전북 경선을 계기로 중대 기로에 설 것 같다. 이날 호남 민심의 향배에 따라 대세론과 대안론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북 표심이 노후보를 선택하면 민주당 경선은 ‘영호남 화합 후보’로 대세가 기울 가능성이 많다. 반대로 이후보를 선택하면 호남·충청 연합을 바탕으로 한 이인제 대세론이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다. 이후보의 대세론과 대안론을 내세운 노후보의 돌풍,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관전자들은 손에 땀을 쥐고 주말을 기다린다.
그의 얼굴에는 허탈감과 초조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취재진이 소감을 묻자 잠시 멈칫하던 그는 아무 말 없이 가던 길을 재촉했다. 뒤따르던 지지자들이 ‘이인제’를 연호했지만 열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후보도 “수고했다”는 짤막한 말만 던지고 대전행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운동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가 떠난 얼마 후 이후보 캠프의 전용학 대변인이 행사장에 마련된 기자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향후 중부 이북 경선에서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워… 이인제 후보의… 아이덴티티를 대의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겠다.”
패배의 충격이 너무 컸을까. 울먹임으로 전대변인의 말은 중간중간 끊어졌다.
이인제 대세론의 출발지인 광주가 노무현을 선택한 것은 이후보측으로서는 커다란 충격이다. 이후보측의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K씨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최악의 결과”라며 ‘광주’가 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호남 표심(票心)의 상징인 광주에서의 패배가 주는 메시지와 상징성이 더 큰 문제”라며 분위기 확산을 우려했다. 이후보는 다음날 안방이나 다름없는 대전에서 67.5%라는 몰표를 얻어 체면을 유지했지만 내부를 감싸는 본질적인 위기감은 그대로다.
17일 현재 민주당 경선 판세는 이후보의 종합 1위. 그렇지만 그의 대세론은 이미 탄력을 잃었고 1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 틈을 ‘노무현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돌풍’이라는 언론의 표현처럼 노후보는 울산과 광주에서 연속 1위를 차지, 노무현 바람의 북상 채비를 끝냈다.
광주 경선이 시작되기 전 노무현 후보의 압승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염주체육관 기자실을 찾은 한화갑 후보측의 흥보책임자 L씨는 “한후보 40%, 이후보와 노후보가 각각 20~25% 정도”라고 예상 득표율을 전망했다. 일부 취재진은 한화갑 후보의 1위를 기정사실로 ‘초고’를 작성해 놓고 이·노 후보의 2, 3위권 싸움에 신경을 곤두세웠을 정도였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는 지지 바람을 탔고 광주에서 초반 돌풍을 일궈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현장을 참관한 민주당 사무처 한 인사는 “광주의 선택은 지역주의에서 탈피, 본선 경쟁력을 선택한 정치적 판단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한다. 달리 대안이 없는 광주 표심이 차선책으로 본선 경쟁력이 있는 노후보에게 몰표를 줬다는 해석이다.
지난 2년 동안 유권자들에게 각인되었던 이인제 대세론이 “이인제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는 ‘필패론’으로 허무하게 무너진 것도 음미해 볼 만하다. 더구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박근혜 의원의 탈당 등으로 흔들리면서 ‘양이’(兩李) 대세론이 동반 몰락하는 악재로 작용했다.
또한 ‘빌라 게이트’와 ‘하와이 원정 출산’ 의혹이 터지면서 이총재의 귀족정치와 텁텁한 노후보의 서민적 이미지가 극적으로 대비, 부각된 측면도 크다. ‘월세 900만원’이라는 사실이 던져준 충격은 중산층과 서민층 사이에 기득권층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변화 욕구로 자리잡았고, 자신들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면서 동시에 더욱 강한 개혁을 추구할 인물로 노후보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
김근태 의원의 온몸을 던진 살신성인도 조직과 바람의 싸움에서 바람이 조직을 압도하는 형국으로 반전하게 만들었다. 노후보는 그 바람의 중심부에서 반사이득을 모두 챙기는 수확을 거뒀다.
한화갑 후보의 조연 역할(?)도 두드러진다. 제주에서 1위를 해 이인제 후보의 초반 기세를 꺾어놓은 그는 가는 곳마다 이후보를 공격, 보이지 않게 대세론을 허물었다. 특히 광주 경선에서 이후보의 대세론을 허문 그의 재주는 탁월했다. 그러나 한후보는 득표에 실패했다. 한후보의 이탈표는 고스란히 노후보에게 넘어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선 초반 이후보에게 잇따라 닥친 악재도 노후보로서는 행운이었다. 이후보와 함께 광주 경선장을 찾은 이희규 의원은 “지난 한 주 3재(三災)가 밀어닥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말한 ‘3재’란 울산 경선에서 이후보측 운동원의 향응제공 및 금품살포, 이후보의 울산지역 선거대책본부장인 김운환 전 의원의 전격 구속, 노후보가 이회창 총재와 1대1 대결시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온 일부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발표 등이다. 특히 노후보가 이회창 총재를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막판 표심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인 것으로 민주당 인사들은 설명하고 있다.
15일 광주·전남지역 교수 및 지식인 266명의 노무현 지지 성명발표는 개혁연대에 대한 기대감과 가능성을 열면서 막판 표심을 노후보로 쏠리게 한 일등공신이다. 이 대열에 386세대가 적극 참여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최근 천정배 의원에 이어 정대철 김원기 임채정 이해찬 신기남 임종석 의원 등 민주당 내 개혁세력은 속속 노후보 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노후보는 “조만간 가시적 움직임이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20쪽 기사 참조).
이들 개혁세력이 결집하면 노후보의 대안론은 한층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단은 이르다. 따지고 보면 노후보의 대안론은 전체 경선단의 ‘5.9%’에서만 확인된 것이다. 대전 경선을 거치면서 이인제 대세론이 완전히 꺾인 것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됐다.
이인제 대세론이 일정 부분 훼손된 것은 사실이지만 와해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언제든 대세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노후보가 갖고 있는 한계와 약점이 아직 공개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돌풍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22쪽 기사 참조). 미흡한 안정감, 다소 급진적인 이미지 등에 대해 경선단이 어떻게 평가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인제 후보측은 앞으로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해 대안론을 잠재울 계획이다.
문제는 앞으로 남은 12개 지역의 표심이다. 충남(23일)과 강원(24일) 지역은 노후보에게 난코스로 분류된다. 반대로 이후보는 허물어진 대세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코스를 벗어나면 처지가 바뀐다. 노후보도 ‘순풍에 돛’을 달게 되는 경남(30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그 뒤를 이은 전북(31일)과 내달 초 대구(4월5일), 경북(4월7일) 경선도 노후보로서는 기대해 볼 만하다. 대구와 경북이 지역구도를 허문 ‘광주’에 화답할 가능성도 있다.
이인제 대세론과 노무현 대안론은 31일 전북 경선을 계기로 중대 기로에 설 것 같다. 이날 호남 민심의 향배에 따라 대세론과 대안론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북 표심이 노후보를 선택하면 민주당 경선은 ‘영호남 화합 후보’로 대세가 기울 가능성이 많다. 반대로 이후보를 선택하면 호남·충청 연합을 바탕으로 한 이인제 대세론이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다. 이후보의 대세론과 대안론을 내세운 노후보의 돌풍,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관전자들은 손에 땀을 쥐고 주말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