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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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나랏돈’ 쓴 어설픈 실험무대

  • 입력2005-08-03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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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먼 나랏돈’ 쓴 어설픈 실험무대
    올해는 정부가 제정한 ‘2000, 새로운 예술의 해’이다. 전체적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장르간의 결합을 내세우고 있고, 연극부문에서는 ‘한국적인 연극을 창조하는 무대, 실험무대의 실현을 적극 지원하고 후원’하는 행사다.

    7월9일 막을 내린 ‘그 여인 숙’(김낙형 작·연출, 혜화동 연극실험실)은 연극부문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7개 작품 가운데 첫번째 공연으로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제출된 계획서를 보면 작품을 만드는 총 예산은 2260만원이다. 차액은 관객 수입금. 예산서에는 무대 설치, 제작, 조명, 분장, 소품, 음악비 등으로 몇 백만원씩 분배되어 있었지만 침대 하나, 방문 두 개, 옷걸이 하나, 전화기 하나, 술병 두 개, 쌀봉지 하나, 밥상 하나가 놓여 있는 무대는 남루하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출된 창작 개요와 실제 공연의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인물 설정도 다르고, 장소와 전개도 다르다. 공연은 배우들의 서투른 연기, PC통신으로 만난 여고생과 나이든 남자와의 성관계를 담은 알맹이 없는 내용이 전부다. 희곡의 구성과 연출은 전혀 새롭지 않다. 적어도 새로운 예술의 해 선정작품이라면 누가 보아도 수긍할 만한 부분을 지녀야 한다. 극단이 내건 ‘두 소녀의 상처에 대한 사회의 치유’와 ‘젊은이들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혼돈스러워하는 사회적 모순’ 등은 모두 허튼소리가 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정부 지원 사업의 이름인 ‘새로운 예술’에 걸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낡고 비루하다.

    문제는 지원금 제도다. 지원을 하는 쪽이나 지원을 받는 쪽이나 공통적으로 사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 문화의 자산이고 유산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얼마를 지원할 것인지를 논하는 동안, 돈이 공연예술계의 젊은 작가에서부터 나이든 원로에 이르기까지 창작활동을 지배하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지원금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다름 아니다. 이 점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지원금의 방향을 수정하게 한다. 작가와 작품, 극단의 선별에서 더 낮은 구조를 위한 지원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일회적인 공연의 특성을 염두에 둔다면, 역량이 모자라는 작가들, 작품이 되지 못하는 것들을 들먹이기 전에 극장설립, 사라진 극장의 회복과 같은 공공 사업 부분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돈이 지금처럼 쉽게, 이런저런 절차에 의해서 물 뿌려지듯 나뉜다면 상상력과 같은 작가의 특질이, 줄서고 관계를 잘 맺는 것으로 치환되는 모순들을 낳게 될 것이다.



    작금의 지원형태는 일회성 소모에 치중되어 그 위험이 크다. 마치 2000년이 시작될 때 벌어진 ‘밀레니엄 축제’처럼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지원에 불과하다. 운좋게 지원금을 받은 작가는 품위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럴수록 작가의 존재와 작품의 수준은 더 추락하게 되는 것 아닌가. 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이 버젓이 공연된다면 그것은 연극의 미적 가치와 판단을 송두리째 무화시키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한국연극은 연극의 사회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끼리끼리 모여 사는 폐쇄회로 속에 갇히고 말 것이다. 작가의 고독, 영원한 고전을 위한 문예지원제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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