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최고의 발레 강국으로 군림했던 러시아가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와 함께 영광의 절정에서 한 계단 내려선 듯 다소 불편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을 때, 맨 먼저 스쳐간 생각은 잘만 하면 앞으로 한국이 세계 최고의 발레 국가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서양인보다 뒤지는 체격조건은 물론 비체계적인 교육, 공연환경의 열악함, 문화예술의 전반적 후진성을 생각할 때 유럽을 발상지로 하는 발레에서 우리가 1등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러시아라고 처음부터 발레 대국이었던가.
대략 250년 전 프랑스와 이탈리아 발레 교사들을 궁정으로 초빙하면서 시작된 러시아 발레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그 찬란한 빛을 서방에 흩뿌린 후 오늘날까지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미국의 한 평론가가 거의 탄식하듯 뱉은 “적어도 우리 생전에 러시아 발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든가, “클래식 발레에 관한 한 키로프를 따라갈 단체는 없다”는 고백은 러시아 발레가 얼마나 위대한 모습으로 춤의 세기를 주도해 왔는가를 단적으로 입증하는 예다.
하지만 러시아 발레의 영광도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클래식에 관한 한 여전히 서방보다는 우위에 있지만 이미 최전성기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발레의 쇠락을 은근히 기대하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질투가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 전망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예능교육은 지나치게 자유롭기 때문이다. 때로 불필요하게 상대의 입장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엄격’과 ‘혹독’으로 상징되는 러시아식 교육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단순한 이분법으로 치부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무대활동의 뿌리가 되는 예술교육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발레는 러시아식과 서구식의 장점을 가려 취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체제를 갖추고 있다. 엄격한 교육을 견뎌내야 한다는 동양인 특유의 의식에 구미식의 자유로운 감수성과 상상력을 더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 발레는 기량 측면에서만 본다면 오랫동안 접할 길 없었던 러시아식 발레교육이 도입된 지 불과 10년 만에 엄청나게 발전했고, 그 결과는 국내 무대의 놀라운 질적 향상과 국제대회에서의 두각을 통해 자주 확인되고 있다.
우리가 러시아 발레를 처음 보면서 ‘러시아’를 넘어 ‘발레’에 대한 관심까지 고조된 것은 서울올림픽 때였고 “국립발레단도 이렇게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신문기사가 나온 것은 91년 ‘돈키호테’ 공연 때였다. 러시아 트레이너의 열성적인 지도로 막을 올린 이 공연을 보고 관객과 평론가들은 물론 국립발레단 스스로도 놀라워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세계 발레 교과서’로 불리는 러시아 바가노바 학교의 교육법이 직접 소개되면서 우리 발레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몇 년이 지나자 국립발레단은 국립극장 산하 단체 가운데 가장 입장 수입을 많이 올리는 단체가 됐고, 일부 주역들에게는 팬클럽까지 생겼다. 진작부터 러시아식을 선호했던 유니버설발레단(UBC)도 이를 더욱 보완해갔다.
이제 국립발레단과 UBC, 그리고 현대적 창작을 위주로 하는 서울발레시어터(SBT)는 고정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 발레의 도입에 힘입은 급격한 기량 향상만이 작용한 것은 아니다. 발레라는 예술이 심어줄 수 있는 독특한 환상과 동경이 큰 구실을 했는데 특히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주역급인 강수진의 소식과 그의 국내 무대 출연은 조금씩 일기 시작한 발레 붐을 더욱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강수진은 탁월한 실력과 성실한 태도, 세련된 용모와 매너로 스타가 되기에 충분했고 그런 그의 모습은 강수진 개인에 대한 관심을 발레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도록 만들었다.
높아진 한국 발레 무용수들의 기량은 여러 국제대회에서의 수상으로 입증되어 98년 파리 콩쿠르에서 국립발레단 소속 김지영과 김용걸이 2인무 부문에서 우승, 이른바 국제 발레대회 빅 5(바르나 모스크바 로잔 잭슨 파리)에서 한국인들이 한 차례씩 모두 입상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유명 국제대회 심사위원으로 한국인이 초빙받는 일도 최근 생겨나기 시작했다.
발레는 일단 무용수, 특히 주역 무용수의 기량이 좋으면 관객이 몰린다. 덕분에 국립발레단의 무대장치가 예산 부족으로 초라하거나 오케스트라 반주가 불만스러워도 주역들이 자리를 지키는 한 당분간은 발레 붐이 지속될 전망이다. UBC는 군무가 탄탄하고 무대미술이 수준 높아 인기 유지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SBT는 클래식 기초가 좀 약하고 현대적 창작에 필요한 다양한 춤 훈련이 더욱 요구되지만 젊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성향과 대중을 염두에 둔 듯한 취향을 나름대로 강점으로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도약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한국 발레에는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우선 오케스트라 문제는 최근 반주전문악단이 생겨난 만큼 당분간 지켜봐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인들이 발레 반주를 교향악 연주보다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는 풍토부터 달라져야 한다.
둘째 의상과 무대미술, 조명 등 춤과 어울려 작품 전체를 살려내는 장치들인데 이 부분에서 한국 발레는 심각한 취약점을 안고 있다. 주역과 솔리스트, 군무의 의상 담당자가 따로 있는 키로프 발레의 예를 따르기는 어렵겠지만 예산을 확보하고 인력을 양성하지 않으면 종합예술로서의 발전에는 한계가 오게 된다. UBC는 외국 무대장치를 빌려오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체 디자인으로 충족시켜야 한다. 국립발레단의 경우 지금같이 형편없는 제작예산을 가지고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것은 창작력의 빈곤이다. 전반적으로 우리 발레는 한국무용이나 현대무용에 비해 창작력이 현저히 뒤진다. 발레인들은 클래식만 제대로 하기에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점을 창작 부재의 원인으로 들고 있지만 훌륭한 무용수들을 가지고도 제대로 된 창작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고 서글픈 일이다. 게다가 한국의 독특한 색채와 정서를 보여줄 수 있는 이른바 ‘한국적 발레’의 전망은 더욱 답답하다. 현재까지는 UBC의 ‘심청’을 내세울 수 있는 정도인데 국제무대는 물론이고 곧 다가올 남북 문화교류, 그리고 한일 문화교류의 본격화에 대비해서라도 ‘한국적 발레’를 준비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생겨나 프랑스에서 꽃핀 뒤 러시아에서 절정을 이룬 발레는 이제 한-중-일 3국으로 스텝을 옮겨오고 있다. 아니 끌어와야 한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리가 많이 늦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 고유의 분야에서 1등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서양 것’에서 ‘세계 보편’으로 격상돼버린 발레에서 1등을 한다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서양인보다 뒤지는 체격조건은 물론 비체계적인 교육, 공연환경의 열악함, 문화예술의 전반적 후진성을 생각할 때 유럽을 발상지로 하는 발레에서 우리가 1등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러시아라고 처음부터 발레 대국이었던가.
대략 250년 전 프랑스와 이탈리아 발레 교사들을 궁정으로 초빙하면서 시작된 러시아 발레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그 찬란한 빛을 서방에 흩뿌린 후 오늘날까지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미국의 한 평론가가 거의 탄식하듯 뱉은 “적어도 우리 생전에 러시아 발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든가, “클래식 발레에 관한 한 키로프를 따라갈 단체는 없다”는 고백은 러시아 발레가 얼마나 위대한 모습으로 춤의 세기를 주도해 왔는가를 단적으로 입증하는 예다.
하지만 러시아 발레의 영광도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클래식에 관한 한 여전히 서방보다는 우위에 있지만 이미 최전성기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발레의 쇠락을 은근히 기대하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질투가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 전망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예능교육은 지나치게 자유롭기 때문이다. 때로 불필요하게 상대의 입장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엄격’과 ‘혹독’으로 상징되는 러시아식 교육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단순한 이분법으로 치부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무대활동의 뿌리가 되는 예술교육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발레는 러시아식과 서구식의 장점을 가려 취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체제를 갖추고 있다. 엄격한 교육을 견뎌내야 한다는 동양인 특유의 의식에 구미식의 자유로운 감수성과 상상력을 더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 발레는 기량 측면에서만 본다면 오랫동안 접할 길 없었던 러시아식 발레교육이 도입된 지 불과 10년 만에 엄청나게 발전했고, 그 결과는 국내 무대의 놀라운 질적 향상과 국제대회에서의 두각을 통해 자주 확인되고 있다.
우리가 러시아 발레를 처음 보면서 ‘러시아’를 넘어 ‘발레’에 대한 관심까지 고조된 것은 서울올림픽 때였고 “국립발레단도 이렇게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신문기사가 나온 것은 91년 ‘돈키호테’ 공연 때였다. 러시아 트레이너의 열성적인 지도로 막을 올린 이 공연을 보고 관객과 평론가들은 물론 국립발레단 스스로도 놀라워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세계 발레 교과서’로 불리는 러시아 바가노바 학교의 교육법이 직접 소개되면서 우리 발레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몇 년이 지나자 국립발레단은 국립극장 산하 단체 가운데 가장 입장 수입을 많이 올리는 단체가 됐고, 일부 주역들에게는 팬클럽까지 생겼다. 진작부터 러시아식을 선호했던 유니버설발레단(UBC)도 이를 더욱 보완해갔다.
이제 국립발레단과 UBC, 그리고 현대적 창작을 위주로 하는 서울발레시어터(SBT)는 고정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 발레의 도입에 힘입은 급격한 기량 향상만이 작용한 것은 아니다. 발레라는 예술이 심어줄 수 있는 독특한 환상과 동경이 큰 구실을 했는데 특히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주역급인 강수진의 소식과 그의 국내 무대 출연은 조금씩 일기 시작한 발레 붐을 더욱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강수진은 탁월한 실력과 성실한 태도, 세련된 용모와 매너로 스타가 되기에 충분했고 그런 그의 모습은 강수진 개인에 대한 관심을 발레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도록 만들었다.
높아진 한국 발레 무용수들의 기량은 여러 국제대회에서의 수상으로 입증되어 98년 파리 콩쿠르에서 국립발레단 소속 김지영과 김용걸이 2인무 부문에서 우승, 이른바 국제 발레대회 빅 5(바르나 모스크바 로잔 잭슨 파리)에서 한국인들이 한 차례씩 모두 입상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유명 국제대회 심사위원으로 한국인이 초빙받는 일도 최근 생겨나기 시작했다.
발레는 일단 무용수, 특히 주역 무용수의 기량이 좋으면 관객이 몰린다. 덕분에 국립발레단의 무대장치가 예산 부족으로 초라하거나 오케스트라 반주가 불만스러워도 주역들이 자리를 지키는 한 당분간은 발레 붐이 지속될 전망이다. UBC는 군무가 탄탄하고 무대미술이 수준 높아 인기 유지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SBT는 클래식 기초가 좀 약하고 현대적 창작에 필요한 다양한 춤 훈련이 더욱 요구되지만 젊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성향과 대중을 염두에 둔 듯한 취향을 나름대로 강점으로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도약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한국 발레에는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우선 오케스트라 문제는 최근 반주전문악단이 생겨난 만큼 당분간 지켜봐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인들이 발레 반주를 교향악 연주보다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는 풍토부터 달라져야 한다.
둘째 의상과 무대미술, 조명 등 춤과 어울려 작품 전체를 살려내는 장치들인데 이 부분에서 한국 발레는 심각한 취약점을 안고 있다. 주역과 솔리스트, 군무의 의상 담당자가 따로 있는 키로프 발레의 예를 따르기는 어렵겠지만 예산을 확보하고 인력을 양성하지 않으면 종합예술로서의 발전에는 한계가 오게 된다. UBC는 외국 무대장치를 빌려오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체 디자인으로 충족시켜야 한다. 국립발레단의 경우 지금같이 형편없는 제작예산을 가지고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것은 창작력의 빈곤이다. 전반적으로 우리 발레는 한국무용이나 현대무용에 비해 창작력이 현저히 뒤진다. 발레인들은 클래식만 제대로 하기에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점을 창작 부재의 원인으로 들고 있지만 훌륭한 무용수들을 가지고도 제대로 된 창작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고 서글픈 일이다. 게다가 한국의 독특한 색채와 정서를 보여줄 수 있는 이른바 ‘한국적 발레’의 전망은 더욱 답답하다. 현재까지는 UBC의 ‘심청’을 내세울 수 있는 정도인데 국제무대는 물론이고 곧 다가올 남북 문화교류, 그리고 한일 문화교류의 본격화에 대비해서라도 ‘한국적 발레’를 준비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생겨나 프랑스에서 꽃핀 뒤 러시아에서 절정을 이룬 발레는 이제 한-중-일 3국으로 스텝을 옮겨오고 있다. 아니 끌어와야 한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리가 많이 늦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 고유의 분야에서 1등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서양 것’에서 ‘세계 보편’으로 격상돼버린 발레에서 1등을 한다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