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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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재창출 ‘腹心’ 들켰나

정계 개편 등 가공할 위력 지닌 ‘휴화산’…합종연횡 통한 ‘대권 빅딜’도 가능

  • 입력2005-08-03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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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 재창출 ‘腹心’ 들켰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친북단체’ 발언과 부정선거 공방 등으로 국회에서 이틀 내리 파행을 벌이던 7월14일, 자민련 의원들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쓸쓸한’ 의원총회를 가졌다. 국회 자민련 총재실에서 열린 의원총회의 주제는 “내각제는 어디 갔나”라는 것.

    7월11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도입을 동시에 꺼내들어 개헌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데도, 정작 내각제 개헌론은 완전히 실종된 듯한 분위기가 자민련 의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이날 자민련 의원들은 “통일을 앞두고 가장 적합한 통치구조는 내각제”이며 “기왕에 개헌을 하려면 내각제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다시 모으고 흩어졌다. 특히 김학원 대변인은 “2차 세계대전 후 분단국가인 한국 독일 예멘 베트남 4개국 중 평화적 통일을 성공시킨 나라는 내각제의 독일뿐이고, 대통령제인 예멘은 무력 통일이 됐고, 대통령제나 마찬가지인 베트남도 예멘과 같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민련의 이같은 ‘내각제 군불때기’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주류는 이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 냉혹한 현실이다. 자민련을 제외한 정치권에서는 이미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과 정-부통령제 도입론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의원들을 만나면 열의 아홉은 “이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버티는 한 내각제 개헌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공통적이다.

    따라서 이번 국회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이 돌출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됐던 정치권 일정의 한 가닥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 동교동계의 한 핵심의원은 이미 두어 달 전부터 “우리든 저쪽(한나라당)이든 조만간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을 꺼내게 돼 있다”고 예고했다. 차기 대통령 선거(16대)는 2002년 12월. 앞으로도 2년 4개월 정도 시간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벌써부터 개헌론이 제기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그 첫째 이유는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가 많은 취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 2년만 지나면 ‘후계 구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대통령의 행정 장악력이 떨어지는 등 책임 정치를 구현하기 힘든 분위기가 돼버린다. 관료들 또한 “몇 년만 버티면 된다”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처세로 각종 현안이나 개혁작업에 대해 방관하기 일쑤다. 최근 의료대란이나 금융권 파업 사태의 예에서도 보듯 ‘무기력한 행정부’의 난맥상이 그대로 표출되고 만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지금 개헌론이 나오는 것은 여야 모두 차기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당 내부 사정이 여의치 못한 까닭도 크다. 민주당에서는 김대중 대통령만큼 뚜렷한 카리스마를 지닌 차기 후보가 떠오르지 않고 있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독자적인 리더십 창출을 보여주지 못하고 여전히 ‘대안 부재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내부 권력구조의 유동성이 매우 높다.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완전히 기선을 제압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개헌, 특히 정-부통령제 도입을 검토하게 만들고 있는 것.



    따라서 현재 개헌론의 요체는 대통령 4년 중임제보다 정-부통령제 도입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특히 정-부통령제 도입은 차기 대선에서 다양한 조합의 후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기 구도를 예측하기 힘든 ‘미로 게임’으로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차기 주자들간에 합종연횡이 활발해지면서 그야말로 ‘대권 빅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 이는 정-부통령제 도입이 기본적으로 권력 배분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제에서의 부통령은 현행 국무총리보다 더 권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지만, 최근 미국에서의 부통령은 그렇지만도 않다. 역사상 가장 막강한 부통령이라 할 수 있는 클린턴 행정부의 앨 고어 부통령은 대통령이 등장할 때에는 거의 빼놓지 않고 바로 옆에 있을 정도로 파격적인 예우를 받고 있으며, 지금은 누구도 정부의 제2인자로서 고어 부통령의 지위를 의심하지 않는다(상자기사 참조). 민주당 정범구 의원은 “부통령에게 대통령 권한의 일부를 나눠주고 그 책임까지 묻는 적극적인 부통령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민주당 이인제 고문이 7월14일 대학 교수 등 각계 인사들의 연구 모임인 ‘동아시아 연구회’ 초청 강연에서 “현 헌법은 6·29선언 이후 정파간 타협의 산물로, 많은 문제가 있다”며 4년 중임제 개헌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정-부통령제를 지지한다”고 덧붙인 것도 후보간 합종연횡이 결코 자신에 불리하지 않을 것이란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호남권과 충청권은 그런대로 지지 기반이 갖추어져 있다고 보고, 수도권이나 영남권에서의 취약점을 보완할 부통령 후보로 ‘러닝 메이트’를 구성한다면 이고문이 대통령 후보로 올라설 확실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본 것.

    물론 이런 구도는 한화갑 김근태 의원이나 노무현 전 의원의 입장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특정인이 지역 감정에 의해 특정 지역에서 배척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상 정-부통령제야말로 지역 구도의 완충장치로서 훌륭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총재는 어느 지역을 확실하게 대표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지역색을 감안해 호남권은 아예 포기하고 영남권을 보강하는 후보를 찾을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호남권 차차기 주자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호남권 보강’에 나설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강재섭 의원이, 후자의 경우라면 김덕룡 의원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이런 결단은 복잡한 계산이 끝나고 난 다음에나 이루어질 일이다.

    정-부통령제 도입이 내포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의미는 정계재편이 촉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7월11일 국회에서 개헌론이 나오자 청와대의 고위관계자 역시 “개헌 논의가 활발해지면 정계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7월14일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부인회의 강연을 통해 “앞으로 빠른 속도로 남북의 여러 이벤트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며 “어쩌면 헌법이 ‘통일헌법’으로 바뀌고 권력구조가 변화하는 등 예측불허의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 또한 정치권 지각변동의 가능성을 예고한 것.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민주당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와 무소속 정몽준 의원의 영입론이 끊이지 않는 것도 한 예다.

    따라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황급하게 개헌론 불길을 차단하도록 지시한 것은 개헌론이 자칫 방향을 잘못 잡으면 자신의 위상마저 흔들릴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당내에는 차기든 차차기든 ‘다음’을 노리는 야심가들이 많다(14쪽 기사 참조). 이총재 진영으로서는 중임제 개헌론의 ‘이득’에도 불구하고 자꾸 많은 변수가 생겨 현재의 위치가 흔들리는 것을 원할 이유가 없다.

    이와 달리 청와대가 개헌론의 진화에 나선 것은 정치권의 동요로 각종 개혁 작업에 차질을 빚고, 레임덕 현상이 빨리 찾아올 것을 염려한 까닭이다. 또한 내각제 개헌론이 아닌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이 DJP 공조에 지장을 줄 것을 염려한 측면도 있다.

    어쨌든 여야 지도부의 진화에 따라 대통령 중임제 개헌론 및 정-부통령제 도입론은 일단 수면 아래로 다시 잠복했다. 2002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 때문에도 굳이 지금 개헌론이 증폭될 필요는 없다. “치고 빠지는 단계”라는 민주당 한 핵심의원의 말처럼 현재의 개헌론 공방은 일단 ‘오픈 게임’을 치른 셈이다. 그러나 차기를 노리는 사람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개헌론은 언제든지 다시 불붙을 수 있는 폭발성을 지닌 사안이다.

    더구나 여권에서는 개헌론을 정권 재창출을 위한 ‘복심’(腹心)으로 보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정-부통령제 도입이 여야를 넘나드는 후보간 합종연횡을 이루어 현재의 민주-한나라당 고착구도를 무너뜨림으로써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예를 들어 한나라당 이총재가 부통령 후보로 당내 차차기 주자 가운데 어느 한 명을 선택할 경우, 필연적인 이탈 세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중임제 개헌 후 대통령이 실정(失政)으로 인해 임기 4년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중임에 성공해 8년으로 집권 기간이 연장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최대 16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두 명 다 4년으로 끝내는 경우라도 8년이다.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 0순위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 60대에 접어든 당내 중진 인사들의 나이를 고려할 때 짧게 8년, 길게는 16년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개헌론의 부상과 동시에 정계대재편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여권 핵심 인사들은 “개헌은 국민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된 다음 정치권에서 제기돼야지, 정치권이 이를 주도하는 형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자칫 개헌을 통한 재집권 전략이라는 비판론에 직면할까 우려하는 까닭이다. 물론 개헌을 할 경우 김대통령은 중임에 해당되지 않지만, 야당이 “장기집권 음모”라고 정치 공세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한다. 현단계의 개헌론은 ‘숙성기’를 거치기 위해 지하 보관소에 넣어둔 와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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