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등장 이후 러시아가 급변하고 있다.
첨단기술과 수십조 달러로 평가되는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보리스 옐친 대통령 말기의 러시아는 무능과 부패로 인해 무정부 상태를 연상케 했다. 그런 러시아가 젊은 푸틴의 등장으로 제모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푸틴은 지난 5월7일 대통령에 정식 취임한 뒤부터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부 건설을 기치로 각종 권력 수직화 법안을 마련하는가 하면,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각종 경제입법들을 정부에 재촉하고 있다.
그동안 크렘린과의 유착관계를 배경으로 정-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과두지배세력, 이른바 올리가르흐들은 푸틴 정권의 시퍼런 사정 칼날 앞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리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속수무책이다. 공산주의 시절의 그것을 고스란히 답습해온 각종 사회보장제도도 이제는 ‘정부의 능력이 허용하는 정도로 축소될 것’이란 혁명적인 방침이 발표됐다.
미국과 서방 일변도였던 외교정책에서의 변화도 획기적이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달 말 재가한 러시아의 신(新)외교 개념은 러시아가 그동안 보여온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에서 벗어나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다극화된 세계 구축에 나설 것을 천명하고 있다.
대(對)한반도 정책에도 변화가 없을 수 없다. 러시아는 신외교 개념에서 “한반도 상황이 가장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외교정책 노력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러시아의 동등한 참여 보장과 남북한과의 균형잡힌 정책 유지에 집중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얼마 전 러시아의 한 유력지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최우선시하는 목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평화와 안정이지만 이제는 이에 더해 △분쟁 예방 과정에의 참여 방안 모색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남북한 양국과 적극적인 파트너 관계 구축 △다른 열강과 마찬가지로 남북한 군사-경제 등 각 분야 협력 문제에 러시아의 참여라는 목표가 추가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와 함께 “러시아와 북한 관계는 △실용적이며 사실주의적이고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러시아의 외교정책과 △남북한 정상회담 성사 등 무르익는 남북한 관계로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열강들의 한반도에 대한 활동 강화로 인해 최근 ‘현저한 이동’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굳이 로슈코프 차관의 지적을 빌리지 않더라도 푸틴의 범유럽 공동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제안 등 예전에 볼 수 없던 러시아 외교의 공격적인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러시아가 극구 반대하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의 배경이 되는 한반도 정책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은 7월13일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 등 이른바 G-8 외무장관 회담에 참석한 뒤 “한반도 상황에 대한 다양한 다자간 접근 방식은 이제 낡아빠진 것으로, 우리는 이제 남북한 직접 대화가 있기 전에나 가능했던 한반도 4자협상이나 6자협상을 논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바노프의 발언은 그동안 진행돼온 한반도 관련 남북한 미국 중국 간 4자 협상, 그리고 러시아가 열심히 노력해왔던 러시아와 일본의 4자 협상 참여(6자협상) 방침이 이제 필요없게 됐다는 자평임은 물론, 어찌 보면 미국을 겨냥한 조롱으로도 들린다.
달리 보면 지난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미국과 중국 등에 처져 있던 러시아에 그만큼 큰 용기와 기대(?)를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G-8에 소속된 국가 가운데 러시아만큼 북한과 가까운 나라는 없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한국과도 오는 9월 수교 10년을 맞게 된다. 따라서 러시아만큼 한국과 북한에 동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적어도 G-8에는 없으며, 남북한간 직접 대화는 러시아의 이같은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최대의 기회란 자평도 있다.
푸틴 대통령의 7월 19, 20일 북한 방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러시아 외교가는 옛소련 시절까지 통틀어 처음 있는 러시아 국가수반의 북한 방문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 한국과의 관계, 내부문제에 대한 천착 등으로 비교적 소원해졌던 북한과의 관계를 단숨에 회복시키겠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북한-일본 순방에 앞서 7월14일 “이들 3국은 매우 독자적인 국가며 우리는 이들 3국과 쌍무관계 발전은 물론 국제 무대에서의 공조를 바라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유럽국가임과 동시에 아시아 국가이며, 새처럼 두 개의 날개를 갖추게 된다면 더 잘 날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아시아는 러시아에 지극히 중요한 지역”이라는 평가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신외교 개념이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수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담고 있지 않다고 비판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러시아 외무부가 실토하고 있듯이 “무엇보다 북한의 열악한 경제사정과 현재 가치로 약 60억 달러에 이르는 북한의 대(對)러시아 부채 문제가 북-러간 경제협력의 최대 장애”다. 따라서 현재 러시아가 보여주는 대북 접근 움직임은 순수하게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강화 방침, 즉 미국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특히, 러시아가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대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최상이자 최적의 방법은, 비록 상징적인 것에 그칠지라도 군사협력이며 이는 곧바로 한국과 미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대북 협력관계 증진을 꾀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한국에 100%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것이 고민인 셈이다. 이바노프 장관은 G-8 외무장관회담 뒤 “한반도가 역내 안정을 위해 비핵지대로 남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어떤 식으로 이를 구체화할지 관심거리다.
첨단기술과 수십조 달러로 평가되는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보리스 옐친 대통령 말기의 러시아는 무능과 부패로 인해 무정부 상태를 연상케 했다. 그런 러시아가 젊은 푸틴의 등장으로 제모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푸틴은 지난 5월7일 대통령에 정식 취임한 뒤부터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부 건설을 기치로 각종 권력 수직화 법안을 마련하는가 하면,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각종 경제입법들을 정부에 재촉하고 있다.
그동안 크렘린과의 유착관계를 배경으로 정-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과두지배세력, 이른바 올리가르흐들은 푸틴 정권의 시퍼런 사정 칼날 앞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리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속수무책이다. 공산주의 시절의 그것을 고스란히 답습해온 각종 사회보장제도도 이제는 ‘정부의 능력이 허용하는 정도로 축소될 것’이란 혁명적인 방침이 발표됐다.
미국과 서방 일변도였던 외교정책에서의 변화도 획기적이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달 말 재가한 러시아의 신(新)외교 개념은 러시아가 그동안 보여온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에서 벗어나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다극화된 세계 구축에 나설 것을 천명하고 있다.
대(對)한반도 정책에도 변화가 없을 수 없다. 러시아는 신외교 개념에서 “한반도 상황이 가장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외교정책 노력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러시아의 동등한 참여 보장과 남북한과의 균형잡힌 정책 유지에 집중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얼마 전 러시아의 한 유력지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최우선시하는 목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평화와 안정이지만 이제는 이에 더해 △분쟁 예방 과정에의 참여 방안 모색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남북한 양국과 적극적인 파트너 관계 구축 △다른 열강과 마찬가지로 남북한 군사-경제 등 각 분야 협력 문제에 러시아의 참여라는 목표가 추가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와 함께 “러시아와 북한 관계는 △실용적이며 사실주의적이고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러시아의 외교정책과 △남북한 정상회담 성사 등 무르익는 남북한 관계로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열강들의 한반도에 대한 활동 강화로 인해 최근 ‘현저한 이동’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굳이 로슈코프 차관의 지적을 빌리지 않더라도 푸틴의 범유럽 공동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제안 등 예전에 볼 수 없던 러시아 외교의 공격적인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러시아가 극구 반대하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의 배경이 되는 한반도 정책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은 7월13일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 등 이른바 G-8 외무장관 회담에 참석한 뒤 “한반도 상황에 대한 다양한 다자간 접근 방식은 이제 낡아빠진 것으로, 우리는 이제 남북한 직접 대화가 있기 전에나 가능했던 한반도 4자협상이나 6자협상을 논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바노프의 발언은 그동안 진행돼온 한반도 관련 남북한 미국 중국 간 4자 협상, 그리고 러시아가 열심히 노력해왔던 러시아와 일본의 4자 협상 참여(6자협상) 방침이 이제 필요없게 됐다는 자평임은 물론, 어찌 보면 미국을 겨냥한 조롱으로도 들린다.
달리 보면 지난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미국과 중국 등에 처져 있던 러시아에 그만큼 큰 용기와 기대(?)를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G-8에 소속된 국가 가운데 러시아만큼 북한과 가까운 나라는 없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한국과도 오는 9월 수교 10년을 맞게 된다. 따라서 러시아만큼 한국과 북한에 동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적어도 G-8에는 없으며, 남북한간 직접 대화는 러시아의 이같은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최대의 기회란 자평도 있다.
푸틴 대통령의 7월 19, 20일 북한 방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러시아 외교가는 옛소련 시절까지 통틀어 처음 있는 러시아 국가수반의 북한 방문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 한국과의 관계, 내부문제에 대한 천착 등으로 비교적 소원해졌던 북한과의 관계를 단숨에 회복시키겠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북한-일본 순방에 앞서 7월14일 “이들 3국은 매우 독자적인 국가며 우리는 이들 3국과 쌍무관계 발전은 물론 국제 무대에서의 공조를 바라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유럽국가임과 동시에 아시아 국가이며, 새처럼 두 개의 날개를 갖추게 된다면 더 잘 날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아시아는 러시아에 지극히 중요한 지역”이라는 평가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신외교 개념이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수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담고 있지 않다고 비판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러시아 외무부가 실토하고 있듯이 “무엇보다 북한의 열악한 경제사정과 현재 가치로 약 60억 달러에 이르는 북한의 대(對)러시아 부채 문제가 북-러간 경제협력의 최대 장애”다. 따라서 현재 러시아가 보여주는 대북 접근 움직임은 순수하게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강화 방침, 즉 미국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특히, 러시아가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대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최상이자 최적의 방법은, 비록 상징적인 것에 그칠지라도 군사협력이며 이는 곧바로 한국과 미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대북 협력관계 증진을 꾀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한국에 100%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것이 고민인 셈이다. 이바노프 장관은 G-8 외무장관회담 뒤 “한반도가 역내 안정을 위해 비핵지대로 남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어떤 식으로 이를 구체화할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