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경의 정규 2집 ‘Up Close To Me’ 재킷.
1950년대 후반 브라질 음악의 진보를 꿈꾸던 이들이 재즈와 삼바를 결합해 만들어낸 보사노바는 60년대 초반보다 편안해진 재즈 사운드를 추구한 스탄 게츠, 찰리 버드에 의해 미국에 소개됐다. 특히 스탄 게츠는 주앙 질베르토,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과 함께 ‘게츠/ 질베르토(Getz/ Gilberto)’ 앨범을 발매,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Girl From Ipanema)’를 히트시키며 뉴욕을 중심으로 보사노바 붐을 일으켰다.
보사노바가 그렇듯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은 특유의 나른함 덕분이다. 나일론 기타를 손으로 뜯어 만들어내는 리듬은 한적했고, 힘을 빼고 소곤소곤 부르는 보컬은 부드러웠다. 피아노 터치는 자유로우면서도 우아함이 있었고, 가미된 스트링 섹션은 번잡하지 않은 풍성함을 더했다. 말 그대로 재즈와 삼바의 성공적 교배였던 셈이다. 아직 해외여행이 보편화하지 않던 시대, 뉴요커들은 브라질에서 온 보사노바 뮤지션의 공연을 보며 이파네마 해안에서의 휴양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중심이던 뉴욕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한 보사노바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상륙하는 데는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나의 옛날이야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의 조덕배, ‘춘천가는 기차’의 김현철은 1980년대 중반 기존 가요 리듬과 분위기와는 다른 새로운 음악을 제시했다.
1990년대도 벌써 회고 대상이 된 지금, 보사노바를 시도하는 뮤지션은 적지 않지만 보사노바가 좋아 브라질까지 간 사람은 흔치 않다. 더욱이 현지 보사노바 뮤지션과 교류하고 앨범 작업까지 한 이는 두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한 나희경을 제외하면 거의 없을 것이다.
서울 홍대 앞에서 보사다방이라는 밴드로 활동하던 그는 2010년 말 홀연히 브라질로 떠났다. 공연도 하고 음반도 냈다. 기적이 일어났다. 우연한 기회에 1세대 보사노바 뮤지션인 호베르투 메네스칼 등과 교류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동양에서 온 이 작은 아가씨의 음색에 매료됐다. 인연은 확장됐다. 그 인연은 현지 뮤지션과의 협업으로 이어졌고 보사노바 명곡들을 리메이크한 1집, 한국 명곡들을 보사노바로 재해석한 EP에서도 계속됐다. 12곡 가운데 9곡을 자작곡으로 채운 2집 ‘업 클로즈 투 미(Up Close To Me)’에도 아드리아누 지포니, 세사르 마샤두 등 브라질 음악인이 참여했다.
그러나 음악은 보사노바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앨범에서 그는 자신이 보사노바를 넘어 다방면에서 자기 음색을 유지하고 소화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1970~80년대 한국 가요 스타일의 노래들이 있고, 어덜트 컨템퍼러리 성향의 곡도 있다. 심지어 펑크와 솔 흔적도 느껴진다. 몇 곡만이 순수한 보사노바 리듬과 사운드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이질적이지 않은 이유는 나희경의 일관된 음색과 앨범 전반의 정서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속삭이듯 노래하는 여성 뮤지션은 많아졌지만 나희경 목소리에는 그런 류의 여성 보컬에 밴 과도한 당분이 없다. 나긋나긋하되 음을 흘리지 않고 음표 하나하나를 성대에 싣는다. 미세한 떨림이 있고 절제된 굴림이 있다. 그래서 이런 목소리가 지배하는 ‘업 클로즈 투 미’는 ‘웰 메이드 팝(well made pop)’ 앨범이라 표현하는 게 적당할 듯하다. 보사노바 정서가 관통하는 팝이다.
이 앨범을 들으며 새삼 대중성이란 걸 생각한다. 음반이나 음원으로 발표되는 모든 음악은 사실 자신이 모르는 불특정 다수, 즉 대중을 겨냥해 만들어진 음악이다. 지나치게 실험적이거나 진보적인 음악은 시장성보다 미적 가치를 바탕으로 논해지는 게 숙명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대중적인 음악’의 폭이 지나치게 좁다. 시장에서 먹히는 음악이 과도하게 한정됐다는 것이다.
‘업 클로즈 투 미’를 들으며 난해하다 느낄 이는 없을 것이다. 나희경의 목소리에서 마니악(maniac)함을 포착할 사람도 없을 듯하다. 심지어 이 앨범에 담긴 몇 곡은 과거 한국 대중음악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던 감성마저 담고 있다. 말하자면 대중적이다 못해 보편적인 음악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음악이 주변부에 머물러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