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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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도 섬마을에 ‘함박웃음’

수선화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12-02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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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남도 섬마을에 ‘함박웃음’
    꽃치고 아름답지 않은 게 있을까. 하지만 아름다운 데다 고귀하기까지 한 꽃을 꼽으라면? 선뜻 대답하기 힘들지만, 내 나름의 기준으로 보면 일단 향기가 지나치지 않고 그윽하되 맑아야 할 것 같다. 외관상으론 풍성하기보다 단아한 기품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거기에다 지천으로 꽃이 피는 계절보다 남보다 일찍 혹은 늦게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피어나면 더욱 돋보일 듯하다.

    과연 이런 조건에 맞는 꽃이 있을까 하고 찾아보니 수선화가 떠오른다. 우리가 요즘 만나는 수선화 품종은 대부분 서양에서 들어온 종류로 여러 색깔과 모습으로 개량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토종 수선화는 겨울 언저리 따뜻한 남쪽 섬에서 만날 수 있다. 남도지방 바닷가의 양지 바른 무덤가에서 무리지어 피곤 한다.

    그 여린 줄기와 맵시 있게 뻗어 나온 부드러운 잎 사이로 활짝 웃으며 피어나는 연노랑 꽃송이의 청초함이라니…. 연한 꽃잎 가운데 동그랗게 자리 잡은 진한 노란색을 띠는 또 하나의 꽃잎. 그리고 그 고운 꽃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 정말 꽃이 가져야 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조화 있게 한 송이에 빚어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도 함부로 자랑하지 않고 기품을 간직하니 그 누가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선화는 수선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이다. 양파처럼 겹겹이 쌓인 비늘줄기가 땅속에 묻히고 그 아래로 가는 수염뿌리가 달린다. 늘씬하고 파란 잎 사이로 겨울이 한창일 때 이미 꽃대가 올라오고, 그 위에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꽃송이가 피어난다. 수선화는 기본적으로 꽃잎을 여섯 장 달고 있으며, 그 가운데로 마치 금으로 만든 술잔 모양의 샛노란 꽃잎이 또 하나 올라와 얹혀 있는데 이를 두고 부화관(副花冠)이라고 한다.

    수선화를 두고 흔히 금잔옥대(金盞玉臺)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그 모양이 꼭 옥대에 받쳐놓은 금 술잔 같기 때문이다. 재미나는 사실은 거문도에서 절로 자라는 수선화는 모두 이 금 술잔을 닮은 금잔옥대인 데 반해, 제주 해안가에 자생하는 수선화들은 술잔 모양 대신 꽃잎이 오글오글 모여 색다른 멋을 낸다는 점이다.



    따뜻한 남도 섬마을에 ‘함박웃음’
    수선화의 고향은 중국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옛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지 자못 오래됐다. 실제 거문도나 제주에 가면 누가 심지 않았어도 오래전부터 곳곳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수선화가 있었다. 아주 오래지 않은 옛날, 제주에서는 밭에 수선화가 너무 많이 피어 뽑아내 버릴 정도였다는 기록도 있어, 그곳 사람들은 수선화를 귀화한 식물이 아닌 우리 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선화는 그 아름다움으로 명성이 자자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이야기가 전해온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애착을 가리키는 ‘나르시시즘’이란 용어의 유래가 된 그리스신화가 유명하다. 나르키소스라는 미소년이 요정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아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을 사랑한 나머지 결국 물속에 뛰어들어 죽는데, 그 호수 옆에서 미소년의 혼을 담아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는 이야기다. 수선화의 라틴어 속명(屬名)이 ‘나르키수스’가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가오는 연말, 수선화와 관련한 그리스신화를 반면교사 삼아 너무 자기 자신만 챙기지 말고 주변 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남은 한 해를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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