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대통령이 살기 전, 미국 백악관엔 ‘검둥이 집사’가 있었다. 리 대니얼스 감독의 영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는 흑인 노예로 태어나 1952년부터 86년까지 백악관 집사로 일하며 대통령 8명을 겪은 실존인물 유진 앨런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2008년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당선까지를 담은 이 영화는 미국 현대사를 한 흑인 집사의 눈을 통해 반추한다.
실제와 허구를 뒤섞으며 실존 인물들을 스크린으로 불러냈지만 역사적인 기록물이라기보다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와 비견할 만한 ‘우화’에 가깝다. 미국 현역 대통령을 ‘역사적 필연이자 영광의 도래’로 묘사하는 태도는 조금 민망하지만, 흑인들이 오바마를 통해 불러낼 수밖에 없었을 회한과 고난, 투쟁, 죽음의 역사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에 전해지는 뜨끈하고 저릿한 감동이 결코 가벼울 수만은 없다. 아주 세련된 태도로 관객 정서에 물 스미듯 침윤해 들어가는 좋은 감성의 이 작품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빼어난 완성도를 이룬다.
영화는 1926년 미국 조지아 주 한 목화농장에서 시작한다. 흑인 소년 세실 게인즈는 어머니가 백인 주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겁탈당하고, 이에 항의하던 아버지가 개처럼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러고도 “세상의 주인은 백인”이라는 죽은 아버지의 말을 잊을 수 없고 노예 운명을 거부할 수도 없는 소년은 농장에서 ‘검둥이 하인’(house nigger·식사,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하는 흑인 노예)으로 몇 년을 더 일한 후 고향을 떠난다.
맨몸에 무일푼으로 나왔지만 식당과 호텔을 거치며 유능한 버틀러(집사)로 인정받은 성인 게인즈(포리스트 휘터커 분)는 백악관 인사책임자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트루먼 대통령 때 백악관 집사로 채용된 그는 아이젠하워(로빈 윌리엄스 분), 케네디(제임스 마스던 분), 존슨(리브 슈레이버 분), 닉슨(존 큐잭 분), 레이건(앨런 릭맨 분) 등 백악관 주인 8명을 수행한다.
‘백인의 눈으로 보라’ ‘백인들을 미소 짓게 하라’ 등 게인즈가 마음에 새긴 ‘좋은 버틀러가 되기 위한 가르침’은 검둥이 하인으로서의 흑인 역사와 윤리를 상징한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경력에 빛나는 관록의 배우 포리스트 휘터커는 흑인 버틀러가 가진 두 가지 표정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항상 백인 곁에서 미소 지으며 주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버틀러의 인생이 한편이라면, 아내와 자식을 둔 가장이자 대를 이어 고난과 상처의 역사를 살아야 하는 흑인의 삶이 다른 하나다. 게인즈가 백악관에서 인정받을수록 아내 글로리아(오프라 윈프리 분)는 일에 빠진 남편 때문에 점점 술에 의존하게 되고, ‘검둥이 하인’의 삶을 사는 아버지를 수치로 여기는 아들과는 자꾸 엇나간다.
영화는 게인즈와 아들 간 세대 갈등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힘이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게인즈의 아들은 대학 시절 마틴 루서 킹과 맬컴 엑스, 블랙팬서당(흑인 중심의 급진적인 정당)이 이끄는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하며 감옥에 들락거리고 점점 강경 투쟁 노선을 걷는다. 게인즈는 ‘아버지가 번 돈으로 학교에 다니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질만 하는 아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를 흑인의 치욕으로 여긴다.
이 영화는 따뜻하지만 어설프게 ‘흑백 화해’를 말하지는 않는다. 비교적 냉정하게 묘사된 역대 대통령 모습에서도 이런 점이 잘 나타난다. 케네디는 ‘공공지역에서의 흑백 차별 금지’ 같은 개혁을 이뤘지만, 그가 접하는 흑인의 현실이란 백악관 안 TV에서 보는 것이 전부다. 닉슨은 베트남전쟁 참전 반대와 흑인 민권 시위가 이어지자 “까부는 것들은 다 끌어내리라”고 말하는 한편, “흑인 기업을 도와주고 흑인 표를 끌어오자”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 부부는 게인즈를 인간적으로 예우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단적인 흑인차별정책을 용인하는 외교정책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결국 흑인문제는 흑인 자신의 문제였고, 그래서 영화는 흑인 대통령의 등장으로 대미를 맺는다.
실제와 허구를 뒤섞으며 실존 인물들을 스크린으로 불러냈지만 역사적인 기록물이라기보다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와 비견할 만한 ‘우화’에 가깝다. 미국 현역 대통령을 ‘역사적 필연이자 영광의 도래’로 묘사하는 태도는 조금 민망하지만, 흑인들이 오바마를 통해 불러낼 수밖에 없었을 회한과 고난, 투쟁, 죽음의 역사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에 전해지는 뜨끈하고 저릿한 감동이 결코 가벼울 수만은 없다. 아주 세련된 태도로 관객 정서에 물 스미듯 침윤해 들어가는 좋은 감성의 이 작품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빼어난 완성도를 이룬다.
영화는 1926년 미국 조지아 주 한 목화농장에서 시작한다. 흑인 소년 세실 게인즈는 어머니가 백인 주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겁탈당하고, 이에 항의하던 아버지가 개처럼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러고도 “세상의 주인은 백인”이라는 죽은 아버지의 말을 잊을 수 없고 노예 운명을 거부할 수도 없는 소년은 농장에서 ‘검둥이 하인’(house nigger·식사,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하는 흑인 노예)으로 몇 년을 더 일한 후 고향을 떠난다.
맨몸에 무일푼으로 나왔지만 식당과 호텔을 거치며 유능한 버틀러(집사)로 인정받은 성인 게인즈(포리스트 휘터커 분)는 백악관 인사책임자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트루먼 대통령 때 백악관 집사로 채용된 그는 아이젠하워(로빈 윌리엄스 분), 케네디(제임스 마스던 분), 존슨(리브 슈레이버 분), 닉슨(존 큐잭 분), 레이건(앨런 릭맨 분) 등 백악관 주인 8명을 수행한다.
‘백인의 눈으로 보라’ ‘백인들을 미소 짓게 하라’ 등 게인즈가 마음에 새긴 ‘좋은 버틀러가 되기 위한 가르침’은 검둥이 하인으로서의 흑인 역사와 윤리를 상징한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경력에 빛나는 관록의 배우 포리스트 휘터커는 흑인 버틀러가 가진 두 가지 표정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항상 백인 곁에서 미소 지으며 주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버틀러의 인생이 한편이라면, 아내와 자식을 둔 가장이자 대를 이어 고난과 상처의 역사를 살아야 하는 흑인의 삶이 다른 하나다. 게인즈가 백악관에서 인정받을수록 아내 글로리아(오프라 윈프리 분)는 일에 빠진 남편 때문에 점점 술에 의존하게 되고, ‘검둥이 하인’의 삶을 사는 아버지를 수치로 여기는 아들과는 자꾸 엇나간다.
영화는 게인즈와 아들 간 세대 갈등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힘이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게인즈의 아들은 대학 시절 마틴 루서 킹과 맬컴 엑스, 블랙팬서당(흑인 중심의 급진적인 정당)이 이끄는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하며 감옥에 들락거리고 점점 강경 투쟁 노선을 걷는다. 게인즈는 ‘아버지가 번 돈으로 학교에 다니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질만 하는 아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를 흑인의 치욕으로 여긴다.
이 영화는 따뜻하지만 어설프게 ‘흑백 화해’를 말하지는 않는다. 비교적 냉정하게 묘사된 역대 대통령 모습에서도 이런 점이 잘 나타난다. 케네디는 ‘공공지역에서의 흑백 차별 금지’ 같은 개혁을 이뤘지만, 그가 접하는 흑인의 현실이란 백악관 안 TV에서 보는 것이 전부다. 닉슨은 베트남전쟁 참전 반대와 흑인 민권 시위가 이어지자 “까부는 것들은 다 끌어내리라”고 말하는 한편, “흑인 기업을 도와주고 흑인 표를 끌어오자”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 부부는 게인즈를 인간적으로 예우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단적인 흑인차별정책을 용인하는 외교정책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결국 흑인문제는 흑인 자신의 문제였고, 그래서 영화는 흑인 대통령의 등장으로 대미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