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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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에 파인애플주스…우윳빛 낭만 찰랑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에서 완벽한 조건 갖춘 여자 강조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3-12-02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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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럼에 파인애플주스…우윳빛 낭만 찰랑
    과거에는 외화 제목을 우리말로 적절히 번역해 개봉하는 게 관행처럼 여겨졌다. ‘애수’(Waterloo Bridge·1940),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1969) 같은 멋있는 영화 제목이 그런 분위기에서 탄생했다. 이런 관행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사랑과 영혼’(Ghost·1990)이나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1993) 같은 영화는 오히려 우리말 제목을 잘 붙여 원제목으로는 국내 팬들에게 전달될 수 없는 맛을 살리는 효과를 봤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어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대세다. 관객층의 영어 이해도가 높아진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러다 보니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 ’(2008)의 수준을 넘어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1998) 같은 거의 암호 해독 수준의 영화 제목까지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 제목을 발견할 때가 있다. 2004년 인디 영화 출신의 게리 위닉 감독이 할리우드 진출 작품으로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예다. 사실 이 영화 원제는 의미가 전혀 다른 ‘13 Going On 30’로, 빨리 여인이 되고 싶은 13세 소녀의 꿈이 어느 날 갑자기 현실화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우리말로 바꾼 제목은 영화에서 모든 것을 갖춘 듯 보이는 그녀에게도 진정한 사랑이라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는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완벽한 여자의 상징

    1987년 여주인공 제나(제니퍼 가너 분)는 13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녀는 또래처럼 외모에 신경 쓰는 사춘기 소녀지만 친구들에겐 항상 따돌림 대상이다. 그나마 우직한 남자친구 매트(마크 러팰로 분)가 있긴 해도 그녀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는 생일파티 중 벽장 속에서 “빨리 서른 살 어른이 되고 싶다”고 소원을 말한다. 마침 곁에는 매트가 선물한 인형의 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먼지가 들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뜬 그녀는 바라던 모습으로 변한 자신에 놀란다. 게다가 유명 패션잡지 에디터에 호화 아파트, 멋진 남자친구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잊힌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매트를 배신하고 부모를 멀리하는 등 진정한 자신을 잃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동료들에게 악평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와중에 매트까지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 한다. 그녀는 상황을 바꿔 보려 애쓰지만 일은 꼬여만 간다. 그러던 중 매트가 돌려준 인형의 집의 힘으로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간다. 과연 그녀는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전형적 로맨틱 코미디 장르인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에 맞춘 군무 장면이다. 제나는 자신의 회사에서 열린 파티에서 “어떤 음료수를 들겠느냐”는 종업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피냐 콜라다(Pin~a Colada)로 주세요. 버진(virgin)이 아닌 것으로요.”

    그러고는 곧 종업원이 가져다준 피냐 콜라다를 들고 다니며 맛있게 마시는 장면이 이어진다. 영화에서 피냐 콜라다는 특유의 매력적인 잔 모양과 화려한 장식을 뽐내며 제나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여자임을 강조하는 장치로 이용된다. 그렇다면 ‘버진이 아닌’ 피냐 콜라다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 속 제나의 칵테일 주문 상황을 이해하려면 피냐 콜라다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럼에 파인애플주스…우윳빛 낭만 찰랑
    피냐 콜라다는 럼과 코코넛 크림, 그리고 파인애플주스를 혼합해 만든 칵테일이다. 럼을 베이스로 하는 다이키리, 모히토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칵테일 가운데 하나다. 피냐 콜라다는 얼음과 함께 보통 파인애플 조각 또는 체리로 장식해 서빙한다. 특징적인 잔 모양에 우윳빛 바탕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분위기를 살린 이 칵테일은 외관만으로도 트로피컬 칵테일의 대표주자 격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피냐 콜라다는 특유의 감미로운 맛으로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 이 때문에 알코올은 원하지 않으면서 그 맛을 즐기고 싶은 사람을 위해 개발된 것이 럼을 뺀 ‘버진 피냐 콜라다’이다. 피냐 콜라다라는 말은 스페인어 그대로 ‘여과한(colada) 파인애플(pin~a)’이란 뜻이다. 즉 이 단어는 애초 여과하지 않고 과육이 그대로 담긴 파인애플주스가 아닌, 과육을 여과한 주스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 들어 럼을 섞은 형태가 등장하게 됐고, 이후 여러 변형을 거쳐 오늘날 유명 칵테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 칵테일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1978년 푸에르토리코가 피냐 콜라다를 국가 공식주로 지정한 데서 알 수 있듯, 이 칵테일이 푸에르토리코에서 시작됐다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디서,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푸에르토리코, 국가 공식주로 지정

    가장 신빙성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는 설은 1954년 푸에르토리코 수도 산후안의 고급 호텔 카리브 힐튼에서 라몬 몬치토 마레로(Ramo´n Monchito Marrero)란 바텐더가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호텔은 당시 미국의 유명한 영화스타들과 주요 인사들이 휴양 차 자주 들렀던 곳인데, 호텔 경영진이 이들을 위해 마레로에게 호텔을 상징할 만한 특별한 칵테일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3개월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한 끝에 당시 푸에르토리코대에서 처음 개발한 코코넛 크림을 이용해 마침내 오늘날의 피냐 콜라다 칵테일을 선보였다.

    또 하나의 주장은 1963년 또 다른 유명 바텐더 라몬 포타스 민고트(Ramo´n Portas Mingot)가 역시 산후안의 레스토랑 바라치나에서 처음 이 칵테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레스토랑은 지금도 안내서에 피냐 콜라다의 발생지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어쨌든 피냐 콜라다가 이름을 떨치다 보니 이를 본뜬 몇 가지 변형 칵테일도 소개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럼 대신 보드카를 사용한 ‘치치’라는 칵테일이다. 또 피냐 콜라다 레시피에 일본산 멜론 리큐어인 미도리를 섞어 초록 색깔을 낸 ‘이구아나 콜라다’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칵테일도 있다.

    피냐 콜라다는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잔 모양과 우윳빛이 워낙 특징적이어서 이 칵테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존재감을 놓치기 어렵다. 2007년에 나온 영화 ‘데쓰 프루프(Death Proof)’도 좋은 예다.

    비록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이라도 피냐 콜라다 한 잔만 있으면 어느덧 카리브해의 감미로운 우윳빛 낭만이 몸 전체를 휘감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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