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직후 중국 베이징 주중 북한대사관에 걸린 북한 인공기 조기.
CCTV 어처구니없는 방송사고
점심식사를 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중국 매체 반응을 취재하며 허겁지겁 생방송 준비에 들어갔다.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 TV 등 중국 언론은 일제히 ‘김정일 사망’ 소식을 긴급 뉴스로 전하고 있었다. CCTV는 특보를 편성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일대기를 조명하고 평양 특파원을 수시로 연결해 현지의 애도 분위기를 전했다. 급박하게 제작하다 보니 CCTV는 어처구니없는 방송사고도 냈다. 김 위원장의 탄생을 소개하면서 배경 자료화면으로 서울에서 북한 인공기와 김 위원장 사진을 불태우는 시위 장면을 내보낸 것이다. 이 장면은 14초나 전파를 탔다.
베이징 주중 북한대사관은 오전 11시 반쯤 조기를 내걸었다. 북한대사관 앞으로 세계 각국 기자가 몰려들자 포토라인이 설치됐다. 공안당국 경비도 대폭 강화됐다. 베이징의 북한 주민들 역시 큰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울먹이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이날 오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을 ‘위대한 후계자’로 표현했다. 김정은의 지도력 아래 난관을 극복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일 사망’ 발표 당일 오후 중국 외교부의 정례 브리핑룸은 외신기자로 꽉 찼다. 당시 류웨이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정부는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북한 당국 발표 전 미리 알았는지, 후계자 김정은을 지지하는지 등 쏟아지는 기자들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매번 브리핑 현장에 나타나던 북한 기자들도 이날만은 모습을 감췄다. 대사관 소집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2011년 12월 20일 오전 중국 베이징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하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앞줄 왼쪽).
이날 필자는 북·중 접경도시 단둥으로 향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단골로 찾던 곳이다. 단둥에 도착하자마자 분향소 수색에 나섰다. 취재원을 통해 북한 무역상 사무실 안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냈다. 카메라맨과 함께 사전답사를 했다. 김 위원장의 초상화 아래 조화가 가득했고 슬픈 표정을 한 조문객의 행렬이 쉼 없이 이어졌다. 우리 신분을 밝혔다간 취재고 뭐고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았다. 카메라에서 회사 로고를 떼고 분향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촬영을 시작했다. 분향소 측에서 누구냐고 물었다. 카메라맨이 애도를 표하면서 조심스럽게 “현지 지역 방송국에서 온 중국인”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분향소 내부를 모두 취재할 수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외신기자들 과열 취재
2011년 12월 20일 북·중 접경도시 단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북한 조문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북한의 피바다가극단은 2011년 10월 말부터 중국 전역에서 가극 ‘양산백과 축영대’ 순회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 가극은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부르는 작품. 피바다가극단은 이를 각색해 공연 중이었는데, 김 위원장 사망 발표로 이내 중단했다가 며칠 뒤 재개했다. 북한 당국이 “비통함을 힘으로 승화시키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에 대한 애도 기간은 12월 29일 종료됐다. 애도 종료와 더불어 30일부터 단둥에서는 북한인들의 영업활동도 재개됐다. 하지만 북한 식당에서의 공연은 한동안 계속 금지됐다. 단둥 철교는 북한으로 들어가려는 화물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심각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애도 기간이 끝난 데다 그해 마지막 세관 통관일이어서 화물차가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운송비도 평소 600위안이던 것이 2000위안으로 3배 이상 뛰었다. 세관을 통과하더라도 북한 세관 쪽 창고가 꽉 차 화물을 내릴 수 없을 지경이라고 중국인 대북 무역상이 전했다. 그는 “북한으로 들어가려면 곳곳에서 현금을 찔러줘야 한다”고 투덜댔다.
중국 단둥의 한 북한 식당 앞에서 조화를 파는 여성.
당시 단둥에는 거리 곳곳에서 외신기자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외신기자가 중국에서 취재하려면 당국으로부터 취재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대형 이슈가 터지니 본사로부터 급히 파견된 기자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 취재비자가 아닌 관광비자로 들어왔다. 중국 처지에서 보면 이들은 허가받지 않은 불법 취재를 하는 셈. 본사 파견 기자들까지 몰리면서 북·중 접경지역에서의 취재는 과열 양상을 띠었다. 북한이 공개를 꺼리는 내용까지 보도되면서 북한이 중국 측에 항의의 뜻을 전했을 개연성이 높아졌다.
“공안에도 여러 종류 있다”
그 와중에 단둥의 한 취재원이 외신기자들이 다수 투숙한 호텔에 공안당국이 조사를 나올 것이라고 언질을 줬다. 호텔 1층 로비를 살펴보니 과연 사복 공안요원 몇 명이 눈에 띄었다. 단둥 공안당국은 호텔 측으로부터 투숙자 명단을 제출받고 서류와 신분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비자로 투숙한 기자들이 취재 장비를 숨기거나 숙소를 옮기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이후 관광비자만 받고 온 모 언론사 기자가 공안당국에 적발돼 서울로 돌아가는 일도 발생했다.
단둥은 중국에서 북한 사업가가 가장 많이 생활하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사망 같은 크고 민감한 이슈가 터졌을 때는 언행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특히 한국 언론인은 더 주의해야 한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언론 종사자 K씨가 애도 기간 단둥에서 경험한 일이 꼭 그랬다.
중국인인 K씨는 외국 언론사에 카메라맨으로 고용됐다. 그는 애도 기간 단둥 공안당국에 끌려갔다. 세관 안에서 북한인들의 동향을 몰래 촬영하려다 잡힌 것이었다. K씨는 3시간 동안 집중조사를 받았다. 조사 담당 공안이 K씨의 신분증 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순간 모니터를 본 K씨는 깜짝 놀랐다. 해당 언론사 특파원은 물론, 그 가족의 개인정보까지 모조리 모니터에 떴기 때문이다.
담당 공안은 K씨에게 아내 이름과 직장 등 가족 정보를 물었다. 그러고는 K씨가 말해준 내용을 적은 메모지를 슬그머니 점퍼 호주머니에 넣더니 말을 이었다. “중국 공안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공안이라고 다 같지 않다. 강도 같은 공안도 있다.” K씨는 덜컥 겁이 났다. ‘이건 무슨 협박인가, 아내에게 해코지를 하겠다는 뜻인가.’ 공안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 한 번만 더 걸리면 구속될 수도 있다. 너희 기자에게도 더는 단둥에 머물지 말고 빨리 베이징으로 돌아가라고 전해라.”
공안이 세관 내부 촬영은 안 된다는 경고 간판을 못 봤느냐고 묻자 K씨는 못 봤다고 시치미를 뗐다. “그런 식이라면 앞으로 당신이 단둥에 있는 동안 누군가로부터 밤길에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해도 난 모른 척하겠다. 단둥이란 데가 어떤 곳인지 알긴 아나.” K씨는 조사를 받고 돌아온 뒤 함께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빨리 베이징으로 돌아가자”고 독촉했다. 이후 한동안 K씨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행여 단둥의 그 공안이 북한 측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넘긴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