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공청회 모습(왼쪽). 이날 회의장에서는 한중FTA중단농축산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의 TPP 반대 시위가 있었다.
TPP 참여에 대한 논란은 참여 여부보다 참여 시기에 집중됐다. 조기 참여를 찬성하는 쪽은 시장 확대를 통한 수출 증가 효과와 함께 주요 시장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반대하는 쪽은 농산물시장의 전면 개방으로 초래되는 농업 부문 피해와 대일 무역적자 확대 개연성을 우려한다.
관세 완전 철폐까지 시간 걸릴 듯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8%, 무역금액의 26%를 차지하는 참여국의 경제 규모로 볼 때 TPP는 분명 거대 규모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참여에 따른 우리나라의 득실을 살펴보려면 이들 국가와의 무역 현황이나 국가별 관세 구조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무역 부문을 살펴보자. 2012년 TPP 참여국에 대한 한국 수출액은 1725억 달러로, 국내 총수출액의 약 31%를 차지한다. 하지만 참여국 가운데 이미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7개국(미국, 칠레, 페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을 제외할 경우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 비중은 11%대로 크게 낮아진다. 이는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 비중(25%)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TPP 참여국은 관세 완전 철폐를 목표로 FTA보다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를 추진하지만, 일본이 쌀과 쇠고기 등 민감 품목에 대한 관세 유지 방침을 밝힌 바 있고, 다른 참여국 역시 농산물 개방에 대해 유예품목을 설정하는 등 관세 완전 철폐까지는 사실상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는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국가를 제외한 채 TPP 참여의 경제적 효과를 논의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반면 일본의 참여로 우리나라가 TPP 참여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의 비중은 크게 증가하게 된다. FTA 체결국을 제외하더라도 TPP 참여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은 18%(965억 달러)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15%, 807억 달러)을 넘어선다. 일본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FTA 체결국을 제외한 TPP 참여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은 6.2% 수준으로 크게 낮아진다.
이렇게 놓고 보면, 기존 FTA 체결국을 제외할 경우 TPP 참여국과의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만성적인 대일 무역수지 적자와 호주 등으로부터의 천연자원 수입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같은 조건하에서 우리나라의 TPP 참여 효과를 예측해보자. 가입 효과를 사전에 분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각국 관세율을 비교하고 이를 철폐했을 때 나타날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관세율은 12% 수준으로 TPP 참여국별 평균관세율에 비해 상당히 높다.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인 베트남(9.8%), 말레이시아(6.5%), 페루(3.7%)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다(표1 참조).
여러 국가 TPP와 RCEP 중복 참여
TPP 출범의 최종 목표대로 역내 국가 간 관세를 완전히 철폐할 경우 일본산 자동차와 기계류, 철강류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해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또한 약 47%로 유지되는 우리나라 농산물에 대한 높은 수입관세가 철폐되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로부터 쇠고기, 유제품, 곡물류의 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은 수입 증가 효과와 함께 과거 한미 FTA 협상과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 과정에서 겪었던 사회적 갈등이 다시 현실화할 경우 TPP 참여는 막대한 비용을 유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주요 TPP 참여국도 주로 농산물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시장 개방을 위한 자국 내 이익집단의 설득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 TPP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시장 확대를 통한 수출 증가 효과’는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수출 효과를 살펴보려면, 먼저 TPP와 별도로 진행되는 또 다른 대규모 무역자유화 협상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진행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RCEP에는 우리나라와 함께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 TPP보다 많은 16개국이 참여한다. RCEP 역시 역내 국가 간 관세 철폐와 원산지 규정 통일을 주요 목표로 한다(표2 참조).
문제는 여러 국가가 TPP와 RCEP에 중복해 참여를 추진한다는 사실이다. 일본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ASEAN 일부 회원국(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브루나이)이 두 협상에 동시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TPP를 통해서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지역에 대한 교역 확대 효과를 얻으려 하는 한편, RCEP를 통해서는 주로 중국과의 교역 확대 효과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우리나라가 초기부터 참여하는 RCEP가 타결될 경우 TPP는 실질적으로 멕시코, 캐나다와 FTA를 체결하는 효과만 가져올 개연성이 높다.
결론은 비교적 명확하다. 성급한 TPP 참여는 대일 무역적자 확대와 함께 특정 산업 종사자들의 반발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공산이 크므로, 이를 충분히 고려한 뒤 가입 시기를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현재 추진하는 한중 FTA 역시 농업 부문 개방이 주요 이슈로 논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농업 완전 개방을 목표로 하는 TPP 조기 참여는 결과적으로 정부 당국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미국 의회가 TPP에 환율 조작 금지사항을 포함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등 향후 비관세 장벽 철폐를 빌미 삼아 정부 정책에 개입할 통로로 작동할 여지도 피하기 어렵다. 충분한 사전 점검을 통해 통상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