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사이로 보이는 히말라야 연봉.
지명 이름이 흥미롭다. 산스크리트어로 ‘나가르’는 용(龍)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2 부처라 부르는 인도의 대승불교 학자 나가르주나를 용수(龍樹)로 한역한다. ‘주나’는 나무(樹)이다. 그렇다면 코트는 무엇일까. 우리를 안내하는 하리 씨도 모른단다. 그래서 나는 코트를 ‘곳, 곶’으로 발음하며 상상력을 발휘해본다. 우리말에 ‘곶’은 바다 쪽으로 돌출한 땅을 말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용이 비상하는 듯한 모습이어서 나가르코트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셀파족 말에서 우리말 발견
네팔에도 우리말이 더러 있다. 히말라야 혹은 아시아 어딘가의 언어가 네팔이나 우리나라로 흘러들었다고 봐야 한다. 네팔에서도 특히 히말라야 산자락에 사는 몽골리안 소수 종족 셀파족의 말에서 우리말이 발견된다. 예컨대 뜻과 발음이 같은 단어로는 과자, 낙서, 차, 가발, -지키다, 엄마, 아빠 등이 있다. 우리말과 발음은 같은데 뜻이 다른 단어는 모자(양말), 눈(소금) 등등이다.
다행히 내일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예보다. 비가 오락가락해 일몰은 보지 못해도 일출은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숙소에 들어서자 외국인들이 로비에서 한가로이 차를 마시고 있다. 인도인 대가족도 보인다. 부인들 양미간에 신드우르(Sindhur)라는 빨간색 점이 찍혀 있다. 이는 사두에게 축복받은 표시이기도 한데, 가르마를 탄 여성은 결혼했다는 증표고, 남편이 죽으면 지운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어쨌든 나가르코트를 찾은 그들도 나와 생각이 비슷할 것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히말라야 연봉을 머리맡에 두고 누웠다는 생각 때문인지 머리가 더 없이 맑다. 잡사의 번뇌가 시나브로 씻기는 느낌이다. 내가 든 숙소가 설산으로 바뀌어 명상에 잠긴 꿈을 밑도 끝도 없이 꿨는데 알고 보니 히말라야, 즉 힘(Him)은 눈이고 알라야(Alaya)는 집이란 뜻이란다. 나가르코트의 맑은 기운으로 현몽한 셈이다.
새벽이 돼 창문을 여니 날씨가 일출을 보기에 애매하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구름이 군데군데 하늘을 덮고 있다. 그러나 나는 숙소 베란다로 나가 일출에 집착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만년설의 기운을 온몸에 충전하기 위해서다. 불가에서는 해를 대일여래(大日如來)라 한다. 마음속에 이미 본래 부처인 대일여래가 자리하는데 눈에 보이는 해에 연연하는 것도 우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잠시 후 한 줄기 빛이 구름 사이로 뻗치더니 설산이 드러났다. 뾰쪽뾰쪽하게 드러난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이 마치 백룡(白龍) 비늘 같다. 빛의 명도에 따라 백룡 비늘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순간적인 풍경이지만 백룡의 눈부신 비늘로 느낀 사람은 일행 가운데 나뿐일 듯하다. 어제부터 용을 많이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백룡을 조우하려고 나가르코트를 찾아왔다는 기분이 든다.
느긋하게 아침 산책을 한 뒤 다음 장소를 결정하려고 일행과 구수회의를 한다. 다음 장소는 카트만두의 7대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불교 사원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다. 야생 원숭이가 집단으로 서식해 일명 원숭이사원이라고도 부른다. 나가르코트가 설산 전망대라면 스와얌부나트는 카트만두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나가르코트를 오를 때는 비포장 산길이 비좁아 차들이 교차할 때 가슴을 졸였지만, 내려가는 길은 학습효과 덕인지 한결 여유롭다. 다랑이 논과 밭이 눈에 들어오는데, 논농사는 우리나라처럼 2모작을 한다. 옥수수와 조는 수확할 때가 됐다. 풀을 뜯는 젖소도 많이 보인다. 인도와 네팔처럼 소를 예우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소를 죽이면 네팔의 경우 20년 징역형을 받는다고 하는데,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스와얌부나트는 세계 건축 동호인들이 ‘죽기 전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선정해 더 유명해진 불교 사원이다. 이 사원의 역사는 카트만두 전설과 맥락을 같이한다. 칠불시대(七佛時代) 중 두 번째 부처 때 카트만두 분지는 큰 호수였는데, 어느 날 호수에 핀 연꽃에 대일여래가 나타난 뒤 문수보살이 스와얌부나트에 들러 호수에 사는 악한 뱀을 물리치려고 주변 산을 금강검으로 자른 바, 호수와 뱀이 사라지고 카트만두는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실제로 지질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카트만두가 3만 년 전엔 호수였다고 하니, 전설이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닌 듯하다.
죽기 전 꼭 봐야 할 스와얌부나트
그러나 스와얌부나트 건립은 릿차비 왕조 때인 435년 만데바 왕의 불사(佛事)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인도 승려 산티카라와 얌슈바르만 왕이 사원을 증축했으며,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파드마삼바바가 사원을 참배했고, 13세기쯤 티베트불교의 중심이 돼 무척 번성했다고 전해진다. 1349년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굴제국의 침략으로 사원과 탑이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1614년 말라 왕조 프라탑 왕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고 한다.
청명한 날에는 설산이 보인다는 언덕에 스와얌부나트의 흰 탑이 솟아 있다. 카트만두 중심가에서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일행은 하리 씨가 섭외한 버스로 사원 입구까지 간다. 매표소를 거치자 385개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다 올라서자 라마승이 그린 만다라 불화와 유화를 파는 가게들이 눈길을 끈다. 나는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조그만 유화 한 점을 챙긴다. 내친 김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엉이 청동조각품도 두 점 산다. 눈을 부릅뜬 부엉이만 보면 ‘눈 뜨고 살아야지’ 하는 내면의 각성이 느껴져 걸음이 멈춰지니, 아마도 내 전생은 수행자와 관련 깊은지도 모르겠다.
탑은 보드나트 스투파와 같은 모습이다. 진리의 엉덩이 같은 반구형 위에 사각 형상이 있고, 그 위에 13개 계단 형식의 상륜부가 있다. 그러고 보니 13이란 숫자는 우리와도 친숙하다. 원각사 13층탑이나 정혜사지 13층석탑이 있는 것이다. 13이란 법수(法數)는 ‘인왕경(仁王經)’에서 말하는 삼현(三賢), 십성(十聖)의 행법(行法)을 나타내는 십삼관문(十三關門)인 점도 같다.
과연 카트만두 시가지가 한눈에 든다. 나는 지금 카트만두에서 175m나 돌출한 언덕에 서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스와’는 스스로, ‘얌부’는 솟아나다는 뜻이라 하니 스와얌부나트는 지명과 부합하는 사원 이름이다. 전설을 차용하자면 나는 지금 연꽃 한 송이가 솟아오른 바로 그 지점에 와 있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맑고 향기로운 한 송이 연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