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과 북한이 백두산 관광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군과 당 간부들의 백두산 답사 행군을 적극 선전,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 대표적인 예로 8월 4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당 책임일꾼들의 백두산 답사 소식을 1면과 2면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 방대한 기사는 한 가지 주제로 모아진다. 북한의 백두 혈통을 상징하는 성지(聖地), 즉 백두산을 직접 찾아가 김일성, 김정일의 대를 잇는 백두 혈통 ‘김정은 원수님’에 대한 충성을 다진다는 것이다.
백두산 행군 직후 북한군 흉기 강도
북한군의 연대장급 이상 핵심 지휘관들이 백두산 답사 행군을 한 것은 3월 23일부터 4월 1일까지다. 그런데 답사 행군을 마친 직후인 4월 중순 북한군이 백두산에서 흉기를 들고 강도를 벌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백두산을 자주 오가는 필자 취재원이 강도를 당한 중국인으로부터 들은 소식이다. 취재원이 전한 당시 상황은 이렇다.
아직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4월 어느 날 새벽 백두산 비룡폭포(중국명 창바이폭포) 부근의 한 식당. 잠을 자고 있던 식당 종업원은 인기척에 놀라 깼다. 북한 군복 차림의 한 남성이 오른손에 칼을 쥐고 서 있었다. 유창한 중국어로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종업원은 다 가져가라며 먹을 것을 내줬다.
북한군 강도는 먹을 것을 챙겨 어깨에 메더니 잽싸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룡폭포를 거쳐 백두산 정상까지 급경사 길을 가볍게 뛰어 올라갔다. 비호(飛虎)처럼 달려 순식간에 백두산 정상을 오르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백두산 지리를 잘 알고 가파른 산을 기가 막히게 잘 타는 점, 게다가 중국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점으로 미뤄 이 강도는 백두산의 북·중 경계 지역을 지키는 북한군으로 추정된다.
북한군의 강도 행각이 잇따르자 중국 당국이 백두산 서파 지역에 무장한 군인들을 배치했다.
이후 백두산 인근에 사는 중국 주민은 북한군 강도가 오더라도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요즘도 식당 주변에 내놓은 음식 재료 등 각종 물건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북한군 소행일 것으로 주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백두산 인근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은 이젠 북한군의 강도 행각에 그러려니 하고 익숙해진 상태다. 하지만 이렇게 지내다 혹시라도 이들의 요구 사항이 더 거칠어지고 흉포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떨칠 수 없다.
7월 하순 필자의 중국 내 취재원은 백두산 관광지를 지키는 중국 군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전해왔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 모습이다. 군인들은 백두산을 오르는 동서남북 네 길 가운데 서쪽 길인 서파 관광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천지에 오르려면 이 정류장에서 내려 1440여 개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천지 관광을 마친 수많은 관광객이 하행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자동소총을 들거나 등에 멘 중국 선양군구 소속 군인 여러 명이 이리저리 이동하며 순찰을 했다고 한다. 취재원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백두산 천지에 가봤지만 이번처럼 중국 군인 여러 명이 무장한 채 관광지를 지키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당시 중국 군인이 무엇 때문에 무장했는지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백두산은 지린성 창바이산 보호개발구관리위원회에서 관리한다. 원래는 지린성의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관할했지만 수년전 상급 정부인 지린성에서 직속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일부 한국인의 언행이 있다고 필자의 중국 내 취재원은 전했다. 과거 백두산 천지 정상에 오른 일부 한국인이 태극기를 휘날리거나 애국가를 불렀다. 대한민국 만세 3창을 외치기도 했다. 또 기독교 예배를 보거나 심지어 돈을 입에 물린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내는 이도 있었다.
안타까운 ‘백두산 생수’ 소동
백두산을 찾는 중국인이 계속 늘고 있다(왼쪽). 백두산 답사 행군에 나선 북한군.
최근에도 한중 양 국민 사이에 백두산 문제로 껄끄러운 일이 있었다. 중국의 유명 생수 광고에 한류스타가 등장하면서 빚어진 논란이다.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전지현과 김수현은 중국 헝다그룹의 백두산 광천수 광고 모델로 등장했다. 그런데 이 생수의 원산지 표기를 두고 국내에서 문제 제기를 하며 논란이 빚어졌다.
백두산의 중국명인 ‘창바이산(長白山)’으로 표기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 “창바이산이란 이름 자체가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비롯한 것인데 대표적인 한류스타들이 여기에 이용됐다”는 주장이었다. 국내에서 논란이 커지자 두 한류스타는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방송 중인 광고를 철회할 경우 손해배상 금액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결국 계약 취소를 철회했다.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고 만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중국에서 생활해본 필자는 안타까움이 컸다. 이번 소동은 중국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한 것이다. 백두산의 중국 명칭은 창바이산이다. 중국인에게 백두산을 왜 창바이산이라 부르느냐고 따지는 것은 중국이 한국인에게 백두산을 창바이산이라 부르라고 우기는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중국이 만드는 생수의 원산지 표기를 문제 삼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논리적이고 학문적으로 비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본다. 이번 생수 광고 소동에 대해 옌볜조선족자치주의 한 조선족(재중국동포)은 이렇게 말했다.
“왜 쓸데없는 트집 잡기로 분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 정치는 정치, 문화는 문화지. 한국인들은 왜 자꾸 이 두 가지를 연결 지으려 하나. 서로 다른 문화를 인정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중국인은 아주 현실적이다. 정치와 문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안다. 그런 건 한국인이 배워야 한다.”
북한과 중국은 백두산을 공동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먼저 2012년 9월에는 백두산의 북한 쪽 관광지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양측이 합의했다. 그리고 그해 완다그룹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대기업 컨소시엄이 백두산을 겨울 관광지로 육성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백두산 서파 코스에 스키장과 온천 등을 갖춘 대규모 리조트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북·중, 백두산 관광 무비자 협의 중”
올해 들어서는 지린성이 북한 측에 ‘백두산 자가용 관광’을 제안했다. 지린성 창바이현과 안투현에서 각각 출발해 백두산의 북한 쪽 길인 동파 코스를 돌아보는 관광 루트를 제안한 것이다. 백두산 구역에서 생활하는 필자 취재원은 이 자가용 관광 구간에선 양국이 서로 ‘노터치’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즉 백두산 자가용 관광코스에 포함된 북한 길을 지나갈 때는 비자 없이 서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에 대해 북한에서 딴죽을 걸지 않게 한다는 발상이다. 만일 이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한국인도 북한 쪽 백두산 코스를 합법적으로 관광할 수 있어 한국인에게도 상당히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지린성 성부는 올해 상반기 백두산 지역을 찾은 관광객 수가 32만8000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20% 정도 늘었다고 밝혔다. 백두산 관광 수입은 우리 돈 155억 원 정도로, 이 역시 상반기에 비해 23% 증가했다. 백두산 관광 성수기는 8월까지여서 8월까지 통계를 구한다면 이 수치는 더 증가할 것이다. 과거 한국인이 주로 찾던 백두산을 이제는 중국인이 더 많이 찾고 있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중국인이 관광에 눈 뜨면서 빚어지는 일이다.
필자는 두 차례 백두산을 다녀왔다. 두 번 모두 엄청난 중국 관광객 인파에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에 올라 한국인이 느끼는 소회는 일반 중국인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필자가 백두산을 찾은 시점이 묘하게도 북한의 노동당 고위 간부들이 백두산 답사 행군을 시작한 7월 말 시점과 유사하다. 백두산은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아픔도 고스란히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