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8월 9일 청와대에서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을 비롯한 8인의 임명장 수여식을 갖고 환담장으로 이동하면서 문재인 비서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현재 그들 표현대로 지리멸렬한 상태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선거에 패할 때마다 지리멸렬한 상태였고, 반성론이 꼬리를 물었으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곤 했다. 물론 혁신론도 함께 내놓았다.
2007년 대통령선거(대선)에서 패배했을 때 안 지사는 이런 글을 남겼다.
“민주 개혁 세력이라 칭해져 왔던 우리 세력이 우리 대에 이르러 사실상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결말을 보게 했으니 우리가 어찌 이 책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 죄 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폐족이던 그들 야당 내 귀족
그로부터 7년 뒤, 다시 야당은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졌고, 그 원인이 친노계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때 폐족이던 그들은 여전히 야당 내 귀족이다. 수적인 면에서 다수일 뿐 아니라 목소리도 가장 드세다. 무엇보다 귀족 신분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2012년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연이은 선거 패배로 야당 지지 세력 사이에서 비판론이 거세지자 그들은 잠시 당권을 내려놓는 겸허함을 보였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이런 속에서도 당권 재장악 기회를 엿봤고 지속적으로 당 지도부를 흔들었다. 복귀에 필요한 명분 쌓기다.
명분이 충분히 쌓였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뒤에서 흔들지 말고 차라리 전면에 나서라는 말이 나올 만한 환경은 만들어냈다. 절반 정도는 분위기를 익힌 셈이다. 다소 설익긴 했지만, 지금 전면에 나설 것인가 말 것인가. 친노계는 기로에 섰다.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역시 여론이다. 잇따른 선거 패배가 여전히 그들 탓이라는 시각이다. 전략적으로 2선으로 물러난 후에도 당 지도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해 운동권 논리로 선거에 임하게 했다는 시각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들도 딱히 변명 거리가 없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물론, 7·30 재·보궐선거까지도 ‘정권심판론’으로 일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부담은 부담일 뿐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별로 없다. 2016년 총선에서 다시 공천받아 재당선하려면 이번에 무조건 당권을 재장악해야 한다. 솔직히 2016년 총선거 승리 여부도 중요치 않다. 일단 내 당선이, 우리의 당선이 중요하다. 그래야 2017년 대선에 우리 후보를 낼 수 있다. 제2의 친노 정부 창출 기회도 엿볼 수 있다.
친노계의 당권 재장악 시나리오는 이제 환경 조성 단계를 넘어 실행 단계로 접어들었다. 환경 조성 단계에서는 안철수를 무력화하는 의외의 성과도 거뒀다. 자신들의 공세에 안 전 대표의 실책이 더해진 덕분이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강적이 아니었을뿐더러, 대리인 성격이 강했다.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내세울 수 있는 여러 대리인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이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외부에서 영입해 친노계를 정리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지만, 그것도 정리 단계다.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혁신형’에서 ‘관리형’으로 머물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2009년 5월 29일 서울 경복궁 뜰에서 엄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당시 민주당 이광재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 이강철 전 대통령특보, 민주당 백원우 의원,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왼쪽부터) 등이 침통한 표정으로 슬픔을 달래고 있다.
바로 그 틈을 노리는 것이 안 지사다. 특히 안 지사가 문 의원의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는데, 당장 현직인 그를 당대표로 앉힐 수 없다는 점이 친노계로선 안타깝다. 역시 그는 당권도 대권도 차차기다. 안 지사 외에도 이미 대표를 거쳤지만 정동영, 한명숙, 문희상, 그리고 대표를 거치지 않은 천정배, 유인태, 원혜영도 틈을 노리긴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친노계의 대안은 의외로 풍부하다.
친노계에게 반문한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합니까.’ 안 지사가 폐족임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야당을 주도하고 또다시 당권을 쥐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질문이다. 국민 여론이 어떤지, 특히 지지 세력 내에서 여론이 어떤지는 잘 알 것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선거 결과도 잘 알 것이다. 이것이 국민 생각이자 그들의 성적표다.
친노계에 대한 판정은 이미 2007년에 내려졌지만 탁월한 정치 투쟁 능력 덕에 생존에 성공했다. 그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아무리 좋은 쟁기도 잘못 쓰면 흉기일 뿐이다. 당을 분열하고 지지 세력을 분란에 휩싸이게 하는 흉기이자 습관적 선거 패배를 부르는 흉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친노계 측에 차기 당권 포기를 권한다. 2016년 총선 출마를 포기하라는 뜻이다. 이제 친노계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 제2의 친노 정부도 필요치 않다. 아직 우리의 소임이 남았다고 부르짖고 싶을 것이다. 개인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그것은 국민 판단에 맡길 문제다. 안 지사처럼 친노를 파하고 독자 행보를 걷다 보면 국민이 다시 기회를 줄 것이다.
친노 깃발 들고 재선에 몰입
친노계의 역사적 소임이 끝났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목적과 수단의 전도 현상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화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의 완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친노계는 사명감보다 금배지에 더 목을 매고 있을 뿐이다. 사명감을 상실한 이들에게 소임을 맡길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세대교체 대상이다.
박영선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복귀하던 날 국회를 찾은 원조 친노 이광재 전 지사는 “중간층이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만큼 합리적이며 구체적인 정책이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라는 말을 남겼다. 원조 친노가 당 밖에서 변화를 꾀하며 친노 색깔을 지워가는 동안, 당내 주변의 친노는 친노 깃발에 기대 재선에 몰입하는 역설적 현상!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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