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7일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시험발사된 THAAD(고고도미사일요격체계) 요격미사일. 미국 미사일방어국(MDA)이 이튿날 공개한 사진이다.
9월 14일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개발 가능성을 군 당국이 공식 확인했다는 보도가 주요 언론을 일제히 장식했다. 이날 합동참모본부가 국회 국방위원회 진성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포함된 이 한 줄짜리 문장이 시발점이었다. 발사 징후를 사전에 감지하기 어려운 SLBM 개발은 한반도 안보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사안. 관심이 폭증한 것은 당연했다.
확인 요청이 이어지자 군 당국은 “북한의 한 잠수함 기지에서 최근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 잠수함 장착용 수직발사관이 한미 정보당국에 의해 식별됐다”며 추가 설명을 내놓았다. 이 수직발사관을 이용해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지상에서 시험발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군 당국이 사용한 ‘최근’이라는 단어다. “SLBM 관련 영상정보 징후가 확인된 것은 1년도 넘은 일”이라는 게 전직 안보부처 핵심 당국자의 한결같은 설명이기 때문. 이로 인해 미국 측은 북한이 옛 소련에서 도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골프급(3500t) 잠수함을 역설계해 함교 부분에 수직발사관을 장착했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해왔고, 정보당국 차원에서 이를 논의한 것이 2013년 이전 일이었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 의회조사국은 이미 2009년 2월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잠수함 발사 미사일과 관련한 우려를 언급한 바 있다. 한마디로 최근에 제기된 의혹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군 당국이 때늦은 뉴스를 확인하며 ‘최근’을 강조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때늦게 쏟아진 미사일 위협 보도
일련의 안보당국발(發) 미사일 위협 보도를 9월 15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짓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 실장과 수전 라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담에서 THAAD(고고도미사일요격체계) 한국 배치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던 상황. 미국의 집요한 요청과 중국 측 반발이 맞물리면서 난감해진 안보부처에서 THAAD 배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자 북한 미사일 위협을 적극적으로 강조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3월 26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발사한 노동미사일 2기가 최고 고도를 160km까지 높이고 비행거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발사됐다는 6월 19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이다. 노동미사일을 최적 궤도로 발사하면 사거리는 1300km에 달하지만, 이를 ‘높은 궤도’(Lofted Trajectory) 방식으로 발사하면 남한 지역 내 목표물도 타격할 수 있다는 요지였다. 이 경우 하강 속도가 마하7에 달해 PAC-2, PAC-3 등 현재 한미 양국군이 보유한 저고도 요격체계로는 명중이 쉽지 않다는 것. 고도 40~150km 사이에서 상대 미사일을 요격하는 THAAD급 체계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스커드 등 남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단거리 미사일은 100km 고도까지 상승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고, 노동미사일은 유사시 주일미군 후방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무기체계라는 점에서 북한이 이런 식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무기체계 전문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높은 궤도 방식의 경우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각도가 워낙 가팔라 마찰열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준하므로 탄두가 타버리는 등 미사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것. 이를 막아줄 삭마제(削磨劑) 는 북한 미사일 기술의 가장 ‘약한 고리’ 가운데 하나다. 남한 내 목표물을 공격하려면 스커드나 KN-02 등 단거리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해 요격을 피하는 전술이 북한으로서는 훨씬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3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THAAD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후에야 국방부가 내놓은 설명에 대해 의구심이 증폭한 배경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미국 측이 THAAD의 한국 배치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배경에는 유사시 괌이나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향해 날아갈 중거리미사일(IRBM)을 초기에 탐지하려는 목적이 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들 기지 역시 한반도에서 분쟁이 벌어질 경우 전시 증원 경로와 후방 기지 구실을 담당하므로 ‘단일 전장(戰場)’에 포함되고, 따라서 한국 측도 그 방어에 기여해야 한다는 게 미국 측 논리다. 그러나 미사일방어(MD) 참여 논란을 의식한 한국 정부는 양측 사이에 이러한 ‘개념적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한 적이 없고, 따라서 이번에도 ‘노동미사일의 높은 궤도 사격’이라는 개연성이 높지 않은 시나리오만 꺼내들게 된 셈이다.
더불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미사일과 함께 배치되는 AN/ TPY-2 레이더의 성능. 탐지 범위가 1000km를 넘는 이 레이더는 날아오른 미사일 궤도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고해상도를 자랑한다. 평택 등 서해 인근 미군기지에 배치될 경우 중국 동북부 일대 미사일 전력이 미국의 궤도 추적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것이다. 자국의 핵 전략을 상당 부분 무력화할 수 있는 레이더 배치를 중국이 심상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베이징은 5월 이후 외교부 대변인을 비롯해 관영 신화통신, 중국중앙(CC)TV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경고하고 나선 바 있다.
더욱 난감한 것은 미군기지에 배치되는 THAAD와 별도로 한국 정부도 THAAD 구매에 동참해달라는 미국 측 요구다. 9월 4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미 국방부 고위소식통은 “평택 기지가 THAAD 1개 포대의 우선 배치 지역으로 유력하다”면서 “THAAD (추가) 배치 시 한국도 비용을 부담하면 (안보비의) 공동 분담(cost sharing)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THAAD의 요격 범위는 주한미군기지 권역을 크게 벗어나므로, 한국 측도 재정적으로 기여해야 옳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용산·세종시를 가르는 시각차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 내 기류는 크게 엇갈린다. 특히 경제·예산부처를 중심으로 강한 반대의견이 형성돼 있다는 게 정부당국자들의 설명. 9월 중순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현 상황에서 1개 포대에 2조 원이 넘는 THAAD를 구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안보부처 일부 당국자들은 우리도 수혜자이므로 일정 부분 부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지만, 예산을 담당하는 처지에서 보자면 이미 방위비분담금을 지급하는 상황에서 미국 측 판단에 따른 무기체계 배치까지 비용을 나누는 건 일종의 이중과세라는 취지다.
물론 경제부처들의 이러한 반대기류에는 중국 측 반발에 대한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한 국장급 간부는 익명을 전제로 “우리가 THAAD 비용을 부담한다면 베이징은 당장 ‘왜 우리에게서 벌어들인 돈을 우리를 겨누는 데 쓰느냐’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의존도가 26%에 달하고 무역흑자 규모는 600억 달러에 이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 당국자는 “경제 부문에서는 이미 달러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안보 분야에서는 이러한 상황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공교로운 것은 이러한 시각 차이가 서울 세종로와 용산에 남은 외교부, 국방부와 세종시로 자리를 옮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사이에 그어져 있다는 사실. 이전에는 서울 강북과 경기 과천으로 나뉘어 있던 부처들의 생각 차이가 지리적으로 멀어진 만큼 한층 더 커진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서울에 주재하는 한 유럽국가 외교관은 이러한 흐름을 “재계의 인식이 경제부처로 확산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미국보다 중국과의 비즈니스가 훨씬 늘어난 대기업 등에서는 동북아 지역 내 미국과 중국의 세력 역전을 기정 사실로 보는 경향이 이전부터 명확했고, 재계와 교감이 잦은 경제부처 당국자들이 그에 영향을 받아 안보부처와 사뭇 다른 상황 판단을 하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이 외교관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한창 목소리가 커진 경제부처들의 입지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과 세종시를 가르는 대립선을 명확히 드러낸 또 다른 사안으로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중국이 지분율 절반을 차지하는 AIIB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해온 아시아 금융질서를 자신들을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베이징의 야심이 담긴 시도다. 8월 한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우리 측에도 AIIB 참여를 요청했으나, 미국은 이를 전후해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측에 참여하지 말 것을 종용한 바 있다.
정부 소식통들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도 ‘동맹의 신의’를 중시하는 안보부처의 견해와 ‘기업들의 해외 진출 루트가 될 것’이라는 경제부처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고 전한다. 제3세계 국가들의 경제 개발과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주로 담당하게 될 AIIB에서 한국이 일정 부분 발언권을 얻게 되면, 이들 국가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기회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게 경제부처들의 계산이다. 명분 때문에 실익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는 정부 안의 다양한 목소리 때문에 THAAD 문제에 대해서도 일종의 절충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예컨대 요격미사일과 사격통제 시스템만 먼저 평택기지에 상시 배치하고 중국 측이 경계하는 레이더는 유사시에만 들여오는 방안이다. 다른 고해상도 레이더와 달리 수송기로도 쉽게 운반할 수 있는 AN/ TPY-2 레이더는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될 때나 훈련이 예정돼 있을 때만 언제든 반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THAAD 요격미사일을 미군 이지스함이나 해상 배치 X밴드 레이더 등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격통제 시스템 배치 절충안도
요컨대 어느 경우든 미국 측 레이더가 한국 영토 안에서 중국을 상시 견제하는 상황을 피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취지. 이렇게 되면 한국도 중국에 할 말이 생기고, 미국도 공연한 논란을 피할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MD 체계의 동북아 구축’이란 본질적인 쟁점 때문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꼼수’로는 양측 모두의 기분만 상하게 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것은 동북아에서 ‘경제의 중국, 안보의 미국’이라는 구도가 심화할수록 한국 정부 안에서의 견해 차이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서울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제3국 외교관은 “한국이 두 나라 사이에서 사안별로 눈치를 봐가며 결정한다는 인상을 주면 양측 모두에게 기회주의로 비칠 뿐”이라고 경고했다. 명확한 원칙을 천명해 한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사전 예측이 가능해야 그 나름의 발언권을 인정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역사상 세력 갈등에 휘말리지 않은 중견국가들의 생존 비결은 ‘보편타당한 가치와 원칙의 준수’였다.” 그가 남긴 마지막 충고다.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