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5월22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비롯한 외가 식구들이 모처럼 창경원 나들이를 했습니다. 지금은 원래의 궁궐 모습을 되찾았지만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창경원은 고궁이라기보다는 서울시내에서 거의 유일한 유원지였지요.
외할아버지께서는 슬하에 2남6녀(8남매)를 두셨는데, 큰외삼촌과 큰이모는 당시 이미 장성해서인지 나들이에 함께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변변한 교복 하나 마련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매일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겨우 교복을 장만하셨다는데, 나들이를 위해 폼나게 차려입는다고 그 교복을 입고 나오신 것 같습니다. 역시 교복을 입고 늠름하게 서 있는 작은외삼촌도 사정은 비슷했겠지요.
커다란 중절모까지 손에 들고 멋지게 차려입으신 외할아버지는 아흔이 넘게 장수하시고 지난 4월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외할아버지 생전에 가까운 공원에라도 함께 가보지 못한 게 무척 후회가 됩니다. 외할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슬하에 2남6녀(8남매)를 두셨는데, 큰외삼촌과 큰이모는 당시 이미 장성해서인지 나들이에 함께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변변한 교복 하나 마련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매일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겨우 교복을 장만하셨다는데, 나들이를 위해 폼나게 차려입는다고 그 교복을 입고 나오신 것 같습니다. 역시 교복을 입고 늠름하게 서 있는 작은외삼촌도 사정은 비슷했겠지요.
커다란 중절모까지 손에 들고 멋지게 차려입으신 외할아버지는 아흔이 넘게 장수하시고 지난 4월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외할아버지 생전에 가까운 공원에라도 함께 가보지 못한 게 무척 후회가 됩니다. 외할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