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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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紙 신당’ 한화갑은 뭘 노리나

밑그림은 ‘反昌’ 총연대… 노무현 후보 기득권 포기 여부가 최대 변수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10-07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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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紙 신당’ 한화갑은 뭘 노리나
    ”앞으로 이런 전화 하지 마라. 이런 일은 당이 알아서 한다.”

    7월 말 한화갑 대표는 ‘총리 인준 문제를 도와달라’는 청와대 J수석의 전화를 받고 이렇게 고함질렀다. “박○○이 전화하기 어려우니 밑에 사람 시켜서…”라며 특정인에 대한 불쾌감도 드러냈다.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은 평소 그의 스타일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 직후인 7월30일 한대표는 ‘백지신당론’을 들고 나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평소 그의 스타일로 보면 이만저만한 파격이 아니다. 노무현 후보의 반발로 일단 창당 깃발은 접었지만 한대표의 이런 적극적 행보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측근들은 “더 이상 과거의 한대표가 아니다”라며 그의 변화 시도에 힘을 실어준다.

    대표 취임 이후 얻은 ‘갑갑이’란 별칭을 더 이상 용납 않겠다는 한대표 의지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대표로서 영향력과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재보선 이후 당내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력과 조정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여건 조성 등 매사 적극성을 보인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백지신당론이다. 한대표의 백지신당론은 친노(親盧)파와 반노(反盧)파 등 두 갈래로 추진되던 신당 흐름을 일정부분 제어했다. 다소 유동적이지만 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간도 확보했다. 신당 정국에서 소외됐던 한대표는 백지신당론을 통해 신당 창당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쥐만 잡는다면… ‘흑묘백묘론’



    ‘白紙 신당’ 한화갑은 뭘 노리나
    한대표의 백지신당론은 ‘흑묘백묘(黑猫白猫)론’과 유사하다. 이대로 그냥 가 패배할 바에는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을 통해 후보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대선)를 잡을 수 있는 대안을 찾자는 것이 골자다. 이 과정에 노풍(盧風)을 재점화할 기회도 숨어 있으니 노후보도 기득권을 버리고 동참하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한대표는 백지신당론을 거론하기 전 당내 인사들을 두루 만났고, 이들로부터 다양한 주문을 받았다고 한 측근은 설명한다. “‘레프리’ 역할을 맡아달라(중도파)”는 요구는 물론 “97년 허주 역할을 해달라(노후보 캠프)”는 적극적인 킹메이커 역할도 요청받았다. 반대편에 선 이인제 의원과는 일정부분 의기투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탈당 시나리오까지 짜 신당 창당에 나선 이인제 구상을 들어본 한대표는 ‘신당을 함께 하자’는 입장을 주고받았다는 것. 또한 이인제 의원에게 ‘신당 대표를 맡으라’는 입장을 전달했고 ‘노후보(거취)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거중조정 역을 자임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른바 한-이 ‘밀약설’이다. 한대표의 백지신당론에는 이런 당내 인사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당내의 평가도 호의적이다.

    친노와 반노의 대립에서 발을 뺀 중도파 인사들의 경우 한대표의 백지신당론에 큰 관심을 보인다. 민주당 의원 53.7%가 노후보 중심의 당보다 백지신당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조선일보 8월5일자)도 나왔다. 주류 또는 범주류로 분류됐던 친노파 인사들도 마찬가지. 이들 가운데 일부는 친노로 경사됐던 무게중심을 ‘중립지대’로 이동하고 있는 흐름도 감지된다. 노-한 연대론도 백지신당 발언 이후 의미를 상실했다. 노무현과 이인제를 축으로 본다면 스펙트럼의 중간층이 두꺼워지는 현상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그 정점에 선 한대표의 선택은 신당 창당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친노와 반노의 세 대결이 팽팽할수록 한대표의 선택이 승패의 갈림길이다. 당내에서는 한대표가 8ㆍ8 재보선 이후 대표직을 던지며 백지신당에 시동을 걸 것으로 예상한다. 선거 패배를 전제로 한 시나리오지만 그의 사퇴는 지도부 집단사퇴를 견인하고, 이는 임시전당대회를 소집하는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경우 신당의 추진 주체, 방식, 형태는 모두 한대표와 그의 주변 인사들에 의해 재단될 가능성이 높다.

    한대표는 부인하고 있지만 백지신당론은 표면적으로 노후보의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노후보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다. 이미 한대표가 백지신당론을 치고 나가는 바람에 노후보는 신당 창당과 관련한 입장표명과 결단을 내릴 시기와 공간을 잃어버렸다. 자칫 잘못하면 한대표의 신당론을 추종하는 모양이 되기 십상이고, 반대하면 기득권에 연연한다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한대표가 노후보에게서 등을 돌리는 상황이다. 두 인사가 등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전당대회 직후인 지난 4월 한대표가 노후보에게 두 발 모두 담갔다면 지금은 한 발은 뺀 상태(측근 L씨)다. “노후보가 한대표의 백지신당을 계속 거부할 경우 한대표로서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측근 K씨)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지만 한대표는 친노와 반노에 대한 입장 표명을 자제한다. 한 측근은 “상생이 백지신당론의 숨은 의미”라며 핵심을 피한다. 한대표는 백지신당론을 통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노후보로 갈 수도, 새로운 대안을 물색할 수도 있는 입장이다. 정몽준 의원,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 이한동 전 총리 등 제3후보군의 영입을 전제로 김종필 자민련 총재, 김윤환 전 의원의 민국당 등을 모두 통합하는 ‘반창(反昌)연합’을 형성할 수도 있다.

    한때 그의 존재와 역할을 무시했던 당내 및 장외 인사들은 한대표의 백지신당론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이한동 전 총리)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친노와 반노 세력들도 한대표와의 접촉 범위를 넓히며 신당 세력에 편입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신당 창당의 열쇠는 한대표 손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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