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 하나가 있다. 가장 맛있고 잘 익은 수박을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 깨보지 않고 골라야 한다. 정답은? 그 가게에서 가장 비싼 수박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농 삼아 하는 말이긴 하다. 그래도 이 답에는 나름의 시장 원리가 있다. 가장 맛있는 수박은 가장 비싸다는 것이다. 식품이 대개 그렇다. 맛있고 좋은 것은 비싸다. 싼 건 역시 비지떡이다. 수박도 주머니 넉넉한 사람이 맛있게 먹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미술 시장에서 흔히 쓰는 말이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명품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명품은 왜 높은 곳으로 흘러갈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명품은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당연히 돈이 많은 곳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빈자보다 부자가 명품을 소장할 확률이 높다. 가난한 집안에서 가지고 있던 명품이 종국에는 지체 높은 부잣집으로 가는 일이 흔하다.
‘미술품 보는 안목’ 부자보다 빈자가 더 자유롭다
불경스러운 비교인지 모르나, 채소 시장이나 미술 시장이나 가격 결정의 원칙은 얼른 보면 다를 바 없다. 좋은 것은 비싸고, 비싼 것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좋은 수박이 비싼 것은 이미 밝혀졌다. 그런데 좋은 작품도 반드시 비쌀까. 대개는 그러하나, 꼭 그렇진 않다. 명품이 비싼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명품은 높은 데로 갈 수밖에 없다. 좋은 작품은 명품이 될 수 있지만, 명품이 언제나 좋은 작품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 명품과 좋은 작품의 차이가 있다.
돈이 많으면 좋은 수박을 아무나 고를 수 있다. 좋은 작품은 돈이 많다고 다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안목이다. 높은 눈은 많은 돈으로도 못 산다. 돈도 많고, 눈도 높다면? 그것은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경우다. 그러나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드물다. 안목은 있으나 돈은 없고, 돈은 있으나 안목은 없는 사람이 훨씬 많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미술 관계자들이라면 낯익은 일본인이다. 도쿄제국대학 철학과를 나온 그는 일제시대에 일찌감치 한국 고미술의 우수성을 깨달아 이를 찬미하는 글도 썼고, 작품도 숱하게 소장했다. 그의 컬렉션은 지금도 일본민예관에 전시돼 관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우리 고미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익애(溺愛)에 가깝다. ‘민예’니 ‘민화’니 하는 용어도 그가 처음 쓴 말이라고 한다. 혹자는 그가 조선시대 미술의 특징을 ‘애상(哀想)의 미학’으로 간주한 데 대해 비판하지만, 버려지다시피 한 우리 문화유산을 애써 현창한 그의 노력은 녹록지 않다.
야나기는 1910년대부터 조선 미술품을 모았다. 주로 민예품이었다. 당시 누구도 돈 들여 사지 않을 품목을 그는 열성적으로 수집했다. 헐값의 미술품을 죽어라 사 모으는 그를 두고 교토의 한 유명 소장가는 “돈이 없으니 민예품을 사지” 하며 비웃었다. 야나기는 그에게 이렇게 응대했다. “돈이 있으니 민예품을 못 사지.” 돈 많은 소장가는 민예품을 안 사는 것이 아니라, 못 산다는 것이 야나기의 논리다.
왜 그럴까. 부자 소장가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다. 야나기는 설명한다. 교토의 그 소장가가 가진 작품들은 실로 대단하다. 돈의 위력이 맘껏 발휘된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명성이 자자하거나, 시대가 엄청 오래되거나, 보존상태가 완벽하거나, 양식이 진기한 것뿐이다. 한마디로 정평이 난 명품 일색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 소장가는 제 안목이 아니라 세상의 평판을 기준으로, 거기에 꼼짝없이 얽매여 작품을 사 모았다. 그는 값진 것 외에는 사들일 역량이 없다.
야나기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부자라서 이미 평가가 끝난 작품들만 사는 사람, 그는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가. 그는 다른 것을 보지 못했으니 결코 창조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못 된다.” 돈이 많은 사람은 민예품을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산다고 했다. 부자 소장가는 이미 유명 작품에 인이 박이고, 안목마저 세평에 속박돼 있어 그 밖의 것을 살필 여유가 없다.
이른바 ‘명품’은 비싸다. 부자의 몫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주머니가 가난한 자는 돈 대신 자유가 있다. 세평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 맘 내키는 대로 살 자유가 허용된다. 가난이 높은 안목을 길러주진 않는다. 대신 부자가 아니기에 사심 없는 눈이 있다. 돈이 넉넉하지 않은 자에게 보장된 이 특별한 은총은 무엇보다 값지다. 싼 작품은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부자가 거들떠보지 않는 드넓은 사냥터에서 그들은 먹잇감을 발견할 것이다. 명품이 아닌들 대수겠는가. 어차피 가난한 소장가는 제 흥에 겨워 우는 새니까.
미술 시장에서 흔히 쓰는 말이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명품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명품은 왜 높은 곳으로 흘러갈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명품은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당연히 돈이 많은 곳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빈자보다 부자가 명품을 소장할 확률이 높다. 가난한 집안에서 가지고 있던 명품이 종국에는 지체 높은 부잣집으로 가는 일이 흔하다.
‘미술품 보는 안목’ 부자보다 빈자가 더 자유롭다
불경스러운 비교인지 모르나, 채소 시장이나 미술 시장이나 가격 결정의 원칙은 얼른 보면 다를 바 없다. 좋은 것은 비싸고, 비싼 것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좋은 수박이 비싼 것은 이미 밝혀졌다. 그런데 좋은 작품도 반드시 비쌀까. 대개는 그러하나, 꼭 그렇진 않다. 명품이 비싼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명품은 높은 데로 갈 수밖에 없다. 좋은 작품은 명품이 될 수 있지만, 명품이 언제나 좋은 작품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 명품과 좋은 작품의 차이가 있다.
돈이 많으면 좋은 수박을 아무나 고를 수 있다. 좋은 작품은 돈이 많다고 다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안목이다. 높은 눈은 많은 돈으로도 못 산다. 돈도 많고, 눈도 높다면? 그것은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경우다. 그러나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드물다. 안목은 있으나 돈은 없고, 돈은 있으나 안목은 없는 사람이 훨씬 많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미술 관계자들이라면 낯익은 일본인이다. 도쿄제국대학 철학과를 나온 그는 일제시대에 일찌감치 한국 고미술의 우수성을 깨달아 이를 찬미하는 글도 썼고, 작품도 숱하게 소장했다. 그의 컬렉션은 지금도 일본민예관에 전시돼 관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우리 고미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익애(溺愛)에 가깝다. ‘민예’니 ‘민화’니 하는 용어도 그가 처음 쓴 말이라고 한다. 혹자는 그가 조선시대 미술의 특징을 ‘애상(哀想)의 미학’으로 간주한 데 대해 비판하지만, 버려지다시피 한 우리 문화유산을 애써 현창한 그의 노력은 녹록지 않다.
야나기는 1910년대부터 조선 미술품을 모았다. 주로 민예품이었다. 당시 누구도 돈 들여 사지 않을 품목을 그는 열성적으로 수집했다. 헐값의 미술품을 죽어라 사 모으는 그를 두고 교토의 한 유명 소장가는 “돈이 없으니 민예품을 사지” 하며 비웃었다. 야나기는 그에게 이렇게 응대했다. “돈이 있으니 민예품을 못 사지.” 돈 많은 소장가는 민예품을 안 사는 것이 아니라, 못 산다는 것이 야나기의 논리다.
왜 그럴까. 부자 소장가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다. 야나기는 설명한다. 교토의 그 소장가가 가진 작품들은 실로 대단하다. 돈의 위력이 맘껏 발휘된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명성이 자자하거나, 시대가 엄청 오래되거나, 보존상태가 완벽하거나, 양식이 진기한 것뿐이다. 한마디로 정평이 난 명품 일색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 소장가는 제 안목이 아니라 세상의 평판을 기준으로, 거기에 꼼짝없이 얽매여 작품을 사 모았다. 그는 값진 것 외에는 사들일 역량이 없다.
야나기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부자라서 이미 평가가 끝난 작품들만 사는 사람, 그는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가. 그는 다른 것을 보지 못했으니 결코 창조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못 된다.” 돈이 많은 사람은 민예품을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산다고 했다. 부자 소장가는 이미 유명 작품에 인이 박이고, 안목마저 세평에 속박돼 있어 그 밖의 것을 살필 여유가 없다.
이른바 ‘명품’은 비싸다. 부자의 몫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주머니가 가난한 자는 돈 대신 자유가 있다. 세평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 맘 내키는 대로 살 자유가 허용된다. 가난이 높은 안목을 길러주진 않는다. 대신 부자가 아니기에 사심 없는 눈이 있다. 돈이 넉넉하지 않은 자에게 보장된 이 특별한 은총은 무엇보다 값지다. 싼 작품은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부자가 거들떠보지 않는 드넓은 사냥터에서 그들은 먹잇감을 발견할 것이다. 명품이 아닌들 대수겠는가. 어차피 가난한 소장가는 제 흥에 겨워 우는 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