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6

2012.02.27

정치인 메시지는 짧고 강해야 먹힌다

스티커 메시지를 찾아라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입력2012-02-27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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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 메시지는 짧고 강해야 먹힌다

    ‘1인 시위의 메카’ 서울 세종로 사거리 풍경. 설득력 있는 사회적 메시지는 단순성, 구체성, 스토리를 갖춰야 한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4·11 총선을 앞두고 곳곳에 출마자의 대형 출사표 현수막이 내걸렸다. 정치 신인은 자신의 이름과 출마 메시지를 유권자에게 알려야 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만 있거나 자신의 화려한 스펙만 강조하는 메시지는 유권자들이 기억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유권자의 뇌리에 콕 박히는 한 줄의 메시지. 출마 경쟁자의 판에 박힌 추상적 캐치프레이즈를 압도하는 명쾌한 한마디의 힘. 결국 선거는 메시지 경쟁이고 정치는 메시지 설득 과정이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두 단어짜리 메시지는 당시 외환위기 상황에서 심란해 있던 유권자의 정서에 부합하고 집권여당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비교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잘 만든 슬로건이었다. 김대중 후보의 약점이던 대권 4수, 연로한 나이 문제를 정치 초년생 ‘대쪽 판사’ 이회창 후보보다 경험과 경륜이 풍부하다는 강점으로 일거에 전환시켜버린 단순명쾌한 정치 메타포였다. 이때 이회창 후보의 슬로건은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의 슬로건은 ‘젊은 한국, 부강한 나라’였다.

    한 표를 던져줄 유권자의 머릿속에 쏙 들어오고 마음속에 착 달라붙는 메시지를 ‘스티커 메시지’라고 한다. 스티커처럼 한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 끈적끈적한 메시지를 만들려면 어떡해야 할까. 바로 단순해야 한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간결함에 대해 참으로 멋들어진 정의를 내렸다. “완벽함이란 더는 보탤 것이 남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는 뺄 의미가 없을 때 완성된다.” 단순해진다는 것은 수준을 낮추고 쉬운 말만 골라 쓴다는 의미가 아니다. 숨은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과정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해 불필요한 것을 쳐내고 솎아내는 일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 가운데 핵심 하나만 살리고 나머지 두 개를 버리는 결단이다.

    1992년 미국 워싱턴 정가에 신출내기인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등장했다.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클린턴은 머리가 좋았고 정책통임을 스스로 과시했다. 마이크를 잡으면 모든 정책에 관한 사항을 줄줄이 늘어놓는 다변가였다. 그의 선거캠페인 전략가들은 고민했다. 클린턴의 현학적 달변을 단순하고 기본에 충실한 메시지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이때 나온 슬로건이 바로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였다. 선거 기간 내내 메시지 전달 과녁을 경제 분야에만 집중했다. 클린턴 진영은 국내 문제에 집중해 특히 불경기 타개를 위한 이슈를 선점했다. 미국 경제가 암울한 침체기에 빠졌기 때문에 이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력했다. 클린턴은 공화당 후보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을 누르고 승리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2월 13일 사퇴했다.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대해 총체적으로 책임진다며 뒤늦게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모든 것이 부덕의 소치다. 정당의 전당대회엔 약간의 관행이 있었다. 경선 캠프 관계자들에 대한 선처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오래돼 기억이 희미하다고 말끝을 흐리던 그는 회견에서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며 판에 박힌 사과문구로 감동 없는 메시지만 나열했다.

    그의 때늦은 개탄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의 메시지는 짧고 강해야 한다. 길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위대한 한국어를 갈고닦아 언어의 승부사로서 국민에게 단순명쾌한 시대의 화두를 제시하는 것, 바로 정치인의 ‘최종병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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